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문득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삼투압의 원리와 그 현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흥미롭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삼투압 현상이란, 간단히 말해서 반투막을 사이에 두고 있을 때 농도가 낮은 용액이 높은 용액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본격적인 김장을 담그기 전에 배추에 소금을 뿌려 두면 배추 속에 있던 수분이 소금이 있는 쪽으로 빠져나와 배추의 숨을 죽이는 작업에도 바로 삼투압의 원리가 녹아 있죠. 또한 우리 몸이 많은 수분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이유 역시 ‘염분’ 때문인데요, 우리 몸속에 있는 수분이 줄어들면 체내의 나트륨 농도가 올라가면서 삼투압 현상이 일어나 세포에서 수분이 빠져나오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의 몸은 목이 마르다는 신호를 통해 수분을 섭취하게끔 하죠. 알면 알수록 놀라운 인체의 신비, 과학의 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몸이나 물질뿐만 아니라, 정신세계에 있어서도 삼투압의 원리와 유사한 정신 작용이 일어난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인간의 마음과 정신은 끊임없이 외부의 대상과 상호작용을 하며 관계를 맺습니다. 특히 아직 한창 자아가 발달 중에 있는 어린 아동이나 청소년들은 주변 사람들이 그들에게 하는 말이나 그들을 대하는 태도 등을 흡수해 자기 정체성과 핵심 신념, 생각, 감정 등의 토대를 다지면서 무의식을 형성하는 데 많은 근간을 이루게 되죠.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이러한 정신 작용을 심리학에서는 ‘내사(introjection)’라고 부르며, 이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를 뜻합니다. 마치 반투막을 사이에 두고 농도가 낮은 용액이 높은 용액 쪽으로 흘러들어 원래 있던 용액의 농도가 변화되는 삼투압 현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외부에 있는 물질이 반투막을 통과해 내부로 흘러들어 와 내부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삼투압 현상. 

문제는 아직 자아 정체감이 확고히 형성되지 못한 어린아이나 내면이 단단하지 못한 성인들도 자신과 친밀하거나 의미 있는 대상의 부정적 감정 상태나 사고방식, 메시지 등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오랜 기간 타인의 부정적 감정이나 메시지를 내면화해 온 사람은 그것이 비록 실제나 사실이 아닐지라도 마치 원래부터 자신이 갖고 있던 핵심 신념이나 감정인 것마냥 이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죠.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했던 부정적인 말이나 평가, 시선과 태도 등은 우리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며 어느덧 나의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유난히 나를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는 생각, 오랫동안 나의 내면에서 들려왔던 목소리가 있다면, 그것이 애초에 내 것이었는지, 아니면 혹시 누군가에 의해 시작되거나 오랜 시간 들어 왔던 메시지는 아닌지 곰곰이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내사와는 반대되는 개념의 ‘투사’라는 정신 작용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투사(projection)란, 자아에 의해 받아들이기 힘든 욕망이나 동기를 타인에게 귀속시키는 일종의 방어기제 중 하나입니다. 정신분석이론에서는 이러한 투사를 자기 내면에 잠재된 죄의식이나 열등감, 공격성과 같은 불편한 감정을 마치 외부 대상에게 있는 것처럼 떠넘김으로써 감당하기 힘든 욕망이나 충동, 생각, 감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보기도 하죠.

우리가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든지 ‘투사’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합니다. 특히 친밀한 관계일수록 더 많은 투사가 일어나기 쉬우며, 이는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일어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많이, 더 깊게 감정적으로 상호작용하게 되고 서로의 바람과 욕구, 실망과 서운함 등이 뒤엉켜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죠.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다고 믿는 아내의 부정망상이나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어 기분이 잔뜩 상한 채로 집에 돌아와 애꿎은 자녀에게 화풀이하는 아버지 역시 사실은 감당하기 힘든 자신의 욕망이나 감정 상태를 외부 대상에게 투사하는 미성숙한 심리 기제라고 볼 수 있죠.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그렇다면 외부의 부정적이고 부적절한 메시지를 ‘내사’하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며,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타인에게로 ‘투사’하지 않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그 시작점은 바로 이것이 누구의 생각이고 신념이며 감정인지 ‘알아차리는 것’에 있습니다. 

어릴 적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학대당한 아이는 무의식중에 ‘너는 쓸모없는 아이.’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이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고, 부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을 테니, 그 부분을 알아차리고 더 이상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으로 남겨 두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깥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아버지는 자녀를 타깃 삼아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전가하려 했음을 깨닫고,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지요.

이쯤에서 여러분께 삼투압의 원리와 관련된 퀴즈 하나를 내 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적혈구를 물속에 넣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바로 ‘적혈구의 세포막이 유입된 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진다.’가 정답인데요, 즉 적혈구 안은 물보다 농도가 높기 때문에 물이 적혈구 속으로 들어가고, 적혈구 속의 용질 입자는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해서 결국 적혈구가 터지게 되는 것이죠. 

우리의 마음도 이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외부 대상으로부터 무분별하게 ‘내사’된 생각과 신념, 나에 대한 부정적 평가나 비난은 애초에 ‘나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심리적 방어막을 통해 적당히 걸러 듣고, 나 역시 가깝다는 이유로 또는 아낀다는 명목하에 ‘내 것’을 상대에게로 ‘투사’해서 ‘네 것’으로 돌리지 않도록 늘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참고문헌: 최광현(2019). 나는 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부키.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조언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