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수면제는 아마 정신계통에 작용하는 약물 중 가장 대중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용제(Psychotropics) 자체가 대중이 흔히 접하는 약물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수면제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만큼 스스로 치료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수준의 불면증이 매우 흔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단순 수면유도제는 굳이 정신과를 방문하지 않아도 구할 수 있어, 항불안제나 항정신병제제만큼 사람들의 선입견이 높지도 않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만큼 그 효용성과 부작용에 대해 이런저런 오해를 많이 낳고 있기도 하다.

 

사진_픽셀

 

회사원 A씨의 잠 못드는 밤. A씨는 요사이 밤마다 찾아오는 불면증 덕에 어제도, 그제도 4시간을 채 못잤다. 잠이 부족하니 출근해서는 틈만 나면 꾸벅꾸벅 졸기 일쑤. 회사에서는 그렇게 잠이 몰려오더니 침대에만 누우니 왜 이렇게 잠이 오질 않는 건지, 천근만근 눈꺼풀이 무겁도록 졸린데, 도통 잠은 잡힐듯 잡힐듯 오질 않는다. 속절없이 뒤척이기만 할 뿐이다. 내일은 정말 중요한 회의가 아침부터 잡혀있는데... 지금부터라도 잠들어봐야 5시간 밖에 못잔다 생각하니 더 불안해진다. 자야한다. 자야만한다... 아 그렇지! 불현듯 아내가 지난달에 잠시 먹다가 남았던 수면제가 생각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랍에서 수면제를 꺼내 한알을 입안에 털어넣는다. 그리고 스르르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든다.

효과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것 같다. 수면제 한 알에 기적 같은 꿀잠을 자고 비교적 상쾌하게 출근한 다음날, 퇴근을 하여 다시 잠자리에 들며 어제의 그 수면제가 다시 떠오른다. 분명 먹으면 편하게 잘 수 있을 텐데... 그런데 또 이번에는 과연 먹어도 괜찮은건가 이런저런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중독이 되는건 아닐까. 약을 못 끊게 되는 건 아닐까. 머리가 나빠지는 건 아닐까. A씨는 불안함을 달래고자 인터넷을 뒤져보지만, 볼 수록 무서운 이야기들만 눈에 띈다. "수면제는 치매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수면제를 먹고 잠결에 자살을 한 여인 이야기" 등등.. 찾아볼수록 어제 먹은 수면제마저 걱정이 되기 시작해진다. 불안해진다.

 

정말로 수면제는 위험한 유혹일까. 최근 각종 언론과 인터넷 포털에서는 수면제의 인지기능 저하나 수면이상행동 등의 부작용을 조명하며 수면제의 위험성에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마치 수면제가 마약이라도 된 것처럼 그 위험성을 심각하게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수많은 수면장애 환자들로서는 불안하기 이를 데가 없을 수 밖에 없다.

 

사진_플리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수면제는 불면증 치료제로서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전문가의 처방과 복약지도에 따라서만 잘 복용한다면 그 위험성은 거의 높지 않다. 수면장애의 단기치료 효과를 분명하게 기대할 수 있고, 그 부작용은 사실상 효과 대비 위험한 수준이라고 이야기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흔히 이야기되는 수면제의 부작용들 -의존성, 인지기능 저하, 이상행동 등의 부작용 등이 전혀 없는 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수면제가 무척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는 크게 세 가지 부분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로, 수면제는 가장 쉽고 빠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쉽고 빠른 방법이니 위험하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표현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보다는, 수면제가 대체불가능한 치료 방법으로서 선택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수면장애를 치료하는 방법은 약물치료와 비약물적치료-인지행동치료가 있다. 최근 발표되는 연구들에서는 불면증의 인지행동치료가 약물치료와 비슷한 효과를 내고 보다 장기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보고가 되고 있다. 약을 쓰지 않고도 불면증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약물치료가 훨씬 더 환자들에게 선호되는 방법이다. 인지행동치료는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또 그 과정에서 수면 패턴과 생활 습관을 교정해야하는 환자의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현실적으로 바쁜 일상 속에서 그 생활 패턴을 교정한다는 것이 무척 어렵고 때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 선택될 수 있는 수면제는 단기간의 치료에 있어 빠른 증상 개선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선택제일 수도 있다.

 

둘째로, 수면제는 잘 복용할 경우에 상당히 안전한 약물이다. 과거 수십년 전 수면제로 사용되던 barbiturate 계열의 약물들은 그 용량의 안전성 폭이 상당히 좁았다. 과량 복용할 경우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나 호흡부전을 유발할 수도 있었고, 그래서 실제로 자살에 비극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최근 주로 수면제로 사용되는 약들은 용량의 안전 폭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과량을 복용해도 심하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고, 신장이나 간, 뇌 등 주요 장기에 비가역적인 손상을 주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부작용인 ‘의존성’ 역시도, 의사의 세심한 처방과 용량 조절을 잘 따를 경우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다.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수면제가 의존, 중독에 따른 남용, 오용의 위험성을 보이는 경우는 대부분 의사의 권고에 따르지 않고 불규칙하게 약물을 복용했을 때이다.

또, 최근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인지기능 저하와 치매 유발의 위험성도,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수면제를 부적절하게 오남용했을 때의 경우에 주로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일차성 불면증의 치료에 단기간 사용하는 경우가 아닌, 과량을 장기간 복용했을 때에, 혹은 고령의 경우에 드물게 치매 발병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다. 고령의 경우에는 간혹 수면제로 인한 섬망 증세나 일시적인 인지기능 저하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의사의 관리감독에 따라 충분히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수면제로 처방되는 약들은 단순히 수면유도만 목적으로 하는게 아닌 경우를 포함할 수 있다. 불면증은 사실 환자들 스스로가 잘 느끼고 있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른 정신과적 질환을 동반하고 있을 가능성이 무척 크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적응장애 등으로 인해 발생한 이차적인 불면증을 보이는 환자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수면제는 단순히 잠을 잘 오게 해주는 효과 이외에도 불안을 가라앉혀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또한 다른 항우울제나 항정신병제제들 역시 단순한 불면증 뿐 아니라 우울감과 불안감 등을 함께 근본적으로 호전시킬 수 있는 약물들을 포함하고 있다. 수면과 불안, 우울의 급성 증상을 목표로 단기간 회복을 돕는데에는 약물 이상의 선택을 고려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임상에서는 환자들이 이러한 목적으로 처방된 약물들을 단순히 수면제라고 생각하고 그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약물을 지시대로 복용하지 않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과도한 부작용 걱정에 본래의 목적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사진_위키미디어공용

 

“Slow Cow"라는 음료가 한 때 숙면을 돕는 효과가 있다는 소문과 함께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수면유도 성분은 없지만 아미노산, 허브추출물등의 천연물질들이 잠을 잘 자게 해준다는 소문과 함께 잠을 깨워주는 카페인 음료의 대척점에서 선풍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수면제에 대한 불안감은 있지만, 한모금에 숙면을 찾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대중들의 수요가 여전히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부작용이 두렵다고 수면제는 피하면서, 대신 술을 자꾸 찾게 되는 불면증 환자들을 쉽게 볼 수 있기도 하다. 술이 약보다 훨씬 더 위험한 중독성 물질임에도 말이다.

 

숨 가쁘게 바쁜 하루들을 버텨내야만 하는 각박한 사회는 점점 현대인들을 잠 못드는 밤으로 몰아내고 있다. 몸과 마음이 쉴 곳을 찾지 못하게 될수록 점점 잠들기조차 어려워지는 듯하다. 퇴근과 휴식에 목마른 현대인들에게, 꿀잠에 대한 갈증 또한 그 못지 않게 허덕이고 있다. 하루 중 온전하게 쉴 수 있는 그 시간, 잠을 즐길 권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사진_픽셀

 

“수면은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최고의 약이다” - 세르반테스

무절제한 남용은 위험하지만 적절한 수면제의 사용은 지친 몸과 마음에 달콤한 휴식을 되찾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지름길을 제시해 줄 수 있다. 몇몇 경우의 극단적인 부작용을 두려워하여 약물치료를 근거 없이 멀리하는 것이 과연 더 건강한 삶으로 가는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처럼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직업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힘을 많이 얻습니다. 정성스런 상담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 자신에게 궁금했던 질문에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