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1888년 12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마을의 아를(Arles)에서는 두 화가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 gh)와 고갱(Paul Gauguin) 사이의 고조된 갈등은 하루하루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기고 있었다. 아를의 노란집에서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던 고흐는 그의 친구 고갱을 초대하여 예술가의 낙원을 이루어가고 있다며 취해있었지만, 그의 폭음과 술주정, 기벽은 고갱을 나날이 쇠약하게 하고 있었다. 고갱은 점차로 괴이해져가는 고흐의 눈을 피해 아를을 떠날 길을 찾고 있었고, 그런 고갱의 움직임을 눈치챈 고흐는 고갱이 자신을 떠나갈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2월 23일, 고흐는 고갱에게 불안감과 광기에 섞인 목소리로 “정말 떠날거야?”라고 물었다. “그렇다”라고 대답한 고갱에게 고흐는 신문짝을 뒤져 ‘살인자가 도주했다’라고 쓰인 문장을 찢어 그에게 쥐어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산책을 간다며 뛰쳐나간 고갱을 따라갔던 고흐는 그 길로 아를의 집으로 돌아와 면도칼로 그의 귀를 잘랐다. 오랜 우울감과 외로움에 이미 병들어버린 정신에 우울감과 불안감, 버림받고 말았다는 배신감이 뒤섞여 반쯤 광기에 가까워진 예술가의 손은 스스로 손으로 오른쪽 귓볼을 잘라내 버렸다.

 

정신과 진단통계 편람인 DSM-V에서는 정식 진단명으로 포함하지 않지만 ‘더 연구를 필요로 하는 상태’ 부분에 비자살 자해(Non-suicidal self injury)를 언급하고 있다. 비자살 자해란 자살의 의도 없이 일어나는 자해행위로서, 자살에 가까운 행위이지만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이지는 않은 수준의 자기 파괴로 나타난다. 주로 칼등이나 손톱, 날카롭지 않은 모서리로 손목 피부를 긁거나 뜯는 행위가 많다. 팔등이나 무릎 등의 피부를 긋는 경우도 많으며 대개 심각한 열상이나 혈관, 힘줄의 손상을 동반하지 않고 피부의 찰과상이나 얕은 열상에 그친다. 그리고 대체로 거칠게 자해하기보다는 신중하게 상처를 내는 경우가 많다.

 

자해행위로 통칭되는 자기 파괴적 행위는 정신과의 수많은 영역에서 나타난다. 조현병이나 조울증 등의 정신증적(psychotic) 삽화기간 중에 나타날 수도 있으며, 우울증이나 기타 불안장애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자살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자해행위의 경우에는 경계성 인격장애에서 흔히 나타나는데, 실제로 B군 인격 장애 환자들 중에는 자살시도와 비자살적 자해행위를 번갈아가며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경계성 인격 장애와 같은 경우에는 충동적인 분노 표출과 대인관계의 실패, 파괴가 주된 특성으로 나타나는 것과 달리, 상기한 ‘비자살 자해’의 경우에는 환자들이 사회적 기능이나 인간관계를 비교적 잘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자해행위는 정신역동적으로, 자신이나 내부화된 대상을 벌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욕구에 의해 생긴 공격적 충동이라 해석된다. 내면의 무의식적 분노(aggression)는 외부적 상황이나 초자아(super-ego)의 간섭 등으로 적절히 해소되거나 표출되지 않게 되면, 갈 곳을 잃고 분노를 일으킨 스스로에게로 화살을 돌려 공격하게 된다. 그 결과 스스로에 대한 무가치감이나 분노, 파괴적 충동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무의식적 과정에 대해서는 환자 스스로 깨닫고 이해하기가 무척 어렵다. 실제로 자해를 하는 환자들은 본인 스스로 자해를 왜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갈등이나 어려움에 대해서는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냥 자해가 하고 싶었어요’라며 무관심하게 대답하는 그들 중에는 심지어는 자해를 좋아하고 강박적으로 자해 사고에만 몰두하는 경우도 많다. “왜 자해를 하면 안되요? 내 몸인데 내 맘대로 하면 안되요?”라며 자해를 말리는 의료진에게 되묻기도 한다.

 

자해의 정신역동에 대한 분석적 고찰보다 조금 더 쉬운 길을 찾아보면, 학습이론에서는 비자살 자해에 대해 2가지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양성강화(positive reinforcement)와 음성강화(negative reinforcement)에 의해 자해 행위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첫째로 양상강화는 자해행위가 환자로 하여금 긍정적인 무언가를 보상받게 함으로써 그것이 반복되게 한다는 것이다. 가장 흔하면서도 대표적인 것으로는 자해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환자들의 의식적인 측면에서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나,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조작(manipulation)하기 위해 자해를 하는 경우에 해당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보통 ‘비자살 자해 장애’에는 해당하는 일이 많지 않다. 반복적으로 자해행위에 몰두 하는 환자들의 경우는 대부분 스스로는 알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지만, 자해행위를 통한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무의식적으로 바라는 마음에서 자해를 하게 된다. 무관심이나 학대, 폭력 등이 일상화되어 ‘버림받음’이 익숙해져있던 황폐화된 영혼에는 한줄기, 한방울의 관심이라도 그 대상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온전히 방향을 돌려놓을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관심 받고 있음’ ‘걱정 받고 있음’에서 연상되는 ‘사랑 받고 있다’는 경험이 자해 사건과 조건화되는 순간, 환자 스스로는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 속 구멍을 메우기 위해 자해행위를 끝없이 반복하게 된다.

또는 자해 자체가 환자들에게 충분한 만족감이나 도취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자해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 도취감은 자해에 대한 긍정적 조건화를 일으키게 되고, 자해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자해를 하는 환자들은 극도의 불안감이나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이를 적절히 말로 표현하거나 표출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배출되지 않고, 토해져 나올 줄 모르는 터질듯한 불안감은 스스로를 들썩이게 하고, 이러한 불안정성은 기존에 약해질대로 약해져있던 자아(ego)의 경계(boundary)를 조금씩 무너뜨리게 된다. 스스로를 외부와 구분짓던 자기감이 와해되며 이는 더욱더 큰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극심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날카로워진 신경을 쏟아부어낼 무언가를 찾게 되고, 환자들은 그 대안으로 자해를 하곤 한다. 이러한 환자들일수록 신중하게 자해에 몰두하게 되고, 터질 듯한 강렬한 불안과 공포는 자해의 순간으로 집중되어 칼로 피부를 베어내기까지의 순간에 일종의 트랜스(trans-무아(無我))상태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해가 끝난 이후에 방울져 맺히고 흘러내리는 붉은 피를 보며 일시적인 해방감과 쾌감을 느낀다. 그 기묘한 해소감은 자해 행위를 하기 이전에 끓어 넘치던, 자아 경계가 흐려질 정도의 불안감이 통증과 피를 통해 자기감과 현실감을 되찾게 됨에서 기인한다. ‘피를 보면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 양성강화를 통해 자해로 자기감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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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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