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제 감정 상태와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있어서 사연 남깁니다. 이런 증상을 느낀 지 10년 정도 되었는데 그동안은 원래 제 성격이라고 여기고 살다가 얼마 전 용기 내어 정신의학과에 방문했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저와 이야기를 나눈 후 약을 복용하기에는 애매하고 추가로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재정적으로 부담이 될 것 같아서 상담 진료만 잠깐 받고 일단 돌아왔습니다. 

제가 힘든 부분은 작은 스트레스 상황에도 갑자기 기분이 다운되고 눈물이 나고 삶이 싫어진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고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친구의 친척이 자살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부럽기도 했고 어떤 방법을 썼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때 저는 친구와 여행을 가서 기분이 좋은 상태였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서 놀라기도 했고 그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다운되었습니다.

이렇게 기분이 다운되는 상태는 자주 혹은 꾸준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고 한 달에 1번, 많으면 2번 정도, 혹은 한 달 동안 아무렇지 않게 괜찮은 상태로 지나가는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즐겁거나 괜찮은 상태일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사소한 일로 이렇게 슬프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고립된 것처럼 느껴질 때면 제가 정말 싫어집니다. 열심히 자격증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본 후 점수도 좋았는데 그 후로 삶에 대한 불안으로 다시 기분이 다운되거나 친구 문제, 가족 문제가 있을 때,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크게 혼나고 스스로가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 때, 외출하는데 제 외모가 마음에 안 들 때 등 사실 그렇게까지 큰일이 아닌데 부정적인 생각으로 쏠립니다. 제 자신이 싫고 쓸모없다는 생각과 미래도 부정적일 것이라는 사고로 이어집니다. 무언가 열심히 하다가도 또다시 우울해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종종 합니다.

행동적으로는 학생 시절 학원에서 기분이 안 좋아지면 아무도 몰래 말없이 집이나 학교로 도망가기도 했고 대학 때는 결석을 많이 했습니다. 대학 시험 기간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도 시험을 망칠 것 같아서 아예 시험 치러 가지 않거나 수업을 들으러 가다가 결석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로 대학교 심리상담센터에서 한 학기 동안 상담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학기는 성적도 가장 좋았고 출석도 잘해서 만족스러웠는데 상담이 끝나니 다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일할 때도 스트레스 상황이 많기는 하지만 억지로 견뎠는데 일하러 가는 길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고 일을 마치고 와서도 일 관련 전화나 카톡에 시달릴 때면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이 끝난 후 밤에 집에 가지 않고 사람 없는 거리를 배회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일을 그만뒀고 집에서 거의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남들은 직장도 다니고 잘 지내는데 저는 왜 이렇게 집 안에만 틀어박혀 고민만 하고 선택도 하지 못한 채 걱정과 불안으로 살아가는 건가 싶습니다. 제가 그냥 감정 변화가 큰 사람인 건가 싶다가도 혹시 조울증이나 우울증이면 어떡하나 걱정스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제 상태가 걱정할 정도인지, 그냥 마음을 잘 챙기면서 살면 되는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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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10년 가까이 계속되는 기분 변화와 무기력감 등으로 고민하셨다니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그런 중에도 용기를 내어 정신의학과를 방문해 보셨다고 하니 노력과 용기에 격려와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보내 주신 사연을 살펴봤을 때 오랜 기간 우울감을 경험해 오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기분이 다시 좋아지고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아지는 시기가 중간중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우울감이 기저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사연자님이 느끼시기에 그렇게까지 큰일이 아닌 일에도 기분이 급격하게 울적해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경험을 하셨던 것이겠지요.

정확한 진단은 추가적인 심리검사 및 면담 등을 통해 이루어져야겠지만, 말씀하신 증상들을 살펴보았을 때 우울증이나 기분부전장애와 같은 기분장애를 경험하고 계실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주요우울장애의 경우 우울한 기분, 모든 활동에서의 흥미와 기쁨이 상실되거나 현저하게 감소, 체중 및 수면의 증가 또는 감소, 초조감, 피로감이나 에너지 상실, 무가치하다는 느낌이나 죄책감, 사고력이나 집중력 감소, 무가치감이나 죄책감, 죽음에 관한 생각과 같은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며 직업적, 사회적인 역할을 하는 데 어려움을 가져오는 것이 특징입니다.

기분부전장애는 우울증보다는 조금 더 경미한 우울감으로, 기분이 낮게 깔려 있는 듯한 증상이 2년 이상 지속됩니다. 지속성 우울장애는 만성적인 주요우울장애와 기분부전장애를 통합한 것으로, 최소 2년 이상 지속적인 우울감을 경험하고 증상이 없었던 시기가 2개월 미만일 때 진단됩니다. 

사연자님께서 경험하고 계시는 우울감, 무가치감, 흥미나 의욕의 상실, 죽음에 관한 생각 등은 우울증을 경험하는 시기(우울 삽화)에서 나타나는 증상과 상당히 중첩됩니다. 우울감이 감소하고 일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는 시기에는 목표도 생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노력도 기울이면서 성과를 보이기도 하지만, 다시 우울 삽화가 찾아오면 전술한 증상들을 경험하시는 것이지요. 별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에도 급격한 기분 변화를 겪는 것은 그러한 사건들이 수면 아래 깔려 있던 우울감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방아쇠(트리거-trigger) 역할을 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우울감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사연자님이 일상적인 일을 하고, 학생이나 직장인으로서 역할을 하는 데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으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학창 시절이나 대학 시절 사회적 관계로부터 스스로 위축되거나 출석, 시험처럼 학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활동을 꾸준히 하기가 쉽지 않으셨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하기 싫어서, 게을러서와 같은 의지의 문제라기보다는 우울감으로 인한 기능 저하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실제로 상담을 받는 동안에는 학업성적도 좋았고 출석도 잘하셨다는 점 역시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담이 끝난 후 다시 예전과 같은 양상이 나타났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와 현재까지 정서적 어려움을 경험하고 계십니다. 그동안 이런 증상들을 극복해 보려고 많이 노력도 하고 마음고생도 하셨을 사연자님께 위로와 격려를 전합니다. 현재 경험하고 계신 증상에 대한 진단에 앞서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울감이나 무기력감, 선택하지 못하고 집에만 머물러 있는 상황이 사연자님이 의지가 약해서 혹은 무언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울증을 비롯한 심리적 어려움은 개인이 노력하지 않아서 생긴 것 혹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가서 의사로부터 필요한 도움을 받는 것처럼, 심리적 어려움 역시 무작정 참고 혼자 이겨내려고 하기보다 전문가와 함께 현재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울이나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탐색과 함께 뇌와 호르몬 변화를 비롯한 생물학적 기전에 대한 접근을 통해 도움받으실 수 있습니다. 다른 많은 심리적 어려움과 마찬가지로 기분장애 역시 심리적, 사회적, 생물학적 요인에 대한 통합적 접근을 통해 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적 개입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정적 부담으로 인해 일단 추가적인 검사나 진료는 받지 않은 상태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심리적 어려움은 신체적 어려움 못지않게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비교적 눈에 잘 띄고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적 어려움과 달리 심리적 어려움은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이 인지하기 어려울 때도 많고, 적절한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오랫동안 돌보지 않고 상처가 더 곪으면 심한 경우 자신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는 측면이 있더라도 본인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일이라는 점에서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상담이나 약물치료를 위한 현실적 재정 계획을 세우면서, 전문가와 기간이나 횟수를 논의해보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정부 기관이나 다양한 단체를 통해 지원되는 무료 또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심리상담 서비스를 활용해 보시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겠습니다. 단, 비용이 없거나 저렴한 기관을 이용하시더라도 공인된 자격증과 경력을 갖춘 전문가인지 확인 후 도움을 받으시기를 권유드립니다. 

또, 가족이나 친구분 등 주변의 믿을만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께 사연자님의 상태를 공유하고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기력하거나 의지가 없어 보이는 모습이 나태해서가 아니라 우울증의 증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주변 분들 역시 사연자님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필요한 도움을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랜 기간 반복되는 우울감으로 힘드셨을 텐데, 더 이상 혼자만 이 고민을 끌어안지 마시고 전문가 및 주변 분들로부터 필요한 도움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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