[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치료가 잘 마무리 되어가던 조현병 환자가 있었다. 그 환자에게 퇴원을 언급할 때마다, 안 그래도 과묵한 환자는 더 말이 없었다. 그렇게 답답한 실랑이를 반복하던 중, 환자가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저 방을 구할 수가 없어요.”

“제 소문이 퍼져서, 아무도 저한테 월세를 안 주려고 해요.”

 

망상 증상이 아직 남아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래서 원래 그 환자를 지원했었던 정신건강증진센터에 연락을 했다. 가족이 없는 분이라, 그분의 평소 모습을 센터 직원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었다. 환자가 소문이 퍼져서 방을 구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담당 직원은 말했다.

“그분이 위생 관리를 유독 잘 못하는 편이세요. 장보기나 요리는 어느 정도 하는데, 쓰레기를 못 버리세요. 뭐가 쓰레기인지도 잘 모르시고요. 그러다 보니 방에 계속 쓰레기가 쌓이죠.”

“그런 문제가 지역 사회에 소문이 나나요?”

“일반적인 경우에는 안 나지만... 좀 심했거든요. 그분을 센터에 연락해 주신 분도 원룸 주인분이세요. 좋은 분이신데, 아마 다시 월세를 주진 않으실 거예요.”

 

좋은 분이지만 다시는 월세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고, 그런 머뭇거림이 느껴졌는지 담당 직원은 덤덤히 설명했다.

“방 안에서 쓰레기가 썩고, 그 냄새를 맡고 온갖 벌레와 동물들이 원룸에 꼬이고, 심지어 쓰레기 더미에서 동물이 죽기도 했나 봐요. 악취와 동물들 때문에 집주인이 알게 됐고, 본인 돈으로 쓰레기를 치워주겠다고 했으나 환자분이 반대하셨어요. 주인 허락 없이 쓰레기를 치우는 것은 불법이니깐 주인분도 답답해했죠. 당시 월세도 밀렸었는데, 환자가 실제로 방에서 살고 있으니 환자를 강제로 쫓아낼 수도 없고요. 그래서 집주인이 우리 센터에 찾아와서 하소연했고, 센터 직원들이 나가서 환자분을 설득해서 병원에 입원하게 된 거예요. 쓰레기는 1톤 트럭으로 2대 분량이 나왔었고, 방역도 해야 했고요.”

결국 그 환자는 병원에서 주거시설로 갔고, 개인적으로는 정신질환자의 자유와 그 주변 사람들의 권리의 경계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_픽사베이

 

이 일이 다시 떠오른 이유는 올해 9월부터 시행될 ‘애니멀 호더 처벌 법’ 때문이다.

동물의 학대를 방지하여 생명을 존중하기 위해 개정되는 동물보호법 안에는, 보호자가 반려동물에게 최소한의 사육공간을 마련하지 않는 등 학대행위를 할 때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정신질환자 중 일부는 물건을 버리지를 못한다. 만성 조현병, 지적 장애, 치매 환자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구조되는 일이 종종 있다. 수집광(Hoarding Disorder)이라는 진단명은, 다른 정신 증상 없이 소지품을 버리지 못해서 쓰레기 더미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병명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부분의 환자들은 생명이 없는 물건을 수집하지만, 일부 환자들은 생명을 수집하기도 한다. 바로 동물 수집증(Animal Hoarding Disorder), 애니멀 호딩이다.

즉 정신질환의 증상으로 동물을 수집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을 ‘애니멀 호더’라고 부르며, ‘애니멀 호딩 디스오더’라는 병명을 사용한다.

 

‘동물 수집증이라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애니멀 호더’라는 단어가, 언론과 대중들이 ‘동물보호법에서 범법자’를 지칭하는 ‘애니멀 호더’와 동일하다는 점이, 이 개정안이 가진 생명 존중이라는 좋은 취지를 바래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만약 내가 고혈압 환자인데, 공공장소에서 화를 내며 욕을 하는 범법자를 지칭하는 단어로 ‘고혈압자’라는 단어가 쓰인다면, 지금처럼 자신이 고혈압이 있다고 편하게 말하고 다닐 수 있을까? 또 주변 사람들이 고혈압을 치료받으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을까?

 

백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현병 환자를 비롯하여 정신질환자가 범죄자로 취급받고 처벌받던 때가 있었다. 정신질환자가 범죄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많은 정신과 의사들과 환자들의 헌신과 눈물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병명과 범법자를 지칭하는 단어가 같다는 것이, 다시 정신질환자와 범죄자가 같은 취급을 당하는 시대로 회귀하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보호법에서 범법자를 지칭하기 위해서 ‘애니멀 호더’보다는 ‘동물 학대 행위자’라는 명칭이 대중화되었으면 한다. 한 마리의 동물을 학대하든, 다수의 동물을 학대하든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은 동일하다. 따라서 다수의 동물을 모은다는 뜻이 있는 ‘호더’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학대한다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당하다. 기존 동물보호법에서는 정의되어있지는 않지만, ‘학대행위자’라는 단어는 등장하며, 아동학대법은 아동을 학대하는 사람을 ‘아동학대 행위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동물보호법 개정안에서 이 ‘동물 학대 행위자’에 대한 세부기준들은 아직 논의 중이다. 이 ‘동물 학대 행위자’ 중에서 정신질환으로 인한 ‘애니멀 호더’는 처벌보다 치료가 우선시되는 내용도 함께 논의됐으면 한다. 이런 논의를 통해 정신질환자의 자유와 그 주변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으며, 이런 고민은 결국 정신질환자의 안정적인 사회 복귀를 위한 안전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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