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결혼 10년 차,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남편과의 잠자리에 관한 고민이 있어 사연 남깁니다. 신혼 초까지의 시간만 빼면 사실 남편과의 잠자리가 계속 싫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저를 사랑해서 원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커서 싫어졌고 지금은 그냥 몸이 힘들어서 귀찮은 것이 더 큽니다. 

그런데 남편이 집요한 성격이기도 하고 이 부분에 예민해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결혼했으니 자신의 욕구를 제가 풀어 줘야 한다고 당당하게 요구하곤 합니다. 끝도 없어서 자주 요구에 응하면 매일 하길 요구하고 그것도 받아주면 하루에 여러 번도 요구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작년에는 이혼까지 진지하게 생각했지만,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이혼해도 놔주지 않을 것 같단 생각에 포기했습니다. 그러면서 부부상담도 받았는데 그때 합의점을 찾아보라 하셔서 찾은 것이 하루 관계를 맺으면 그다음 날은 쉬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3개월쯤 하다 보니 육아도 하고 일도 하고 몸이 힘드니 다시 차일피일 제가 피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장난스레 계약위반이라며 못한 걸 보상해 줘야 한다고 말할 때 저는 정말 두렵고 무섭습니다. 한 6개월 남편이 변한 것처럼 잘 참고 있지만, 그 전엔 이 문제로 감정이 상하면 밤새도록 죽이네 살리네 이혼하네 하며 소리 지르거나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 너무 힘들었습니다. 

다시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고 아이들에게 안 좋은 모습을 다시 보이게 될까 두려워 꼬박꼬박 이틀에 한 번은 아니라도 남편이 강하게 원하면 제 감정은 모른 체하고, 요구에 응해 주고 있습니다. 제가 표정이 안 좋고 한숨을 쉬며 잠자리에 임하는 게 맘에 들지 않는지 최근에는 다른 요구 사항도 자꾸 추가하고 있어 정말 괴롭습니다.

어제오늘은 답이 없고 자꾸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사는 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꾸 눈물이 나고 순간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끼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싫다고 말하는 걸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데 그래도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그래도 남편이 노력해서 예전과 같은 모습을 안 보여주고 있으니 제가 참는 게 현명한 걸까요? 저 스스로는 앞이 안 보여 어떤 조언이라도 구해 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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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결혼생활 동안 계속 이어진 배우자분과의 잠자리에 대한 불편감과 소통의 어려움으로 많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부부관계에 있어 원만한 성생활과 이에 대한 소통,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 차지하는 중요도를 고려할 때 사연자님께서 그간 정말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사연을 보며 부부간의 성관계에 대해 배우자분께서 사연자님이 당연히 해소해 주어야 하는 것, 사연자님이 원하든 원치 않든 남편분이 원할 때는 당연히 제공해 줘야 하는 하나의 의무로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 이런 태도로 인해 사연자님이 부부관계에서 더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고, 본인의 몸 상태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에 성관계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크게 드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고 원하지 않음에도 부부 사이의 관계 유지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잠자리에 응해야 하다 보니 화가 나고 우울한 마음도 들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시는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에서 원하지 않는 일을 반복적으로 어쩔 수 없이 타의에 의해 하다 보니 통제감이나 자존감에도 영향을 받으실 수 있겠고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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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초반에 신혼 때까지는 관계를 맺는 것이 괜찮았지만 남편분이 사연자분을 사랑해서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싫어졌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연에 남겨 주신 다른 내용을 살펴보았을 때도 남편분께서 관계 자체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고 사연자님을 충분히 배려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이 듭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혹시 남편분과 말씀을 나눠 보신 적이 있는지 여쭤 보고 싶습니다. 

현재로서는 몸이 힘들고 귀찮다는 것이 더 큰 이유라고 하셨지만, 관계를 피하게 된 시작과 여전히 피하고 있는 상황의 기저에는 남편분이 진심으로 사연자님을 사랑하거나 존중하지 않으며, 사연자님을 자신의 성욕 해소 수단이나 도구적인 존재로 여긴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전의 부부 상담을 통해 합의점을 찾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도 기울이셨지만 여전히 잠자리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지지 않은 채, 횟수를 조절하는 방식으로만 접근하는 한계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횟수를 조절함으로써 육체적인 피로감이나 지나친 요구에 대한 압박감은 줄어들 수 있겠지만, 관계 자체에 대해 사연자님이 갖고 계신 거부감을 해결하기에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편분 역시 여전히 횟수나 방법에만 집중할 뿐 사연자님이 관계에 대해 그런 부담감이나 불편감을 갖고 있는지, 왜 그런 마음을 느끼는지는 알지 못하는 상황인 듯합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진솔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잠자리 역시 그저 횟수나 방법을 갖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으로 반복될 여지가 많아 보입니다. 남편분께서도 나름대로 조절하려고 노력하고 계시고, 예전처럼 폭력적이거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보이지 않으신다고 하니 이는 다행스러운 면이기도 하고, 남편분의 노력에 대해서도 인정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바뀌기 위해 노력한 남편분께 인정과 감사를 표현하면서도, 여전히 잠자리 자체에 대해 갖고 있는 사연자님의 생각, 남편분이 사연자님을 본인의 욕구 충족을 위한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아 느껴지는 서운함,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을 솔직하게 나눠 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물론 배우자로서 서로의 성적인 욕구에 귀 기울이고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부부관계 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이자 의무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분이 이런 의무, 책임으로서의 성생활을 사연자님께 강요하는 반면 사연자님을 배우자로서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태도가 부족하기에 거기에서 오는 서운함, 충족되지 않은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불만족감, 남편분에 대한 불신감, 사연자님의 존재가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 등이 잠자리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부부간의 심도 있는 대화를 통해 두 분이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 서로의 필요와 욕구를 인정하고 충족시켜 나가는 방법이 개선되고, 잠자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최적의 합의점을 도출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잠자리는 부부가 나누는 ‘몸의 대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육체적인 쾌락과 욕구 해소의 의미 이상으로, 관계를 맺는 방식과 소통 과정에서 부부의 친밀감이 더 커질 수도, 반감될 수도 있습니다. 잠자리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부부가 서로 더 가까워지고 애착이 형성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음을 기억하며 원만한 소통을 통해 사연자님도 잠자리에서의 즐거움, 부부간의 깊어지는 친밀감을 경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희주 원장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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