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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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음의 어려움을 겪을 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곤 합니다. 많은 정신분석학자와 철학자들은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을 경계하라고 조언해 왔습니다. 우리가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일에서 조금 여유로워지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정신분석학 이론의 창시자인 프로이트 하면 어떤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편안하고 푹신한 안락 쇼파는 프로이트를 상징하는 중요한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그는 안락한 소파에 환자를 눕게 하고  자유연상법을 활용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유연상(free association)이란, 편안한 상태에서 주의를 이완시켜 생각이나 감정이 자유롭게 떠오르는 것을 말합니다. 겪고 있는 증상과 관련된 경험이나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지요. 이 과정을 통해 증상이 무의식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중요한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미루어 둔 채로 말입니다. 

현상학을 학문으로 정착시킨 후설(Edmund Husserl)은 ‘현상학적 환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객관적인 인식의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한 방법으로 '판단 중지(에포케)'를 사용하며, 사건과 사물에 대한 판단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판단을 유보할 때, 본질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며, 우리는 사유를 통해 의식 속에 구성되는 본질을 찾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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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이나 현상학과 같은 학문이 정신건강의학과 닮은 점은 무엇일까요? 본질을 찾는 과정에서 과정과 결말이 정해지지 않았고, 증상에 대한 이해나 의식의 본질을 찾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노력의 과정들을 해 나간다는 점이겠지요. 

주기적으로 연재되는 웹툰이나 소설을 본 적이 있으시다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웹툰 작가나 연재 소설가들은 작품의 결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작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건강의학이나 마음을 상담하는 일이 그 결말을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것과도 닮아 있지요. 

"그래서 얼마나 더 약을 먹어야 할까요?"라던가 "완전히 나아질 수 있는 것이 확실한가요?"와 같은 내담자의 질문에 성급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한 사람의 정신적 작용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고유한 정체성이나 목적, 수단이 정형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견디는 힘>의 저자 하하키기 호세이는 불확실한 치료의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교과서도 있고 치료 지침도 나와 있기는 하지만, 대략적인 방향만을 알려줄 뿐 매뉴얼 같은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정신과 의사 나름대로 방법을 궁리하며 환자와의 상담을 통해 조금씩 길을 헤쳐 나갈 수밖에 없다.”

하하키기 호세이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환자를 ‘달빛이 비치는 밤에 낭떠러지가 보이지 않는 호수를 두 사람이 노 저어 가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환자가 직접 노를 젓기도 하고, 의사가 노를 저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의사가 환자에게 노를 젓을 것을 지시하기도 하고, 함께 젓기도 하겠지요. 어둡고 길이 보이지 않는 물 위를 빠르게 노를 젓기도 하고, 천천히 노를 젓기도 하고, 가끔은 그 자리에 떠 있는 시간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노를 저어 가는 과정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아마 조금은 불안하기에 불확실함을 견뎌내기 위한 힘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웹툰 작가와 소설가들이 지난한 과정을 이겨내고 결국 어떠한 결말에 이르는 것처럼 치료의 과정에도 결말에 다르는 날이 온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이야기에 놓여진 주인공입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자기 자신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등장인물을 어떻게 대하고 있으신가요? 예상 밖의 사건을 만나기도 하고, 정해 놓거나 바라던 흐름과는 다른 전개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일 때 흥미롭고 생생한 이야기가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없어 불안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고난과 사건들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길을 한걸음 나아가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여러분들이 인생을 과정과 방법에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일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길 응원합니다. 불확실한 상태를 하루하루 견디며 걸어 나아가는 것은 삶이라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을 역동으로 삼아 생생하고 흥미로운 여러분만의 작품을 완결할 수 있길 응원합니다.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희주 원장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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