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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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또래보다 작아서 걱정이에요.”

-“아이가 소심한 성격이어서 걱정입니다.”

-“우리 애가 좀 산만한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둘째 녀석이 많이 내성적인데 어쩌면 좋을까요?”

 

우리나라 부모님들 참 자식 걱정 많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들께서 자녀에 대해 걱정하는 내용을 잘 들어 보면 사실 크게 걱정할 거리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좋아질 일이거나 작은 부분을 확대해서 큰 문제로 인식하면서 걱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도 합니다.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잦아들거나 해결되기 무섭게 또 다른 걱정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부모님들의 걱정 안테나는 365일 24시간 레이더를 가동하며 자녀를 향해 늘 촉각을 세우고 있으니, 정말 대단한 자식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걱정이 많은 부모님들의 내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부모님의 불안한 심리나 ‘투사’라는 방어기제가 자녀에 대한 걱정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투사(projection)란, 정신분석이론에서 특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심리적 방어기제의 일종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또는 문제점 등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무의식적인 심리 작용을 뜻합니다. 이러한 부모님의 투사 심리가 어떻게 자녀를 향한 시각에 프레임을 씌우거나 과도한 걱정으로 연결되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의 성격이나 기질과 관련된 고민이나 걱정을 하십니다. 아이가 소심하다거나 혹은 내성적인 성격인데 험난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부모로서 이런 걱정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시기도 합니다. 물론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여든 살의 노모가 환갑이 된 아들에게 “차 조심해라.”라는 말을 하겠습니까. 그만큼 부모라는 존재는 평생 자식 걱정을 갑옷처럼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도가 지나친 자녀에 대한 걱정은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단, 자녀가 어떤 문제로 특별히 힘들어하거나 생활하는 데 실제적인 어려움이 있어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예외입니다. 이럴 때는 부모님께서 자녀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걱정해 주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면서 자녀 곁에서 힘이 되어 주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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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입장에서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이는 일로 전전긍긍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죠. 소심한 성격이나 내성적인 기질을 타고난 아이가 과연 부모님의 걱정거리가 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소심하다거나 내성적인 성격은 그 아이가 타고난 특성이지 개선해야 하거나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단지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조금 쑥스러워할 수는 있지만 소수의 친한 친구들과는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외부의 평가나 시선에 큰 흔들림 없이 자기중심을 잘 잡으며 내적으로 단단하게 성장 가능한 잠재력을 타고났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녀의 고유한 성격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자꾸만 ‘잠재적인 문제아’ 취급을 하며 불안한 마음을 자녀에게 투사할 때 아이는 어딘가 부족하고 문제가 있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이렇듯 자녀의 문제로 과도하게 고민하는 부모님들 중에는 자신의 소심한 성격으로 인해 힘들었다거나 남편의 내성적인 성격이 불만인 경우처럼 ‘자녀의 것이 아닌 것’들을 ‘자녀의 문제’로 덮어씌우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녀의 소심한 성격을 부정적인 기질로 단정하고 고쳐 보겠다며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번지수가 잘못된 부모님의 투사 심리로 인해 결국 자녀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진짜 마음과는 다르게 아이는 자존감에 치명타를 입게 될 수도 있습니다. 쉽게 바뀌기 힘든 타고난 기질이나 성정을, 또는 자신은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부분을 부모님이 자꾸 문제 삼게 되면서 ‘멀쩡한 아이’가 ‘못난 아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진짜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의 숨겨진 욕망이나 불안한 마음이 자녀에게 투사되었던 것인데 말이죠. 따라서 정말 자녀를 위하고 싶다면 아이를 다그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을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 자녀를 걱정하는 나의 근심에 타당한 이유나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 걱정은 알맞은 정도인지, 만약 근거가 없었다면 그 근심의 근원은 무엇인지 자기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 봐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고 합니다. 앞에서만 아무리 괜찮다며 아이를 안심시켜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자녀에 대한 지나친 걱정의 실체를 잘 파악해서 근심하는 마음 대신 자녀에 대한 믿음과 긍정의 에너지를 흠씬 전해 준다면, 아이에게 숨어 있던 작은 씨앗들이 때가 되면 그 생명력을 소담스럽게 꽃피우는 날이 올 것입니다.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성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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