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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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CG 처리가 된 가상의 인물 또는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서 '정말 너무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사람들은 로봇이나 가상의 인물들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질 때 약간의 불안이나 거부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를 일컫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현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2019년에 개봉된 영화 <캣츠>를 기억하시나요? 오랜 시간 동안 뮤지컬로 사랑 받았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는 CG 처리된 휴머노이드 고양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뮤지컬 작품의 인기와는 달리 영화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관객들이 영화에 등장한 휴머노이드 고양이를 보면서 섬뜩하게 느낀다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앞서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영화 <슈렉>의 경우, 사전 테스트 상영에서 피오나 공주라는 캐릭터에 대해 아이들이 불안하고 겁에 질려 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영화 개봉을 하기 전에 대폭 수정 작업을 진행해야 했는데, 이는 피오나 공주가 인간과 너무 똑같아서 일어나는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인간과 같은 모습의 로봇, 애니메이션 대상이 일으키는 감정적 반응 사이의 관계를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극도로 실제적인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해서 친밀하게 느끼기보다는 불안과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이지요. 

언캐니 밸리 이론은 1970년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처음 소개한 것입니다. '언캐니(uncanny)’란 ‘불쾌함'이라는 의미로, 1906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에른스트 옌치가 먼저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가 정말 존재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심을 뜻하기도 하지요.

모리 마사히로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들은 로봇이 인간과 유사함이 있을수록 호감을 느끼는데, 해당 존재로부터 인간성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유사함이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인간과 다른 모습에 두드러지며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그 유사함이 실제와 실제가 아닌 것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닮아 있다면, 호감도는 다시 높아진다고 하지요. 

'불쾌한 골짜기'라는 의미를 담은 ‘언캐니 밸리’ 현상은 이처럼 특정 대상에 대한 유사도에 따라 특정 구간에서 호감도가 하락했다가 다시 상승하는 추이의 그래프가 마치 깊은 골짜기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현상은 영화 속의 로봇뿐만 아니라 사람과 유사도가 높은 인형, 3D 애니메이션, 광대, 좀비 등에도 적용된다고 합니다. 

 

▪ 불일치에 의한 긴장은 생존 반응

2011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로봇 목소리를 가진 로봇이나 사람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는 반면, 사람 목소리를 가진 로봇들에게 겁을 먹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불일치에 의한 긴장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로봇 등이 사람과 아주 사소한 차이를 보일 때도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합니다. 예를 들어, 로봇이 너무 느리게 웃을 때 어색함을 느끼기보다는 무서움, 이상함, 혐오감, 소름 끼치는 느낌 등을 경험하게 된다고 하죠. 

모리 마사히로는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이 인간의 생존 반응(Inconsistency)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죽음이나 질병과 같이 위협을 만났을 때나 사람이 죽거나 죽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반응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언캐니 밸리 반응이 인간 뇌의 범주 인식의 오류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우리의 뇌가 특정 대상을 범주화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흡사한 로봇을 어떤 범주에 해당하는 것인지, 혹은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는 것인지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인지 부조화를 경험한다는 설명입니다. 

2014년 한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들이 가상의 캐릭터에 대해서 낯설거나 덜 친근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부정적인 느낌은 현실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디자인과 미학에 대한 차이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 로봇 시대를 위한 캐릭터의 모습 

그렇다면, 점점 로봇 기술에 의존하는 시대에는 어떤 캐릭터가 환영받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에게 불안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지 않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섬세한 작업이 필요할 텐데요, 사람들은 유용하면서도 매력적인 디자인을 조금 더 잘 수용한다고 합니다. 

한 연구에서는 너무 인간에 가까운 로봇들은 호감도가 덜할 뿐 아니라 더 낮은 신뢰도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습니다. 언캐니 밸리에 해당하는 수준, 즉 인간스러우면서도 부조화를 유발할 수 있는 디자인은 환영받기 어렵다는 점을 섬세하게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AI 기술은 심리상담, 디지털 치료 등을 위한 장면에서도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언캐니 밸리를 고려한다면, AI 디지털 치료를 찾는 사람들에게도 적절한 인간적인 모습과 개입이 필요하겠지요. 적절한 라포를 위해 아바타를 사용한다면 치료 관계가 촉진될 수 있겠지만, 지나치게 인간에 가깝다면 오히려 그 과정을 방해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미래에는 기술 발전에 따라 로봇이나 AI 기술이 더욱 고도화되면서 사람들이 언캐니 밸리를 경험하지 않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기술이 일상 생활에서 점점 더 우리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오겠지요. 사람의 감정적인 반응까지 섬세하게 고려하는 모습의 로봇의 모습을 기대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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