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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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참 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나의 일인 양 나서서 도와주고, 모든 이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저 사람 가족은 정말 좋겠다.’, ‘저분 아내 분은 복 받았네.’처럼 주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곤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남들에게는 매너가 좋고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분들 중에는 이상하리만치 가족 일에는 무심하고, 무심함을 넘어서 가족들에게만 함부로 대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오늘은 이렇듯 남들에게만 호인, 가족에게는 인색한 분들의 심리는 무엇이고, 왜 그러는 건지,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지난 8월 개그맨 엄영수 씨는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 출연해 방송을 통해 개인적인 고민을  꺼내 놓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지 못해 큰돈을 빌려주고도 되돌려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심지어는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이 없을 때조차 대출을 받아서라도 도움을 주었고, 자신의 도움으로 인해 누군가의 어려움이 해결된다면 마땅히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남을 위해 살아온 세월인 만큼 정작 노년이 된 지금, 자신을 위한 마땅한 노후 대비책도 마련해 두지 못했다고 이야기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는데요, 그럼에도 그는 “그래도 재능을 기부해서 남들을 도울 수 있도록, 재능을 주신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복받쳐 오르는 감정에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 엄영수 씨의 모습을 지켜보던 오은영 박사는 “마치 영화 속에서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등장하는 히어로가 떠오른다.”며 “다른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해 주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서 느끼는 뿌듯함과 감사, 찬사와 같은 반응이 선생님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이어서 가족들에게는 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는데요, 이에 대해 엄영수 씨는 “밖에 나가서는 남한테는 그렇게 잘하면서 식구들에게는 왜 이렇게 못하냐고 야단을 맞는다.”라는 솔직한 고백에 가족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짐작케 했습니다. 뒤이어 가족들의 기념일을 못 챙기는 건 기본이고 가족 모임에도 거의 불참한다면서 잘하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지만, 바깥 업무가 많아서 일일이 챙길 수 없었다고 덧붙였죠.

또 자녀와도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후회되는 측면도 있지만 가족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더 큰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돕는 일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었기에 그런 이들을 위해서 우리 가족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느라 정작 소중한 가족들에게는 소홀히 대했던 방송인 엄영수 씨. 그는 “가족들은 이러한 나의 사정을 이해해 주잖아요. 가족이니까.”라는 말로, 마치 가족이라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발언에 패널들도 다소 의아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뜻밖의 안타까운 가족사가 숨겨져 있었는데요, 유년 시절 마을의 이장을 담당했던 아버지께서 집안 형편이 안 좋은데도 불구하고 사비를 들여 이장 역할을 다하느라 정작 가족들에게는 소홀하고, 그로 인해 어머니와 자녀였던 자신이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가 만만찮았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렇게 어려운 처지에서도 홀로 객지 생활을 하던 아들을 보살피고 걱정해 주시던 어머니의 사랑이 가슴 깊이 새겨진 듯한 모습에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힘들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그의 가슴 한편에는 마치 어려운 시절에 자신을 보살펴 주던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처럼 힘든 이들에게 베풀고 힘이 되고자 했던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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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엄영수 씨처럼 이렇게 가족에게 무심한 경우뿐만 아니라, 밖에서는 남들에게 한없이 친절을 베풀면서도 가족들에게는 무시와 비난, 냉대와 폭언을 일삼는 분들 역시 우리 주변 혹은 여러분의 가족 중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가족이니까 좀 못해도 이해해 주겠지.’ 혹은 ‘힘들 때 받아주는 게 가족 아니야?’라는 무의식적인 생각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사회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나 긴장감, 짓밟힌 자존심 등을 회복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분노를 분출하거나 가족 위에 서서 군림하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렇게 해서 본인의 부정적인 감정은 해소될지언정 소중한 가족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게 되고, 그로 인해 가장 친밀해야 할 가족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가족을 대하고 소통하는 방식에서 상호 존중하고 감정적 교류 및 유대감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필요합니다. 

남들에게는 호인, 가족에게는 남보다 못하게 대하는 분들 중에는 개인의 성향이나 성격적 특성, 원가족의 역사, 역기능적 가정에서 양육된 경험, 가정 내 역학 관계나 그 밖에 대인관계, 사회적 경험 등등 각기 다른 이유나 심리적 원인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원가족 내에서 친밀한 가족 관계나 건강한 의사소통이 부재했던 경우, 주 양육자와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경우, 가족으로부터 많이 소외되었거나 큰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경우, 부모에게 제대로 된 인정이나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 학창 시절 따돌림이나 학교 폭력에 노출된 경우 등 인간관계에서 친밀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었던 경험이 별로 없었거나 원가족 내에서 겪었던 심리적 결핍과 어려움 등이 내가 이룬 가정으로 옮겨와 재현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나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의 심리적 결핍이나 상처를 잘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것은, 본인은 물론 소중한 가족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고 건강한 소통을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가운데 그간 가족에게 무심하기만 했던 분이 계시다면,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많은 것을 찾아서 멀리만” 떠나려 하지 말고, “소중한 건 옆에 있다.”는 진실을 너무 늦지 않게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 여러분이 찾던 행복은 다른 그 어딘가에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여러분 곁을 지켜 주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을, 말이죠.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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