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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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Gas Lighting), 가해자(가스라이터)가 교묘하게 심리적 조작을 일으켜서 피해자가 자신의 생각과 현실, 기억 등에 대한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피해자를 자존감 상실, 정신적 불안 상태에 이르게 하는 장기간에 걸친 심리적 학대. 

요약하자면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를 강화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가스라이팅이 가정이나 학교, 직장과 같이 특별한 장소나 관계가 아닌 일상의 공간,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가스라이팅을 하는 가해자는 자신의 통제적이고 가학적인 행위를 소위 ‘피해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정당화하며 피해자를 세뇌시키며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피해자가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스라이터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만약 여러분의 주변에 이러한 행동 특성을 상당수 가지고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가스라이터일 확률이 높으므로 그 관계에서 벗어나거나 올바른 대처를 통해 가스라이팅의 피해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어쩌다가 이러한 행동 특성을 보인다거나 해당되는 사항이 있지만 극히 일부라면 상대가 가스라이터라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스라이터들은 이런 행동을 특정한 상황이 아니라 마치 삶의 한 방식처럼 일삼으면서 사람들을 조정하는 것이 일상인 사람입니다.

미국의 스테파니 몰턴 사카스(Stephanie Moulton Sarkis) 박사는 오랜 기간 자신의 임상 경험과 사례를 통해 가스라이터들의 공통된 특징을 추려냈습니다. 여기서는 그의 저서 『가스라이팅』의 내용을 참고해서 가스라이터의 특징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여러분 주변의 누군가가 혹은 여러분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런 행동을 일삼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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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건부 사과를 한다
상대방에게 잘못하거나 미안한 일이 있을 때 사과를 안 하는 것은 아닌데, 꼭 조건을 달아 사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너무 화가 나서 참지 못하고 당신 구두를 던져 버린 것은 미안하지만, 내가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건 당신이라고!” 이 말속에는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잘못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이나 미안함보다는 상대가 먼저 잘못해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자기변명이 속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특별 대우를 당연시한다
가스라이터는 자신은 상대방이나 남들에게 당연히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며, 자신의 주장이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침없이 분노를 표출하거나 보복을 다짐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3. 강약약강의 태도를 보인다
이들은 노약자나 동물, 어린아이와 같이 약자들에게 가차 없이 대하거나 그들을 괴롭히고, 심지어 일부러 위험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반면, 자기보다 힘이나 권력이 강한 사람들, 뭔가 이용할 가치가 있거나 원하는 것이 있는 상대에게는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떠는 등 강자에게는 약하게, 약자에게는 강하게 행동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4. 상대의 약점을 공략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약점 한 가지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만약 누군가와 친밀하고 신뢰로운 관계라면 이러한 약점은 서로에게만큼은 흠이 아니라 감싸 주어야 할 성질의 것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겠죠. 그러나 가스라이터에게 있어 상대의 약점은 곧 나의 무기가가 됩니다. 상대를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싶을 때 이 약점을 들먹이며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것이죠. 

 

5. 거짓말과 지적, 비난을 일삼는다
가스라이터는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행여 거짓말이 들통이 나더라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 사실을 부인합니다. 오히려 그것을 역공의 기회로 삼아 상대를 공격하며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데 선수입니다. 또 끊임없이 상대의 외모나 말투, 행동 등을 지적하며 야금야금 자존감을 갉아먹으며 상대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6. 무책임하고 항상 남 탓을 한다
이들은 일이 잘못되어 가거나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으며, 모든 게 다른 사람들의 탓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나에게는 아무런 책임이나 잘못도 없고, 자신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기 바쁩니다.

 

7.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가스라이터는 감정적으로 무척이나 메말라 있고, 다른 사람들의 입장이나 배려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마음이나 감정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이 어렵고, 또 그럴 만한 필요성도 거의 느끼지 않습니다. 얼핏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는 듯 보여도 계산된 행동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8. 외모에 집착한다
가스라이터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집착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외모를 꾸미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며, 가스라이팅 하는 상대의 외모를 자기 방식대로 바꾸거나 사사건건 지적하곤 합니다. 

 

9. 공포감을 조성한다
이들은 상대를 과도하게 통제하거나 조종하려는 욕구가 강해서 자신의 제안 혹은 지시를 거부하거나 자신의 뜻대로 상대가 움직이지 않으면 공포감을 조성하며 위협합니다. 또한 실제로 언어적·경제적·신체적·정신적 폭력을 가하며 자신의 통제권 안에 가두려 하죠. 

 

10. 사람들 간에 이간질하며, 상대를 고립시킨다
가스라이터는 사람들 간에 이간질하는 것을 즐기며 이를 통해 서로 싸우고 미워하며 멀어지도록 하는 데 능수능란합니다. 이들은 이런 행동을 통해 통제감을 느끼며, 결국 상대를 가까운 이들로부터 고립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거나 통제하려는 강렬한 욕구를 가진 가스라이터의 내면 깊은 곳에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과 자기애의 손상 등이 존재합니다. 이들에게는 이러한 자기 가치감의 손상을 타인에 대한 통제나 권력 욕구를 채워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으로 볼 수 있죠.

이들은 특별히 어딘가 결핍이 있어 보이거나, 상처가 크거나,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을 귀신같이 포착해서 가스라이팅의 먹잇감으로 삼는 데 귀재이기도 하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자꾸만 자신이 못난 사람이 되거나 판단력이 흐려진다면, 누군가가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분을 비난하거나 인격을 깎아내리는 행동을 일삼는다면, 그와의 역학 관계를 찬찬히 살펴보며 행여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꼭 점검해 보셨으면 합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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