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얼마 전 첫눈이 내렸습니다. 이렇게 찬바람이 불어오고 창밖으로 눈발이 날리는 계절이 오면, 문득 헤어진 옛 연인이 생각나면서 왠지 옆구리가 더 시린 것만 같고 울적해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차분한 발라드 노래를 들으며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면 헛헛해진 마음에도 왠지 모를 온기가 흐르면서 위안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처럼 음악은 지치고 쓸쓸한 이들에게 마음의 위로가 되어 주는데요, 감미롭거나 구슬픈 멜로디도 그렇지만 어떤 노래는 유독 노랫말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우리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고,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도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즐겨 듣는 노래, 그중에서도 노랫말 속에 담긴 사랑과 이별의 심리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많은 분들이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의 위안과 평온을 찾고 또 위로를 받으실 텐데요, 그중에서도 특별히 사랑과 이별에 관한 노래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애틋함, 붙잡고 싶은 연인에 대한 집착과 아쉬움, 이별의 아픔과 슬픔처럼, 사랑의 열병과 이별의 성장통을 겪어 보신 분이라면 감정이입이 되기 쉬운 테마죠. 특히 이별에 관한 발라드는 애절한 곡조와 슬픈 내용의 노랫말이 함께 어우러져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애써 참아 왔던 눈물을 기어이 흐르게 만듭니다.
우리나라 가수 중 이별과 슬픔, 우울의 정서를 가장 호소력 있게 노래하는 가수 중 한 사람을 꼽으라 하면 단연 이소라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그녀는 뛰어난 가창력은 물론 풍부한 감성, 엄청난 작사 능력을 가진 가수이기도 합니다. 이소라 노래의 가사는 마치 한 편의 서정시처럼 메마른 우리의 가슴을 적셔 줍니다.
1998년에 발매된 이소라의 ‘blue sky’라는 곡의 가사에는 실연당한 사람의 내면과 심리 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후에 겪게 되는 심적 고통을 “그 죄를 받아야 하는 일”로, 이별 후 맞이하는 아침에 대해서는 “나 혼자 일어난 미친 아침은 맑아도 눈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죠.
그녀의 또 다른 노래인 ‘제발’이라는 곡에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떠나간 연인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애절한 마음이 노랫말에 잘 담겨 있습니다.
잊지 못해 너를 있잖아 / 아직도 눈물 흘리며 널 생각해 (중략) /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길 부탁해 /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길 바랄게 / 기다릴게 너를 하지만 / 너무 늦어지면은 안 돼 / 멀어지지마 더 가까이 제발 제발 제발
그리고 이소라의 대표 곡이자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명곡 ‘바람이 분다’에는 사랑한 이가 떠나간 후에 세상과 자기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되는지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별로 인해 서러워진 마음에 세상 풍경은 “텅 빈 풍경”이 되어 버리고,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기에 이르죠.
실제로 우리가 이별 직후에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 일시적으로 분비되지 않아 우울한 기분에 빠지기 쉬운데요, 이럴 때 여성들은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주거나 예쁜 옷을 쇼핑하는 등 가라앉은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사랑의 온기는 식어 버리고 차가운 바람만이 느껴지는, 이별한 이에게 있어 자신만 홀로 달라졌다는 자아 인식의 변화를 엿보게 됩니다. 사랑의 합일을 꿈꾸게 했던 달콤한 속삭임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대는 내가 아니라는 뼈아픈 뉘우침만 남긴 채 사랑은 그렇게 비극으로 막을 내리죠. 실연당한 그가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감각은 머리 위로 불어오는 바람과 흐르는 눈물뿐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별 후에 느끼는 아픔이 심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신체적 고통까지 가중된다는 사실입니다. 영국의 버밍엄 대학교 연구진은 이별을 경험한 사람을 대상으로 혈액검사를 실시한 결과, 이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코르티솔 수치가 매우 높게 나타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여기서 코르티솔은 급성 스트레스에 반응해 분비되는 물질로, 이 호르몬이 백혈구의 일종인 호중구의 활동을 현저하게 감소시켜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조차 고통스럽게 느껴질 만큼 인생의 큰 시련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시련의 아픔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별의 상처를 너무 빨리 덮어 버리는 것도 상처를 회복하는 현명한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사랑했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충분히 애도한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 곁을 떠나간 그 사람을 마음에서 놓아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이 아픈 시기에 나의 마음을 더듬고 보듬는 데 함께해 줄 여러분만의 이별 노래가 있어서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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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것만으로 왠지 위로가 됐어요. 뭐라도 말씀드리고 싶어서 댓글로 남겨요. "
"게을렀던 과거보다는 앞으로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네요. "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상처를 회복하는 현명한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에서 많은 공감이 되네요
저는 형을 잃고 그 슬픔을 생각 안하려고 빨리 덮으려고 했는데
그 부작용이 일상생활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터져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요즘은 유가족모임에도 계속 나가고있고 일기에 형에 대한 것들도
많이 쓰면서 충분히 애도기간을 갖음으로 저는 '자유'를 느끼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