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고2 여학생이에요. 사실 오늘 정말로 죽으려고 유언까지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기 직전까지 갔어요. 그런데 막상 죽으려니 몸이 선뜻 안 움직이더라고요. 사실 자살 충동이 든 건 중학교 3학년 때부터였어요. 학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시험 직전까지는 매일 죽고만 싶었는데 막상 시험을 다 치르면 아무것도 못하겠어서 이때까지는 그냥 생각만 하고 있던 정도였죠. 

그 상태가 계속되다가 작년에 처음으로 마음먹고 자살 방법까지 생각해 봤어요. 칼로 자해 시도까지 하려고 했는데 이때도 무서워서 그저 시도로만 끝났죠. 그때 너무 무서웠어요. 진짜로 내가 죽겠구나 싶어서 엄마께 용기 내서 말씀드렸죠. 정신과에 한 번 상담을 받으러 가고 싶다고요. 그런데 돌아온 건 무시였어요. 제가 원한 건 정신과였지만, 엄마는 제가 정신병자인 걸 인정하고 싶지 않으셨나 봐요. 그냥 청소년 상담센터에 예약만 잡아 주시더라구요. 저는 상담을 받기 싫었어요. 그 누구도 제 정신 상태를 공감해 주지 못할 것 같아서요. 실제로도 그렇고요. 

저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왔고 지원도 많이 받고 나름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어느 순간 모든 게 귀찮고 나태해졌어요. 그게 너무 괴로웠어요. 그냥 몸이 축축 쳐져서 기력이 딸리는 느낌? 그래서 노력하고 싶은데 그게 안 돼요. 너무 버거워서 괴로워요. 죽고 싶을 만큼이요. 근데 이걸 누가 이해해 주겠어요. 좋은 환경에서 좋은 것만 보고 살아왔는데 왜 괴로워하고 슬퍼하냐고요.

해결할 힘이 없는데 모두들 노력하라고만 해요. 전 그럴 힘도 기력도 없는데 어떻게 노력을 할 수 있나요? 그렇게 힘들게 살아갈 바엔 차라리 죽고 싶어요. 이런 한심한 인간이라면 사회에 없어도 어차피 상관없을 테니까요.

아무튼 방학 내내 상담을 받고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전 작년보다 더 게을러졌어요. 공부뿐만 아니라 일상생활도 지금 버거워요. 청소하거나 몸을 씻거나 하는 생활도 힘들고요. 내가 좋아했던 것이나 해 왔던 것들도 다 부질없어요. 제가 원하는 목표와 대학을 정했는데도 거기에 맞는 노력을 하지 않아요.

변명처럼 들리지만 사실 내가 노력해도 안 될 것 같아서요. 만약 노력하더라도 이룬 다음은? 지금 이 상태보다 나아질 가망도 없는데 대학교에 들어가도 열심히 살아갈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맞아요. 그저 변명이지만 지금은 제가 그 어떤 것도 하기 싫다는 거예요. 숨도 쉬기 싫고 먹는 것도 싫고 살아가는 것도 싫은데 죽을 용기도 없네요. 며칠 전이 시험이었는데 평소 태도가 그 모양이니 시험도 말아먹었죠. 사실 전 시험을 잘 보던 못 보던 오늘 새벽에 죽으려고 했어요. 이젠 삶에 대한 미련조차 없는 것 같아서요. 

저희 집이 5층이라 창문에서 떨어지면 죽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새벽에 다들 잠잘 때 떨어지려 했는데... 창밖이 어두워서 무섭더라고요. 죽음을 결심했을 땐 후련하기만 하고 다 끝날 줄 알았는데... 막상 다가오니 무서워서 포기하는 꼴이라니... 제가 너무 한심하네요. 부모님께 말씀드려 봤자 어차피 정신과는 못 갈 거고... 이제는 그냥 저라는 인간이 글러 먹어서 이러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원래 나약한 인간이었나 봐요. 근데 왜 이렇게 맘이 괴로울까요. 모르겠어요. 그냥 누군가 내 상태에 대해 명확히 진단해 주면 좋겠네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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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지금 많이 힘드신 상황이신 것 같고 글을 올리시던 날 새벽에 자살을 시도하려고 하셨다니 많이 염려됩니다. 자살 생각과 충동을 느끼신 지도 꽤 되었고 이번만 아니라 전에도 시도하신 적이 있다고 하니 신속하고 적절한 도움과 전문적 개입이 필요하신 상황인 것으로 보입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매우 깊은 우울감을 느끼고 계신 것 같습니다. 중학교 3학년 시기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감을 경험하셨고 그 후로도 청소년 상담센터를 통해 상담을 받으셨지만 우울을 단순히 마음의 문제, 나약한 의지의 문제로만 보는 것 같은 주변의 반응에 마음이 더욱 닫히게 되셨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상담보다는 정신과를 방문하고 싶었다고 해주셨는데, 상담을 통한 접근보다는 약물치료를 받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력하고 힘을 내려고 해도 평범한 일상의 일들을 해내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지고 좋아했던 일들도, 해왔던 일들도 다 부질없고 의미 없다고 느껴진다고 사연에 남겨 주셨는데, 이는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들과 함께 나타나는 자살 사고, 자살 계획 및 시도는 사연자님이 느끼는 우울감이 상당히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사연자님이 아무리 힘을 내려고 해도 잘되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 역시 사연자님이 게으르거나 한심해서가 아닌, 우울증의 증상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분들이 이런 사실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 채 힘든 사연자님께 자꾸 힘을 내라는 메시지가 반복되는 것 같아 더욱 무기력하고 아무도 사연자님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셨겠지요. 상담에서도 지지받고 공감받는 느낌보다는 힘을 내라는 뉘앙스의 메시지를 더 많이 전달받으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원하는 대학이나 목표를 정해 놓고도 노력하지 못하는 모습, 자살이 해결책일 것 같아 계획도 세워 보고 시도도 해 보려고 했지만 두려워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해 보인다고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한심하고 무기력하게 보는 것을 멈추셨으면 합니다. 현재 사연자님이 느끼는 일상을 지탱하는 것조차 버겁다는 느낌은 단순한 게으름, 나태함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이 사연자님을 힘들게 하고 있고, 그로 인한 영향이 일상을 잠식하고 있기에 지금 상태에서는 이전에 쉽게 했던 일, 의미를 찾고 즐겁게 여겼던 일에 대해서도 힘들다거나 부질없다고 느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연자님은 지금 매일 자살 사고, 자살 충동 및 계획과 시도, 자신과 주변, 세상과 미래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포함하는 우울증이라는 병에 맞서 싸우는 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연자님은 매일 치열한 싸움, 투병 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가 소진되기에 당연히 일상생활이나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많이 남아 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울증을 경험하기 전보다 훨씬 더 적은 잔여 에너지로 일상과 학업을 지탱하려다 보니 작은 일도 더 크고 버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부분을 사연자님이 나약해서, 게을러서라고 스스로를 탓하기보다 ‘아, 내가 지금 우울증과 열심히 싸우고 있구나. 나를 지키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쓰다 보니 남아 있는 힘이 많이 없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시면서 ‘오늘 하루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나를 지키느라 수고가 많았다. 오늘을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라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울증은 나약함이나 게으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누구나 삶의 어떤 순간에 뜻하게 않게 우울증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울감이 우리 몸과 마음을 지배할 때는 내 의지대로 몸을 일으키고, 예전과 같은 생활을 이어 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연자님이 자신을 한심하게 보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사연자님은 그렇게 힘든 중에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자살 충동을 계속 느끼면서도 열심히 삶을 이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연을 남겨 주신 날 역시 자살을 시도했지만 사연을 남김으로써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셨습니다. 이런 부분은 사연자님이 가진 큰 강점입니다.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도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큰 용기이자 자산이니까요. 

자신을 아무도 이해해 주지 못할 것이고 원하는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자살을 시도하려고 하셨지만, 그 마음 이면에는 사연자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하셨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죽고 싶은 마음의 반대편에는 죽고 싶지 않은 마음, 살고 싶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런 살고 싶은 마음에 대해 사연자님께 왜 죽지 못했느냐고, 죽는 것조차 용기가 나지 않느냐고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사연자님이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정 알게 된다면 그 마음을 헤아리고 돕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며 슬퍼하겠지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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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사고와 자살 계획, 시도는 반드시 전문가를 통한 개입이 필요합니다. 어머니께 예전에 이미 말씀을 드렸음에도 정신과 진료를 거부하셔서 기대감이 없으시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사연자님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자살 계획과 시도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상담받으셨던 기관의 담당 상담사께서도 이런 사실을 알고 계신지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부모님과 상담사분께 사연자님의 우울감이 그분들이 아는 것보다 매우 심각한 상태이며 자살 생각과 시도, 계획이 있음을 알리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과를 비롯한 필요한 도움과 개입을 받으실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부모님이나 상담센터 상담사분을 통한 도움이 어렵다면 주변의 도움을 주실 수 있는 친척, 학교의 선생님, 상담 선생님 등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실 수도 있습니다. 또, 자살 생각이나 충동이 올라올 때, 긴급한 상황일 때는 아래의 기관을 통해 도움받으실 수 있습니다. 

- 자살예방전화 1393/ 24시간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 1577-0199/ 생명의 전화 1588-9191/ 보건복지콜센터 129

이와 함께 지자체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상담센터에서 자살예방에 관한 상담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것도 고려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힘드실 때, 자살 생각이 들 때 오늘처럼 저희 게시판에 사연을 남겨주실 수도 있겠고요. 

학업이든 그 어떤 이유든, 사연자님이 스스로를 포기하고 아프게 하면서까지 이뤄야 할 것은 없습니다. 사연자님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을 테니까요. 그만큼 사연자님은 존재만으로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분입니다. 비록 지금은 힘든 마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으며, 삶이 계속 절망뿐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사연자님에게 또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연자님께 저희의 답변이 조금이나마 위로와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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