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권용석 참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사진_pexels modified by editor

 

"어라!? 나 이거...전에 있었던 일 같아."

 

데자뷰(déjà vu, 기시감)는 처음 겪는 상황이나 장소를 이전에 경험했던(꿈이든 실제이든), 혹은 친숙한 것으로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젊은 층에서 자주 경험하고 나이가 들면서 감소하는 경향이며, 피곤하거나 졸릴 때 더 잘 생깁니다.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성인 10명 중 6명 이상이 이런 경험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 데자뷰와 반대의 현상은 자메 뷰(jamais vu, 미시감). 익숙하고 경험했던 상황을 처음 겪는 것으로 느끼는 것.]

 

이 현상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19세기 뇌신경과학이 발전하면서 개념이 자리잡았습니다. 명칭도 19세기 프랑스의 정신학자인 Emile Boirac이 그의 책에서 처음 이 현상에 대해 언급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라 신경학자, 정신분석가, 심리학자의 견해에 따라 다양한 이론이 제기되었습니다. 20세기 이후 현재까지 이 현상은 기억착오(paramnesia)로 분류되어 연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명쾌하게 증명이 이루어진 부분은 아닙니다.

이 글은 데자뷰를 최신의 뇌과학의 측면, 즉 기억과 관련된 측면에서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 현상학적 설명 >

사진_Emile Boirac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우선 이 경험 자체를 현상학적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1.낯선 것(환경, 경험, 분위기)이지만 부적절하게 느껴지는 익숙함
: 현재의 느낌이 과거 지정할 수 없는 시점에서 느꼈던 것으로

2.실제로 어떤 사건이나 감정과는 연관이 없지만, 그렇다고 애매하고 모호한 느낌은 아니다. 
: 자세하고 확실하게 묘사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내용뿐 아니라 태도, 시점 등도 동일한 느낌으로 경험한다.
3. 그렇지만 보통 맥락이 없고, 시계열성 상관도 없다. (그래서 전생으로 이해하기도.)
4. 환각이나 백일몽과 같은 상태로 보이지만 현실판단능력은 멀쩡하다.

 

 

< 데자뷰를 기억의 측면에서 설명하기>

현재는 여러 이론 중에서 "기억의 인출과정에서의 구조적, 기능적 오류로 인한 것"이 가장 설득력있는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기억과 관련된 이론은 측두엽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서 이 현상이 자주 나타나는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할 때는 머리에 입력되고, 저장된 후, 다시 불러오는 인출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부분은 우리 뇌에서 해마라는 부분이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바로 측두엽에 이 해마가 존재합니다.

 

사진 좌_hippocampus(닥터단감), 우_parahippocampal gyrus(위키미디어공용)

 

해마는 측두엽 중에서도 내측 측두엽(medial temporal lobe)에 위치하고 있고, 기억이 온전히 작동하려면 해마와 주변 구조물 사이의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정보가 오가는 과정에는 해마 주변의 구조물에서 여러 정보가 취합되어야 하고, 이 정보가 잘 전달되어야 하며, 이 내용을 검증해야 하는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특히 어떤 기억을 다시 불러올 때 즉, 인출과정에서는 해마옆 피질(parahippocampal cortex)이라는 부분에서 그 기억의 연관성을 검증하게 됩니다. 특히 이 부분은 "장소"와 관련된 친숙함을 판단하는 부분입니다. "어디인가를 알고 있는 느낌"이 바로 이 부분에서 발생하는 것이지요.

 

비유로 예를 들자면, 한 지역의 풍경 사진이 해마옆 피질이라고 한다면, 해마는 그 지역의 지도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왼쪽 풍경이 해마옆 피질의 기능 / 오른쪽 지도는 해마의 기능 (좌_픽사베이 / 우_구글맵)

 

즉, 데자뷰는 바로 이 측두엽과 연관된 다른 뇌 부분의 연결의 오류가 발생해서 생기는 현상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false activation).

 

기억 과정에서 해마의 개입이 적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연성이 떨어지는 주변 이 부분의 판단에만 의존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사진만 보고 어디인지 본 적이 있고, 가본 적은 있지만 정확한 주소나 위치를 모르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실제로 데자뷰 동안에는 디테일 하나 하나가 떠오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닮아있고, 또 돌아보면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바로 이 해마와 관련된 네트워크의 역할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역시 하나의 가설로서 뇌파 연구로 일부 증명이 되기는 했으나 구체적인 구조물과 관련된 증거는 아직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현재는 순수한 기억이나 인지 자체의 별개의 문제만로는 볼 수 없다는 연구가 더 많습니다. 오히려 기억과 인지의 상호작용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가설도 제기되었습니다. 즉, 관련된 구조물이 측두엽에 국한된 것이 아닌 다른 부분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 기억-인지 이외의 데자뷰의 설명 이론들

- 정신분석 이론:  자아가 현실에 대한 경험을 억압된 무의식적 환상 내용의 기억 또는 금지된 소망과 관련된 과거의 어떤 구체적 경험에 맞추어 변경하는, 퇴행적 방어기제.

- 신경학적 이론: 이중 프로세싱; 평소 조율이 잘 이루어지는 뇌의 두 부분의 인지체계가 일시적인 부조화를 보이는 것.
좌뇌와 우뇌의 인식된 정보가 서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손상을 입은 뇌 기능으로 인해 같은 정보를 두 번씩, 혹은 지연되어 전달되는 것이 데자뷰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참고
The Journal of Neuropsychiatry and Clinical Neurosciences; Winter 2002; 14, 1;6-10
Symptoms in the mind 4th edition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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