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오동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J씨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우울증이 있는 룸메이트와 살고 있어요. 매일 주변 사람들이나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하며 울고, 식사를 거른 채 술만 마시니까 걱정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나름 고민 상담도 해주고, 요리를 해주거나 작은 선물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증상들이 심할 때는 저도 스트레스를 받아 일부러 늦게 귀가하기도 했습니다. 룸메이트가 감정 컨트롤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하기 싫어지는 마음에 제가 매정한 것은 아닌가 싶었어요.

 

결국 룸메이트에게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설득을 했습니다. 지금은 치료를 받으면서 상태가 많이 좋아져 다행인데요, 이럴 때 전문가가 아닌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지 궁금해졌습니다. 공통의 지인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싶기도 했고 가족에게 알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혹시 프라이버시 침해일까봐 망설여졌어요. 힘든 일을 토로하면,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공감을 해주는 것이 좋은 건가요? 그리고 치료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직설적으로 얘기했던 것이 괜찮았던 걸까요? 그 친구가 당시 저의 제안을 잘 받아들여 다행이었지만, 혹시라도 오히려 반감을 가질까봐 걱정이 되었거든요. 치료를 권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요?

 

사진_픽셀

 

뇌부자들의 답장:

안녕하세요 뇌부자들 입니다.

 

사연을 읽고 J씨께서 정말 배려심이 깊은 친구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사실 우울증 환자 분을 곁에서 지켜 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하루 종일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쳐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J씨께선 스스로 매정한 게 아닌가 싶었다고 하셨지만, 식사를 챙기기도 하고 치료를 받도록 설득까지 하신 걸 보면 가족 이상으로 큰 도움을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우울증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병원에 함께 오신 환자 분의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종종 받곤 합니다. 환자 분을 돕고 싶은 마음은 큰데, 잘못된 방법으로 도와주려다 오히려 더 나빠지면 어쩌지? 라는 걱정들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같은 병이라고 해도 환자 분들마다 성격도, 주위의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를 드려보겠습니다.

 

우울증을 앓고 계신 분들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고립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일수록 가까이 계시는 분들이 ‘난 항상 너의 곁에 있다, 니가 힘들 때 정말 도와주고 싶으니, 절대 부담 갖지 말고 언제든 이야기해라’ 라는 메세지를 주는 게 중요합니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친구와 싸운 후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안겨 울어본 경험 다들 있으실 거에요.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면 속상함이 가라앉고 '엄마는 내 편이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 지는데요, 이러한 엄마의 존재를 심리적 안전기지(secure base)라고 부릅니다. 성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힘들 때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생각은 성인이 된 후에도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들에 무너지지 않게 받쳐주는 큰 힘이 됩니다.

 

또한 '자신이 영원히 회복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무망감(hopelessness) 역시 우울증 환자 분들을 괴롭히는 증상 중 하나입니다. 이로 인해 객관적으로는 증상이 호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분들도 생겨나고요. 그럴 때 “지금 많이 힘들겠지만 우울증은 분명 좋아지는 병이야. 내가 보기엔 이런 부분은 분명히 좋아졌어.”등의 이야기를 통해 격려를 해주시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때 너무 노골적이거나 과도한 표현은 피해야 합니다. 평소와 지나치게 다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더욱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힘든 일에 대해 토로할 때는 충분히 감정을 쏟아낼 수 있도록 공감 해 주시고, 해결책은 직접 제시하기보다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나를 믿고 고민을 털어놔 줘서 고맙다. 그런데 니가 점점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라고 느낀 점을 솔직히 이야기를 한 다음에 어떻게 더 도와주면 될 지를 직접 물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다만, 일상생활이 유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울증이 심할 때나 자살과 관련된 행동을 보인다면 보다 직접적으로, 강력하게 치료를 권유하셔야 합니다. 가족들에게 알리는 것 역시 이러한 상황에선 해야만 하겠죠. 치료를 망설이는 분에겐 처음 갈 때 같이 가주겠다고 말을 꺼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J씨 입장에서 조언 드리자면, 혹시 룸메이트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큰 부담과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 보시면 좋겠어요. 오랜 기간 고민하고 애써오신 덕분에 친구분이 좋아진 건 분명한데,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이 지치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일주일 중 얼마 만큼의 시간, 몇 번의 횟수까지는 내가 이 친구를 위해 쓰겠다 라는 식의 제한을 두는 방법도 생각해보시면 어떨까 해요. 그게 친구 분 곁에 좀 더 오래 남아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기도 하고요.

 

 

[더 자세한 내용들을 팟캐스트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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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빵: http://www.podbbang.com/ch/13552?e=22534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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