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정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약을 먹게 되면 그 자체만으로도 슬플 것 같아요"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한 청년이 저의 약물치료 권유를 듣자 한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참 많이 아팠습니다. 정신과에 대한 수많은 편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치료에서 멀어지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지 새삼 떠올랐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정신과 편견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정신과 낙인-첫 번째 이야기] 당신은 정신과 환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를 했다면, 오늘은 편견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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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말에는 정신과 약물에 대한 편견과 함께 약을 먹게 되면 그 순간 진짜 정신과 환자가 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처음 내원한 환자들을 만났을 때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물론 현실적인 걱정도 있습니다. 취직에 문제되지는 않을지, 사람들에게 불필요하게 알려지지 않을지 등등이요. 하지만 제가 진료 환경에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걱정은 현실적인 범위를 훨씬 넘어서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듣는, 혹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정신과에 대한 선입견은 만약의 경우 나 혹은 가족이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었을 때 나를 향한 칼날로 돌아오게 됩니다. 평소에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만 언제든 나의 상처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 바로 편견입니다.

 

정신과에 대한 잘못된 편견은 정신과 환자들로 하여금 자존감의 저하를 느끼게 하고 스스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게끔 합니다. 대부분의 정신과 질환 치료 과정에는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치료적으로 매우 중요한데, 편견은 이렇게 환자들을 치료의 반대방향으로 끌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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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받는 건 환자 뿐만이 아닙니다. 가족들이 겪는 심적인 고통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내 가족이 정신과 진료를 받을 때 많은 가족들이 수치심,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가정 내 불화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수도 없어 환자와 가족들의 상처는 한없이 안으로 곪아 들어갑니다. 급기야는 치료의 가장 큰 지지기반인 가족이 환자에게서 등을 지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내 머리 속 편견으로 인해 치료에서 멀어지고 가족은 함께 고통 받거나 등 돌리고, 이 모든 상황은 결국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고립시켜 한구석으로 몰아넣습니다. 손을 내미는 사람도 별로 없고, 다행히 누군가 손을 내밀어줘도 자신의 손을 뻗어 잡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가 형성이 됩니다.

 

이 모든 선입견은 마치 사방으로 얽힌 거미줄과 같아서 쉽게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간신히 줄 하나를 끊어낸다고 해도 주위의 다른 줄들이 이미 내 팔다리를 휘어 감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분명 병원에 치료 받으러 왔는데 ‘치료를 받지 않을 방법은 없나요?’라고 물어야 하는 웃지 못할 장면들이 진료실에서는 흔히 벌어집니다.

 

편견,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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