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병원에서, 시설에서, 사회에서 끊어낸 것은 무엇일까

[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 기사보기 - 그는 사람이 매달려 있는 밧줄을 끊었다<상>

 

1995년 정신보건법이 제정되면서, 지역사회 중심의 정신보건서비스제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병원에서 제한된 입원치료를 받던 환자를 재활치료를 통해 사회로 복귀시키자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이 정책을 기반으로 정신보건종사자, 환자, 보호자들이 많은 노력을 했으며, 환자들은 사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들을 관리하기 위해 보건소의 기능이 강화되고, 지역정신보건센터, 사회복귀시설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법의 취지대로 병원 밖으로 나온 환자들이 정신보건센터나 사회복귀시설에 의지하며 세상에 적응하는 듯 했다.

 

하지만 법의 좋은 취지에 미치지 못하는, 전문가 의견 반영과 부족한 예산은 정신보건체계 전체를 점차 왜곡시켰다. 정부의 예산으로는 필요한 모든 시설을 만들고, 인력을 채용할 수는 없었다. 적은 예산을 나눠 사설 사회복귀시설에 약소한 지원금을 주고, 그들이 병원 밖을 나온 정신과 환자들을 지탱해주기를 바랐다. 경증 정신질환자는 돌보는데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래서 사설 정신보건시설은 경증 정신질환자를 입소시킬 수 있었고, 그들의 버팀목이 됐다. 하지만 중증 정신질환자를 돌보기 위한 시설과 인력을 충당하기에는 정부 지원금은 부족했다. 그래서 사설 정신보건시설은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소시킬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병원 밖으로 나온 중증 정신질환자들은 정신보건 시설이 아닌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진_픽사베이

 

도와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중증정신질환자는 환자 본인, 가족, 사회를 차례로 병들게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아직 우리 사회에는 정신질환자가 안전하게 일하거나 머물 수 있는 곳이 없기에 그들은 주로 집안에서만 생활했다. 또 그들의 생활을 보조해 주기 위해 가족 중 한 명은 늘 곁에 있어야 한다. 적절한 치료 및 재활을 받지 못한 중증 정신질환자는 평생 노동력을 상실하는데, 그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 구성원 한 명도 환자로 인해 노동력을 쓸 수 없게 된다.

 

이 상황은 4인 가족 기준으로 봤을 때 경제적 재앙이다. 네 명 중 두 명이 평생 노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결국 가족들은 절망 속에서 생각하게 된다. ‘환자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병원을 바꿔가며 계속 입원을 시키자. 환자를 자주 외박시켜주면 지금보다 서로 더 좋을거야.’ 성인 한명이 돈을 더 벌 수 있으면, 그 돈으로 병원비를 내고도 남기 때문에 실제로 가능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환자를 돌보기 위해 썼던 시간들을 다른 곳에 쓸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생각은 가족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물론 계속 입원을 하게 되는 환자는 반발하게 되고, 가족들과 갈등이 커진다. 이렇게 환자 가족들 내부에서는 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갈등을 겪게 되지만, 이 단계에서 사회에는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문제는 환자와의 갈등으로 4인 가족이 해체되거나, 가족 구성원 중 일부가 고령으로 사망하는 경우 발생한다. 중증 질환자의 부모가 이혼을 하거나 사망을 하고, 형제가 환자와 관계가 틀어져 등을 돌린다면, 중증 정신질환자 1인 가구 혹은 중증 정신질환자와 노모 2인 가구가 만들어진다. 중증 정신질환자 1인 가구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증상이 악화된다. 스스로 식사나 약을 챙기거나, 병원에 방문하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증상이 악화돼도 보호자가 없기에 병원에 데려갈 사람이 없다. 증상이 극심하게 악화되어야만 주변 이웃이 경찰에 신고를 하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혹은 법원으로 끌려가게 된다. 중증 정신질환자와 노모 2인 가구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령의 보호자는 환자를 돌보는데 신체적 한계가 있다. 때문에 환자의 증상이 악화되면, 보호자는 그런 환자가 무서워서 병원에 가자는 말조차 할 수 없다. 그러다가 점점 증상이 악화되어 결국 경찰이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중증 정신질환자로 인해 경찰이 개입하게 되는 방식은 다양하다. 중증 정신질환자가 집안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어 주변 이웃이 신고를 해도 경찰이 개입하고, 중증 질환자가 강남역에서 칼을 휘둘러도 경찰이 개입하는 것이다. 또, 중증 정신질환자가 아파트 외벽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밧줄을 끊었을 때도 경찰이 개입하게 된다.

 

사진_픽사베이

 

철저한 준비 없이, 병원에서 지역사회로 이동(이하 탈원화)한 중증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 증가는 국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1960년대 후반 케네디 정부는 매년 29억 달러를 지역사회 정신보건체계 구축에 투입하며 탈원화에 힘썼다. 하지만 1980년 레이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아무 대안 없이 정신보건 서비스에 대한 개입을 중단했다. 이미 탈원화가 진행되고 있던 상태에서 연방 정부의 지원이 중단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97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정신병원 입원환자는 감소한 반면, 교도소와 구치소에 수감된 정신질환자가 증가한 것이다. 즉, 정신질환자가 병원에서 교도소로 이동한 것이다. <도표1>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기존의 정신보건법을 개정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017년 5월 30일부터 시행됐다. 이 개정안이 담고 있는 변화는 놀랍다.

 

기존의 정책으로 인해 이미 방황하고 있는 환자가, 병원에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막는다. 개정법에 따르면, 강제 입원 시 2인 이상의 국공립병원 소속 정신과 전문의를 포함한 타 병원 전문의의 동의가, 입원 첫날 이후 2주 내 필요하다. 기존 법보다 강제 입원하기 어려워졌다. 사설 의료기관이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너무 쉽게 혹은 불법적으로 강제 입원을 시키고 있다고 정부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불법적인 강제 입원은 시사 프로그램에 여러 번 방영되기도 했었다. 이런 정부의 판단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국내 강제입원은 매년 17만 건으로, 하루 평균 466건이다. 전문의 두 명이 한 팀으로, 한 건당 한 시간의 면담 및 심사를 하면 매일 8건을 처리할 수 있다. 이 계산으로는 하루에 58개 팀이 필요하다. 즉 하루에 116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365일 일을 해야 한다. 출장의 형태로 심사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심사할 수 있는 건수는 더 적다. 그런데 개정법 심사 업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공무원 정신과 전문의 10~20명 확충이었다. 터무니없는 대책에 비난이 일자, 정부는 다시 사설 의료기관의 전문의에게 이 일을 넘기려 하고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이런 문제로 인해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입원은 지연되고, 치료받지 못한 채 사회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병원에 들어가더라도 이전보다 더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원할 수 있게 해준다. 개정법에서 재활 및 직업훈련에 대한 지원에 대한 언급은 있으나, 예산에 관한 내용은 없다. 하지만, 2~3개월마다 퇴원심사를 하여 조기 퇴원을 시키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조기 퇴원 정책의 근거는, WHO 평균 입원일 보다 국내 정신과 환자의 입원일이 4~5배 이상 길다는 것이다. 하지만 퇴원 후 환자가 받을 수 있는 정신건강증진 서비스의 변화는 없다. 즉 중증정신질환자가 갈 곳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기 퇴원을 유도하는 조항이 있다면 병원을 나온 환자가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개정안에서는 민간 정신건강증진시설을 개설하기 더 쉽다. 기존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허가가 있어야 설치 및 운영이 가능했지만, 개정안은 시장, 군수, 구청장의 허가가 있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지원 예산에 관한 언급은 없다. 이렇다면 개설 및 유지에 많은 예산이 필요한 중증 정신질환자를 위한 정신건강증진시설이 늘어날 수가 없다. 중증 정신질환자를 위한 시설은 허가받기 어려워서 부족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본이 덜 필요한 경증 정신질환자를 위한 시설만 증가하게 될 것이다. 결국 가뜩이나 부족한 예산이 필요한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되는 셈이다. 중증 정신질환자를 위해 쓰이는 예산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병원에 입원하지 못한, 병원에서 조기 퇴원 된, 그리고 정신건강증진 시설에서조차 배제 된 정신질환자는 어쩔 수없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환자 본인, 가족, 사회를 차례로 병들게 할 것이다. 정신질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개정한 법안이 오히려 정신질환자들이 갈 곳이 없애고 모두를 병들게 만드는 것이다.

 

중증 정신질환자인 A씨는 성실한 가장 김 모 씨가 매달려 있는 밧줄을 공업용 커터칼로 끊었다. 하지만 A씨를 병원에서, 정신건강증진시설에서, 사회에서 끊어낸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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