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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경남 양산 소재의 아파트에서 밧줄에 매달려 작업을 하던 김 모 씨가 추락해 숨졌다. 아파트 주민인 A씨가 김 모 씨가 매달려 있는 밧줄을 끊은 것이다. A씨는 “시끄럽다고 했는데, 음악이 계속 나와서 욱하는 마음에 범행했다.” 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희생자인 김 모 씨는 일곱 식구를 부양하던 가장이었다. 아내와, 다섯 명의 자녀, 칠순 노모를 부양하기 위해 더 많은 수입이 필요했고, 그래서 아파트 외벽 작업을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_YTN 방송화면

 

이 성실한 가장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했을까.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제도, 철저한 안전관리체계, 개인 보호 장구에 대한 노동자의 의식수준 향상 등이 떠오를 것이다. 또는 한 개인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이기 때문에,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서 A씨를 막는 것만이 이 비극을 막을 방법으로 보일 수 도있다. 내 인생도 충동조절이 되지 않는 어떤 사람에 의해 허무하게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A씨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A씨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범죄를 저지른 걸까.

 

A씨는 3~4년 전에 폭력 혐의로 구속된 이후 국립법무병원(구 공주치료감호소)에 수감이 됐다가 지난해 출소했다고 한다. 국립법무병원에 수감하는 동안은 조울증 치료를 받았으나, 출소한 뒤 치료는 바로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후 인력사무소를 전전하며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사건 당일은 일을 구하지 못해, 술을 마시고 집에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교도소에 복역할 정도, 즉 금고 이상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사람 중 심신장애인 등은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검사의 청구와 법원의 선고로 치료감호 처분을 받게 된다. 범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책임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심신장애인은 자신의 행위를 식별할 수 있는 책임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조현병(정신분열병) 등 일부 정신 질환은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책임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범죄가 성립하지 않거나, 경우에 따라서 범죄가 성립하더라도 형이 감경된다.

 

내 앞에 무서운 괴물이 갑자기 나타나 칼로 찔렀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사실 괴물은 정신질환에 의한 환각이었고, 내가 찌른 것이 옆집 사람인 경우에 나는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이 경우는 내가 사물을 분별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의사결정을 하거나 의지를 제어할 능력이 없었기에 심신상실 상태에 해당한다. 따라서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분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형법 제10조에 의해 처벌받지는 않으나, 치료감호 선고를 받게 될 것이며 국립법무병원에서 수용되어 치료받게 된다.

 

일반 범법자와는 다르게, 정신과 질환이 있는 범법자들은 치료를 받아야만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줄어든다. 따라서 치료감호 선고는 정신과 질환을 가진 피의자에게 주는 혜택이 아니라 법의 올바른 적용과 사회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이다. 하지만 이 절차에 따라 치료 받은 정신질환자가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또 최근 정신질환자의 범죄가 왜 증가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사진_픽셀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전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0.08%로 일반 인구의 범죄율 1.2%에 비해 월등히 낮으며 살인범죄자 중 정신장애를 앓는 경우는 7.9%에 불과하다. 이들 중 치료를 받지 않는 중증 정신질환자, 조현병 환자는 일반 인구에 비해 형사 범죄를 더 많이 일으킨다. 하지만 대부분 강력 범죄가 아니라 생계형 범죄라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포함하여 강남역 살인사건, 10대 소녀의 초등학생 살인사건, 울산 40대 아들의 노모 살인사건 등 중증 정신질환자에 의해 발생하는 강력 범죄가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강력범죄는 2011년 3,337건에서 2015년 4,511건으로 약 35% 증가하는 추세이며 10년 전에 비해서는 약 두 배 증가했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숫자 자체가 급격히 증가하거나, 조현병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는 이유는 위 사건들의 공통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치료를 받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조현병 환자는 대략 33만 명이지만, 그 중 13만 명만이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외래 통원치료를 받는 조현병 환자라도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환자는 50%미만으로 다수의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다. 국내 정신보건 정책의 변화를 살펴보면, 치료도 관리도 받지 않는 정신질환자가 어떻게 우리 바로 옆에 있게 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83년 한 사회고발 프로그램에서 기도원에 수용된 정신질환자의 실태가 방영된 이후, 1984년 정신질환 관리 종합대책이 처음 수립되었다. 하지만 전문 연구에 기초한 정책이 아닌 미봉책에 불과했다. 정책에 의한 효과는 국가관리 시스템이 전무한 요양시설에서, 그나마 국가가 관리할 수 있는 정신병원으로 환자들을 이동시킨 것에 그쳤다. 전국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 수는, 병원에 있는 환자용 침대인 ‘병상’의 개수로 유추할 수 있다. 이 숫자가 1984년 12,392 병상에서 1998년 51,840 병상으로 증가했다는 것은, 그만큼의 환자가 요양시설에서 정신병원으로 이동한 것을 증명하는 자료다. 환자들은 비교적 안전한 정신 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사회는 정신질환자가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안도했다.

 

하지만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재활에는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정신질환자가 병원 안에만 있어,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무관심은 정신과 환자에 대한 정책적 홀대와 터무니없이 적은 예산책정으로 나타났다. 의료기관마다 약 만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신과 의료 급여 환자의 하루 입원 치료비는 3만7천원이다. 환자가 어떤 약을 처방받든, 어떤 재활 혹은 직업 훈련을 받든 상관없이 정부는 병원에게 환자 한 명 당 하루 3만7천원을 준다. 퇴원 후의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의료급여 정신과 환자가 외래 치료를 받으면 정부는 2770원을 지원해줬다. 의료보험 감기환자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 병원은 환자에게 최적의 의료를 제공하는 것보다 환자 수를 늘리는 것을 선택하게 됐다. 병원의 무리한 환자 수 늘리기 경쟁은 종종 범법행위에 이르기까지 했다. 미흡한 국가 정신보건 정책으로, 몇몇 건실한 의료기관을 제외한 대다수의 정신 의료기관에서 제공하는 치료는 하향평준화 되고,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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