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이대로 부도나길 바랐다.

그럼 정당한 퇴사 사유를 얻고 경력에 오점도 남기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사진_픽사베이

 

치료보다 중요한 것

 

나는 조현병이 재발하지 않도록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병이 완치될 수 있게 기도하겠다고. 언젠가는 약도 끊을 수 있을 거라고. 많은 목사들이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정신병은 떠나갈지어다~!” 한번은 대형교회의 치유 은사 집회에 갔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미국인 목사가 병이 낫길 원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 했다. 나도 손을 들었다. 목사는 내 머리를 잡으며 15초간 기도해줬다. 그러나 병은 낫지 않았다.

실제로 1학년 겨울방학의 새벽기도를 통해 병이 낫는 기적을 체험했다. 그래서 병원 치료와 약을 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몇 달 못가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결국, 재발되어 1년 정도를 고생했던 것 같다. 이후로 의사와의 상담 없이 약을 끊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 다만, 조현병이 낫지 않더라도 이미 내가 받은 은혜가 충분하다. 더 이상 조현병이 낫는 것에만 매달리며 기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현병조차도 내 삶의 축복이 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진실할 수 없었던 사명감

 

학교를 졸업하고 기독 동아리를 떠나 동네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인 300여 명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교회였다. 온 목회자와 성도들이 ‘같은 뜻, 같은 마음, 같은 행동’이라는 슬로건에 따라 열심히 신앙생활했다. 부흥과 축복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했다. 길거리 커피 봉사와 동네 청소, 부흥회를 위한 새신자 초대 등 많은 사역과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전도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성도들도 교육받은 대로 지인들을 교회로 초대했다. 특히 모든 성도들은 배가성장(가칭)이라는 신앙 교육 프로그램을 받아야 했다. 부산의 한 목사가 만든 부흥 프로그램이었다. 그 목사는 배가성장을 통해 작은 교회를 3만여 명의 성도가 출석하는 대형 교회로 부흥시켰다. 그래서 전국의 많은 목사와 교회들이 이 프로그램을 따라 하고 있었다. 우리 교회도 배가성장의 교재와 시스템, 정신을 가져와 배우기 시작했다. 나도 배가성장을 신뢰하여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전공을 살려 언론사나 출판사 취업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배가성장 출판사(가칭)의 구인 공고를 보았다. 프로그램을 만든 부산의 목사가 직접 운영하는 회사였다. 원조 격인 이 회사에 근무하며 배가성장을 배우고 하나님 나라 부흥을 돕겠다고 다짐했다. 이력서를 내고 거의 매일 간절히 기도했다. 내 생에 손꼽히는 간절한 기도였다. 정직원 월급 120만 원에 3개월간 수습사원으로 88만 원만 받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명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몇 주 뒤 출판사에 합격했고 편집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며칠 뒤에는 직접 출판사의 대표 목사님도 만났다. 목사님은 내게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 사명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입사 후 두 달 뒤 부산의 교회에서 배가성장 전국 세미나를 진행했다. 출판사 직원들도 세미나 스텝으로 진행을 도왔다. 전국 각지에서 프로그램을 배우기 위해 목회자와 성도들이 몰려들었다. 교회건물이 매우 크다 보니 모든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다. 2박 3일간의 세미나에서 행사 사진 촬영과 책 판매를 맡았다. 마지막 날 모든 세미나를 마치고 직원들이 대표 목사님께 인사하러 출구 쪽 복도에 서 있었다. 위 층 예배당에서 대표 목사님이 수행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20여 명의 부목사와 전도사들이 배웅하기 위해 양쪽으로 긴 행렬을 이루었다. 그 가운데를 대표 목사가 지나갈 때마다 부목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대표 목사는 기사가 운전하는 외제 차를 타고 교회를 떠나갔다.

 

사진_픽사베이

 

 

스스로 참지 못한 교만함

 

이후로 다시 직장을 알아보았다. 이번엔 이단, 사이비 종교를 조사하고 취재하는 기독교 언론사에 들어갔다. 수습 기간에 10여 곳의 이단 교회 예배에 참여해야 했다. 직접 교주의 설교를 듣고 이를 녹음, 촬영하여 회사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녹음을 위한 장비를 챙기고 신분을 감춘 채 예배당에 들어서면 마치 스파이나 국정 요원이 된 듯했다. 가장 위험한 최전선에 투입된 비밀 결사대처럼 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다니는 회사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자칫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이단에 대한 지식을 쌓은 뒤 직접 현장 취재를 나갔다. 이단에 빠진 자녀를 구하고자 1인 피켓 시위를 하는 어머니,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를 바치고자 했던 신학생 출신 추수꾼 아들, 교주에게 몸을 바쳤던 여성, 탈퇴한 신도를 테러하고 감옥 생활을 했던 회심자까지. 취재를 하다 보면 마음뿐 아니라 영혼까지 어두워지는 듯했다.

물론, 늘 어두운 상황만 취재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은 일반 교회를 소개하는 기사도 썼다. 취재를 가면 담임 목사님들에게 식사대접을 받았다. 일반 청년으로서는 일대일로 만나기 힘든 분들이었다. 하지만 언론사를 대표해 온 기자로서 주눅 들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들이 나를 교만하게 했다. 마음이 교만해지다 보니 몸도 건강하지 못했다. 부정적인 내용을 취재하며 얼굴과 표정까지 어두워졌다. 그래서인지 회사 선배 기자로부터 정신 차리라!며 혼도 많이 났다.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그리고 먹는 것에 매달렸다. 그럴수록 더 이상 회사 생활을 견디기 힘들었다.

회사 경영도 힘들어졌다. 대표님이 교회에서 강의하던 중 스크린 화면을 누군가 핸드폰으로 촬영하여 인터넷에 올린 것이다. 당시 화면에는 어린아이들이 교주를 찬양하는 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았다. 결국 명예훼손죄로 6명의 아이들 각각에게 2천만 원씩 벌금을 내도록 선고받았다. 직원 10여 명의 중소 언론사로서 총 1억 2천만 원의 벌금을 감당할 수 없었다. 사무실은 경매에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나의 기자 생활도 자연스레 끝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한 유명한 목사님이 페이스북에 우리 회사의 사정을 알린 것이다. 이는 모금 활동으로 이어졌고 전국의 많은 청년과 성도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았다. 결국, 벌금을 낼 수 있었고 한 기독교 기업은 전담 변호사까지 고용해 주었다.

회사는 다시 살아날 수 있었지만 난 양심이 찔렸다.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사직서를 낼지 말지 망설이던 중이었다. 차라리 이대로 부도나길 바랐다. 그럼 정당한 퇴사 사유를 얻고 경력에 오점도 남기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직원들은 매일 아침 회의실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업무를 시작했다. 회사를 위해 기도할 때면 기도하는 나의 모습이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회사를 설립한 초대 대표님은 이단 종교 신자의 테러에 돌아가셨는데, 회의실에 걸린 그분의 초상화를 볼 때마다 죄책감마저 들었다. 상사의 질책과 몸무게가 늘어난 나의 몸, 영혼의 피로까지 겹쳤다. 차라리 같은 임금을 받으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사명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내 안의 교만함도 스스로 견딜 수 없었다.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진_픽셀

 

글을 쓰며 찾은 행복

 

짧은 기자 생활은 그렇게 끝났지만,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과거처럼 출판사나 언론사에서 돈을 받고 일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여유로운 상황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글을 쓰고 있다. 내게 글 쓰는 은사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이 은사를 어디에 쓰는지가 중요했다. 만약 신앙을 갖지 못했다면 분노와 증오를 담아 세상을 욕하는 글을 썼을 것이다. 만약 교만함을 깨닫지 못했다면 나를 드러내는 글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조현병이라는 선물을 주셨다. 매일 밤마다 고통과 눈물로 잠들지 못하고 쓴 글에 진정성을 담을 수 있었다. 조현병을 겪지 않아 과거의 상처와 기억들이 지워져 버렸다면 이 글은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 상황을 이해해주고 위로와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 글을 쓸 힘조차 없었을 것이다. 조현병을 잊고 편안한 삶을 살고 있었다면 아픈 과거를 되돌아보는 이 작업에서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병을 다스리며 살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더 이상 병을 치료해달라고만 매달리지 않는다. 병이 치료되면 좋겠으나 치료가 되지 않아도 원망치 않는다. 그보다 먼저 나를 선하게 써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 정신의학신문은 특정 종교와 무관한 언론사입니다. 옥탑방 글쟁이님의 글을 통해 조현병에 대해 잘못된 인식이 바뀌기를 기대합니다.

* 정신의학신문에서 독자기고 칼럼을 게재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정신의학신문 홈페이지 - 게시판 -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