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윤희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J님의 사연

 

안녕하세요, 감정의 전이 편을 듣고 궁금한 것이 생겨서 메일 드립니다. 그 분과 제가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아서요.

저는 조울증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에게 분리불안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병이 나아지고 있는데, 혹시 다 나아서 못 보게 될까 두려운 마음까지 듭니다. 의사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나기도 하면서 갈수록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혹시 제 병이 나아지면 저를 나이롱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포함해서요. 차마 이런 말을 주치의 선생님께는 말 못하겠고, 병은 좋아지고 있는데 분리불안을 느껴서 혼란스럽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성애적 느낌이 드냐고 물으시면 그것도 맞는데요, 저는 그 의사 선생님과 사귀고 싶다거나 그런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다만 그저 제가 버림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두려워집니다. 사적인 관계도 아니고 의사 환자 관계인데 말이에요. 책에서 보니까 이렇게 사소한 관계에도 이별을 두려워하고 집착하는 게 나르시스트 성격 장애와 관련 있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생각해도 저는 나르시스트 성향이 강하기는 합니다. 시기심도 많고, 다른 사람들 의식도 많이 하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겠습니다.

이런 마음 주치의 선생님한테는 말 못할 것 같아요, 저를 구질구질하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걱정이 많이 됩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뇌부자들의 답장

 

안녕하세요. J님의 사연을 읽으면서 정말 어디에도 이야기하기 힘든 고민을 하고 있으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께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을 직접 말하기도 힘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그렇고, 참 어쩔 줄 모르는 것이 당연할 것 같기도 합니다.

J님이 이야기하신 분리 불안이라는 이야기가 크게 와 닿네요. 실제로 진료실에서도 분리불안이 느껴지는 순간이 많습니다. ‘나는 아직 완전히 좋아지지 않았는데 병원에 오지 말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하기도 하고, J님처럼 ‘병이 나으면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할 수도 있고요. 어쩌면 J님도 지금 이 두 가지 생각이 섞여 있는 상황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J님이 스스로의 마음에 대해 책을 찾아보고 나르시스트 성향 때문인 것 같다고 하셨는데요. 보통 나르시스트, 자기애적인 사람은 자신감이 넘치고 뭐든지 마음먹은 대로 하는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꽤 많은 수의 자기애적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고 남들의 지적에 민감한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내현적 자기애 성향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남들이 나를 안 좋게 볼까 걱정이 되는 마음에 쉽게 불안해지고, 특히나 이별을 하는 것은 두려운 감정이 들기도 하죠.

 

분리불안과 자기애적 성향. 이 두 가지가 J님의 불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 그래도 마음의 병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진료를 보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불안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 역시나 마음을 아프게 할 것 같아서 안쓰럽네요. 이런 마음이 금방 편안해지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두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선 첫째로 주치의 선생님이 J님을 어떻게 볼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지금처럼 J님에게 도움이 되었고, J님도 신뢰를 하고 있는 의사분이라면, J님을 단지 ‘나이롱환자’ 같이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같은 의사 입장으로서 생각해 봐도, 저에게 진료를 보던 분이 점차 상태가 나아지고 계속 병원에 오신다면, 그 자체로도 저도 기분이 좋고 제 마음도 안심이 되거든요. 절대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 다음으로, 자꾸만 이렇게 불안한 마음이 드는 원인이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면, 자존감을 높여갈 수 있는 변화를 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변화가 쌓이면 나중에는 큰 차이가 보일 거예요. 예를 들어, 조울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초반보다 상태가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우선 이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있죠. 조울증, 감정 기복을 극복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인데, 지금까지 이만큼의 변화가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거든요. 그 외에도 매일매일, 작은 것이더라도 내가 해낸 것들을 생각하고 스스로를 칭찬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무언가를 성취했다면 ‘오늘은 이런 일을 했구나, 참 잘 했어’라고 속으로 이야기를 하고, 마음먹은 대로 일이 잘 안 풀렸다면 ‘오늘도 힘들었는데, 그래도 잘 견뎠구나. 잘 했어’ 이렇게 내가 노력한 것, 시도했다는 행동을 격려해 주세요. 이런 작은 변화들이 계속 쌓이면 분명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자존감이 많이 회복이 되면 불안한 마음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거든요.

 

사진_픽셀

 

여기까지가 저희 뇌부자들이 드리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병원을 다니면서 생긴 고민에 대해서 용기 내서 이야기해주셨는데요, 저희가 드린 이야기를 듣고 조금이나마 마음이 안심이 되었기를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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