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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 용서는 회복을 낳고 14화 : 최초의 전자출판학 석사
옥탑방 글쟁이 | 승인 2018.04.12 17:00

졸업 시험과 논문도 무사히 통과했다. 동기들과 함께 전자출판콘텐츠 학문의 첫 번째 석사가 되었다.

 

학업에 대한 도전

 

대학 졸업 후 몇 년간은 수능일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이 두근거렸다. 아직 학창 시절의 시험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었다. 대학 시절에도 중간고사를 넘기고 기말고사가 다가오면 수업을 포기하고 싶었다. 한 학기의 수업을 끝까지 마치는 것도 버거웠지만 시험에 대한 압박감도 컸기 때문이다. 대학만 졸업하면 다시는 공부를 가까이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었다. 다시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단, 과거의 마음가짐은 아니었다. 경쟁과 성공을 위한 공부는 아니었다. 그저 배우고 싶은 지식을 얻고 싶었다. 열심히 도서관을 다니며 관심 가는 분야의 책들을 읽었다. 그러다 대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신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확신이 부족했다. 다만 나처럼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그래서 신학교 상담대학원 입시를 준비했다. 1년간 성경과 상담 관련 책들을 공부했지만 입학시험에 떨어졌다. 그래도 공부에 대한 열망이 컸다. 차라리 대학교 언론학 전공을 살려 대학원에 진학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내게 주어진 달란트도 미디어 쪽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대학원 모집 공고를 보았다.

 

사진_픽셀

 

 

진실했던 대학원 면접

 

2013년 7월, 경기대학교 대학원에 전자출판콘텐츠학과가 신설되었다. 변화하는 미디어에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인재를 키우기 위해 만든 계약학과였다. 1기 입학생 20명 전원은 국비지원 장학생 자격으로 모든 입학금과 등록금이 면제되는 특권이 있었다. 서류 과정에 120여 명이 지원했다. 그중 나를 포함한 45명만이 면접 기회를 얻었다.

다섯 명씩 아홉 조로 면접에 임했다. 면접실에는 담당 교수님과 업체 대표님들이 앉아 계셨다. 책상 위에 놓인 명찰을 통해 이름과 직위, 소속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필이면 난 면접 번호 1조 1번이었다. 자연스레 첫 공통 질문부터 내가 먼저 대답해야 했다. 가뜩이나 긴장되는데 고민할 겨를도 없었다. 질문에 바로 대답해야 했다.

한 교수님이 내게 질문했다. 그분은 H잡지협회 임원을 겸임하고 있었다. 내가 서류 과정을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를 알 것 같았다. 과거 해당 잡지협회 산하 교육원에서 잡지기자 양성과정을 수료한 것이 플러스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 과에 지원하게 된 동기가 있나요?”

“네, 저는 과거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었습니다. 일하는 동안 잡지 판매 부수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이제 인쇄 매체는 사라지고 새로운 매체가 떠오르리라 판단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 전자출판이 있다고 생각되어 지원했습니다.”

나름 스스로의 대답에 만족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타당했다. 과거 잡지사에서 일했던 경력도 어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전자책 회사 대표님이 질문하셨다.

“이전에 전자책을 읽어본 적이 있나요?”

질문하신 대표님의 명찰을 확인했다. 소속 회사와 이름이 익숙했다. 내가 예상했던 면접관 리스트 중 한 분이었다. 나는 평소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기독교 서적만 고집해서 읽었다. 이 전자책 회사도 기독교 분야가 주력이었다.

“네! 대표님의 회사에서 만든 ‘십자가를 통해 들어가는 천국’이라는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이렇게 면접관들을 내 편으로 만들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계속 질문이 이어질수록 더 떨리고 긴장되었다. 계속 제일 먼저 대답하다 보니 불리하다고 느꼈다. 면접관들도 알아채서일까? 거꾸로 5번의 면접자부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면접관들의 배려 덕에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당혹했던 표정과 긴장된 말투를 감출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학과장이신 교수님이 질문했다.

“합격하면 졸업할 때까지 계속 다닐 수 있겠어요? 내가 볼 때는 도중에 관둘 것 같은데?”

그리고 옆에 있던 교수님이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뭐라고 대답 좀 해봐요~!”

순간 내 표정은 확 굳었다. 이력서에 적힌 대학교 학점은 2.8점이었다. 여러 직장을 다녔지만 모두 1년을 버티지 못하고 퇴사했다. 그래서 교수는 나를 의지가 약하고 금방이라도 관두는 사람으로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더 이상 계산하고 재보는 것이 아니라 진실되게 대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대학 시절 많이 아팠습니다. 하루의 절반을 누워서 지냈습니다. 대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생활도 공부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지원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교우들과 친하게 지내며 대학에서 못다한 생활을 누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면접이 끝났고 한 달 뒤 결과가 나왔다. 인터넷을 통해 확인한 결과 불합격이었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과정

 

불합격으로 인해 자책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난 내 인생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대학 시절 고통 가운데 자살 시도 한 번 하지 않은 걸 스스로 기특히 여겼다. 매일 밤 과거 생각들에 시달렸다. 그때마다 시를 쓰며 마음을 달랬다.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 교회를 찾아가 기도하며 버텼다. 그저 20대의 고통스러운 10년 동안 신앙에 의지하며 살아온 것 자체만으로 감사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못다한 공부를 채우기 위해 여러 교육을 받았다. 기자아카데미와 미디어아카데미, 잡지협회교육원을 다니며 글 쓰는 소양을 갖추었다. 그동안 교육원 동기들과 어울리며 서서히 사회성도 길렀다. 출석을 빠지지 않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했다. 자연히 성적도 우수했다. 여러 교육기관의 수료식 때마다 개근상과 우수상을 빠지지 않고 수상했다. 실력뿐 아니라 인성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인생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을 갖기 위해 평생교육원에서 사회복지를 배우며 장애인들과 일했다.

여러 번의 짧은 직장생활도 쉽지는 않았다. 직장을 정할 때 돈보다도 사명감을 우선시했다. 세상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신앙에 합당한 일인지를 먼저 기준 삼았다. 그렇게 회사를 선택하다 보니 멀리 2시간 거리의 회사를 출퇴근했다. 매일 새벽마다 약에서 덜 깬 채 일어나 지하철을 탔다. 일하는 동안 약간 몽롱하고 어눌해서 많이 혼나기도 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다. 매번 상사의 압력에 눌려 회사를 퇴사했지만 그대로 주저앉아 좌절하지 않았다. 다시 취업을 알아보고 회사에 입사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경력도 서서히 늘려나갔다. 그렇게 20대 후반은 여러 교육원과 회사를 다니며 도전과 실패, 그리고 다시 도전을 반복했다.

 

 

사진_픽셀

 

성실했던 대학원 생활

 

대학원에 불합격한 아쉬움은 잊었다. 다시 번역서 전문 출판사에서 교정 교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번엔 밝은 모습으로 열심히 일했다. 사장님도 나를 정직원으로 승급시키겠다고 약속까지 해주셨다. 그러다 전화 한 통이 왔다. 대학원에 입학할 의사가 있느냐는 것이다. 알고 보니 기존 합격자가 빠져나가 추가합격의 기회가 온 것이다. 출판사에 사실을 얘기했고 사장님은 축하해주시며 퇴직을 허락하셨다.

대학원을 다니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생활했다. 수업이 없어도 매일 아침 7시면 학과 컴퓨터실에 도착했다. 경비 아저씨는 아침마다 귀찮아하며 컴퓨터실의 문을 열어주셨다. 그런 경비 아저씨께 밝게 인사하고 가끔 음료수도 챙겨드리며 친해질 수 있었다. 계약학과의 특성상 공부뿐 아니라 업체 실습도 많이 나갔다. 어떤 일거리나 프로젝트가 주어질 때 제일 먼저 나섰다. 다들 머뭇거리던 일도 일단 도전하고 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공기업의 홍보 영상도 만들고 학과 홈페이지도 운영했다. 좋은 공모전이 있으면 동기들에게 알려 참여를 유도했다. 사실 권위적인 교수님으로 인해 대학원 생활이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다들 교수님으로 인해 대학원 생활을 힘들어했다. 그러나 난 그런 사람들을 자주 겪어봐서인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저 대학교 때 누리지 못했던 캠퍼스 생활에 만족했고 행복했다.

 

 

기적 같은 시간들

 

입학한 지 2년의 시간이 지났다. 졸업 시험과 논문도 무사히 통과했다. 그리고 동기들과 함께 전자출판콘텐츠 분야의 첫 번째 석사가 되었다. 조현병 환자가 석사학위를 갖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난 더 학위를 갖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해냈다. 이후로 어떤 일이든 더욱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게 되었다. 특히 조현병 환자로서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일에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성과도 조현병 환자에겐 기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 겪는 어려움이 조현병 환자에게는 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직접 겪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왔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서 생명조차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살아 숨 쉬는 건 그 고통을 잘 이겨내 왔다는 증거다. 결코 의지나 정신력이 약해서 병을 겪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일반 사람들보다 강하고 슬기롭게 이 병을 감당하고 있다. 내게 조현병은 장벽이 아니라 장벽을 넘게 해주는 발판이 될 것이다. 

 

 

* 정신의학신문은 특정 종교와 무관한 언론사입니다. 옥탑방 글쟁이님의 글을 통해 조현병에 대해 잘못된 인식이 바뀌기를 기대합니다.

* 정신의학신문에서 독자기고 칼럼을 게재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정신의학신문 홈페이지 - 게시판 -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옥탑방 글쟁이  info.psynew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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