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5달 전부터 우울증 증상이 있었습니다.

근데 학생이라 정신병원은 가지 않았고 혼자 해결하려고 했었습니다.

원래는 매일매일 하루 종일 울고 우울했고 괴로웠고 죄책감 자살충동 자기 비하 만 들었다면, 이제는 또 다른 증상들도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날카로운 것을 보면 절 그걸로 죽이는 망상도 하고, 자꾸 내면 속에 있는 무언가가 저에게 욕을 합니다. 맨날 제가 화나거나 우울할 때 나타나는 애인데 늘 부정적인 말들을 해요.

화가 날 때마다 '저 사람 죽여버려 죽여버리자'라는 말을 하며 저 사람을 죽이는 상황을 머릿속에서 보여줘요..

 

소리도 자주 지르고 저랑 대화도 해요. 그리고 가끔은 사람 환각이랑 검은 벌레 환각이 보입니다.

글자도 이상하게 보일 때가 있어요..

또 제 주위 사람들이 호의를 베풀어도 저는 그게 다 거짓이라 생각이 들고 사람들이 역겨워요.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 차 있고..

저 왜 이런 건가요...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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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총기입니다.

질문글을 올리시기 꽤 오래전부터 마음의 병으로 어려움을 겪어 오셨군요. 짧은 글이지만 점차 증상 자체도 심해지고 있는 것 같고, 질문자님께서 느끼는 괴로움도 더 커지고 있어 보여 더 걱정이 됩니다.

학생이라 정신병원은 가지 않았고 혼자 해결하려고 하셨다는 말씀이 특히 마음에 걸립니다. 학생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찾아 진료를 볼 수 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감옥 같은 이미지의 정신병원이 아닌 일반 병의원과 똑같은 곳에서 평범한 진료와 일상적인 상담을 얼마든지 받으실 수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혼자 해결하기 위해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이 노력을 하셨을지 것이 짐작이 갑니다. 하지만 혼자 해결하고자 하시던 질문자님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면 부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주저하시지 말길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질문자님의 글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부분, 일종의 환각 경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좀 더 자세히 여쭈면서 어떤 증상들을 경험하고 계신 건지 확실히 알아야 질문자님의 상황에 적합한 도움을 드릴 수 있을 텐데, 짧은 글에서만 유추할 수 있는 바를 통해 답변글을 드리다 보니, 조금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말씀하신 환각 증상에는 사람, 벌레, 글자가 보인다는 환시, 그리고 소리를 지르고 대화하는 무언가,라고 말씀하신 환청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중요한 것은 경험하고 계신 환각 증상이 정신병적(Psychotic) 증상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만약 정신병적 증상이라고 한다면 5달 전부터 경험하고 계시다는 우울장애가 악화되면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한 우울증은 일반적으로 자살 위험성이 더욱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예후도 쉽지 않을 수 있으니 하루빨리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는 것이 좋을 수 있습니다.

또는 조현병과 연관된 정신병적 증상의 일환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증상만 가지고 조현병이라고는 결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또 질문자님의 글에서 조현병의 전형적인 증상이 보이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학생이라고 말씀하시니 주로 10대 후반과 20대에 조현병이 많이 발병하는 것을 고려하였을 때에 조현병의 초기 증상, 혹은 조현병 고위험군이나 '약화된 정신병적 증후군'의 가능성도 고려해 보아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약화된 정신병적 증후군'에서는 완전한 환청이나 환시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스스로 헛것이고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긴 하지만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비정상적인 사고나 환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 대인관계의 어려움과 우울감, 불안감 같은 신경증적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자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들 또한 그런 사항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어 보여 꼭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하여 자세한 검사를 받아보실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약화된 정신병적 증후군에 해당한다고 해서 반드시 조현병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 인구에 비해 위험성이 더 높은 것이 사실이고, 조현병으로 진행하는 것과는 별개로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면 약물이나 면담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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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질문자님께서 만약 청소년이라고 하신다면 정신병적 증상이 아닌 환각일 가능성이 조금 더 높습니다. 실제로 질문자님께서는 환청도 내면의 소리라고 표현하고 계시고, 보이는 것들도 실제로 없는데 보이는 헛것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정신병적 증상으로서의 환청과 환시는 스스로 병적 인식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진짜로 들리는 소리나 진짜 눈앞에 있는 무언가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에게서는, 그리고 특히 정신적으로 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는 청소년들에게서는 질문자님께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은 비정신병적 환각이 나타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왜 그러한 증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는 청소년들의 환경 발달적 특징을 분석했을 때에는 네 가지 특징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 

1) 사회적, 정서적 결핍

2) 아동청소년이 현실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도록 만드는 부모의 병리

3) 사회적 거리와 경계의 부족함

4) 미신이나 특정 믿음에 취약한 문화적, 환경적 배경. 등이 그것입니다.

특히 죽음과 관련된 환청을 듣는 경우는 우울장애나 파탄성행동장애 등을 가지고 있을 때에 많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청소년기 정신적 어려움에 동반되는 비정신병적 환각 증상은 다행히 정신병적 증상이 동반된 우울증이나 조현병과는 달리 예후가 나쁘다고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정신병적 증상으로 악화되는 경우도 많지 않고, 일시적 증상으로 저절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경과에 따라, 그리고 환각과 별개로 그전부터 있던 정신적 어려움의 정도에 따라 예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자세한 정신과적 평가와 치료 여부 결정이 필요합니다.

질문자님께서 5달 동안이나 혼자 힘들어하면서도 병원을 찾지 않고 힘들어하다가 결국 이곳에 질문을 올리시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환각 증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궁금증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되어 조금 장황하지만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위의 내용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질문자님께서는 누군가의 도움, 특히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 같아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서두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미 5달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스스로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을 해오셨지만, 시간도, 혼자만의 노력도 안타깝게도 질문자님의 짐을 덜어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마 앞으로도 시간과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상황이 더 악화될 위험이 크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부디 부담 없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셔서 자세한 검사를 받고 겪고 계신 혼란과 두려움을 덜어내실 수 있기를 응원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 :

Johan Isaksson, Psychotic-like experiences during early adolescence predict symptoms of depression, anxiety, and conduct problems three years later: A community-based study, Schizophr Res. 2020 Jan;215:190-196

Gail A. Edelsohn M.D.,Hallucinations in Children and Adolescents,Am J Psychiatry. 2006 May;163(5):781-5.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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