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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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우정의 원’이라는 동심원 그래프를 통해 우리가 살면서 소위 ‘절친’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친구는 5명, 친한 친구 15명, 좋은 친구 50명, 친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친구의 최대 수는 150명이라는 데이터 분석 결과를 내놓았는데요, 과연 여러분은 이런 던바의 연구 결과에 얼마나 동의하시나요? 또, 여러분의 친구 범위는 이런 ‘던바의 수’와 얼마나 비슷한지 혹은 그 차이가 많을지 궁금해집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여러 형태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 대화가 잘 통하고 어느 순간 마음을 열게 되면서 가까워지고 때로는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사람을 ‘친구’라는 관계의 범주에 포함시키게 되죠. 

어른이 되기 전, 그 어떤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순수한 우정을 나눴던 학창 시절 친구부터 비록 직장에서 만났지만 오랜 시간 동고동락해서 회사 밖을 나서면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을 만큼 가까워져 버린 직장 동기, 선후배, 온종일 육아로 탈탈 털린 멘탈을 서로 보듬어 주고 육아 정보도 공유하는 육아 동지인 동네 맘, 취향이 비슷해 훨씬 더 쉽게 친해지는 동호회 크루들, 사는 곳이 가까워 자주 마주치다가 정드는 이웃사촌까지….

서로의 스타일이나 성격이 꽤 달라도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던 아이였을 때와 달리,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서로의 이해관계나 관심사 등에 따라 인연이 맺어지곤 한다는 사실을 체감하기도 합니다. 과거에 그 누구보다 가까웠던 절친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레 멀어지는 아쉬움을 달래야 할 때도 있죠. 또, 어제는 육아 동지였던 동네 맘이 오늘은 뒤에서 내 욕을 하고 다니는 적이 되어 있는 씁쓸한 진실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이렇게 사람 때문에 웃었다가 사람 때문에 울고, 힘을 얻었다가 힘이 빠지고, 살아갈 희망을 품었다가 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처절한 배신감에 치를 떨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깊이 있고 풍부한 인간관계, 탄탄한 인맥을 구축하는 것만큼이나 관계를 손절하는 데도 관심이 많습니다. 사실 ‘던바의 수’가 말해 주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누군가를 만나서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기까지 드는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에게 스트레스만 주거나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삶의 질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손절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한편으로는 세상에 결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생각에 마음이 약해지기도 합니다. 또 이 사람 저 사람 다 손절하면 곁에 남아 있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하죠. 누군가를 손절하는 데도 ‘나만의 기준’을 마련하고, 현명한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해 보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사람마다 관계를 손절하는 각자의 기준과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다음의 내용을 참고해서 나름의 기준을 세워 보신다면 어떨까 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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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사람들 앞에서 은근히 나를 깎아내리거나 뒤에서 내 험담을 하고 다니는 사람

여럿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은근히 나의 약점이나 비밀을 폭로하며 깎아내려서 웃음거리로 삼는 사람이나, 앞에서는 잘해 주는 척, 입에 발린 소리를 하다가도 뒤에서는 내 험담을 하고 다니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당연한 처사일 것입니다.    

 

둘째, 내가 필요할 때는 이런저런 핑계로 만남을 피하다가 자기가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

문득 그 사람이 생각나서, 안 본 지 오래돼서 안부를 묻고 만나자고 해도 바쁘다며 이리저리 만남을 피하다가 자기가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거나 갑자기 다른 약속이 펑크 났다며 연락해 오는 사람은 나를 아끼는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쩌다 한두 번 그런 것이 아니라 번번이 자기가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면 굳이 내 소중한 시간과 감정을 그런 상대에게 쏟을 필요는 없겠죠.      

 

셋째,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는 사람

처음에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이 한 많은 이야기가 거짓이었음이 드러나거나, 어느 순간 당신 앞에서 뻔뻔하게 대놓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의 관계는 가차 없이 정리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요.

 

넷째, 내 기운을 빼앗는 멘탈 뱀파이어

일명 ‘멘탈 뱀파이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죠. 이런 사람들은 대화를 나눈 후나 만남을 가진 후에 유난히 피로감이 심하거나 진이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그 이유는 이들이 입만 열면 다른 사람의 험담이나 하소연, 남 탓을 하거나, 매사에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으로 일관하며, 상대에게도 그런 자신의 관점을 은근히 주입하며 같이 있는 사람까지 기분이 다운되거나 우울해기 때문이죠. 원래는 안 그랬던 성격인데 인생에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거나, 어쩌다 한 번 그런 것이 아니라 만날 때마다 어두운 기운을 풍기는 그라면, 손절을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남에게 받는 건 당연하고, 자기 것은 하나도 내어 줄 줄 모르는 사람

모든지, 누구에게든지 받는 것이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들은 남들이 자신에게 베풀어 준 것에 대해서는 그 고마움을 잘 알지 못하고, 반대로 자신이 남들에게 베푸는 데는 무척이나 인색합니다. 또, 어쩌다 자기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서운한 것이 있으며 부풀려서 크게 생각하며 가슴속에 담아 둔 채 두고두고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죠. 이런 사람과는 서서히 멀어지는 게 상책입니다.

 

여섯째, 무례하고 자꾸만 선을 넘는 사람

어느 정도 친분이 쌓였다고 해서 틈만 나면 무례하게 굴거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주고 무시하는 발언 혹은 행동을 일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상대를 존중하지 않거나 타인의 경계선을 함부로 침범하거나 선 넘는 행위를 은연중에 즐기는 우월감에 젖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정적인 기운이 전해져 자존감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선을 넘지 말라고 계속해서 경고하고 그 후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그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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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물며 사람은 또 관계는 어떨까요. 시간의 흐르면서 우리의 상황이나 입장이 변화하는 것처럼 관계도 변화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리고 좋은 사람과 좋은 인연을 맺는 것만큼이나 나에게 좋지 않은 인연은 담담히 끊어 낼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직 애정이 남아 있는 사람이나 뭔가 아쉬움이 남는 관계, 오해가 쌓인 부분이 있다면 관계를 정리하기 전 한 번쯤 진솔한 대화를 나눠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상대에 관한 나의 생각, 서로를 대하는 태도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에 관한 상대의 솔직한 생각을 물어볼 수도 있겠죠. 그렇게 충분히 대화를 나눈 후에도 그 사람은 영 아니다 싶을 때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준비를 하면 됩니다.

나에게 무의미하고 불편감만 주는 관계를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을 때, 내게 행복감과 편안함을 주는 관계에 집중하며 소중한 인연들로 채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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