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모순적인 존재

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가 한 말로 잘 알려진 이 명언은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현관 기둥에 새겨져 유명해진 말입니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인식하는 일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도 삶의 화두일 만큼 중요한 문제였나 봅니다. 사실 자기 자신을 알아 가는 것은 평생에 걸친 과업으로 타인에 대한 이해와 통찰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자기 인식과 이해에는 객관성이 필요한데,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죠.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계신가요?

우리는 누구나 자기 존재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견해를 심리학에서는 ‘자아상’ 혹은 ‘자아개념’이라고 합니다. 이 자아개념 속에 포함되는 요소는 자신의 능력, 성격, 태도, 느낌 등을 포괄합니다. 그리고 ‘자아정체감’이란, 자신에 관해서 어느 정도 통합된 관념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개념으로, 자아정체감이 잘 형성된 사람은 자신의 성격이나 취향, 가치관이나 욕구, 관심사와 세계관 등에 대해 비교적 명료하게 이해하며, 이러한 이해가 지속적이고 통합적인 편입니다. 

자아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이론 등에 크게 공헌한 에릭슨Erikson은 자아 발달의 최종 단계를 ‘자아정체감의 발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에릭슨은 특히 생리적·신체적·지적으로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성장하는 청소년 시기에 자아정체감을 잘 확립하지 못하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인기에 진입해 성인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개인의 성격이나 가치관, 능력 등도 상황이 달라지고 시간이 흐름에 변하기 마련이므로, 자신에 대한 이해를 통합적으로 지속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인생의 큰 시련은 물론, 사소한 갈등 상황에서조차 끊임없이 갈등하며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란 존재니까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많은 분들에게 잘 알려진 성격 유형 검사인 MBTI는 서로 대응되는 두 개의 태도 지표(E-I, T-F)와 두 개의 기능 지표(S-N, J-P)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응답자들이 각각의 문항에 응답함으로써 개인의 선호도를 밝히면 16개 유형 중 자신이 어떤 성격 유형인지 결과가 나옵니다. 그런데 검사 결과 특정 유형에 속한다는 결과 값이 나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자기 성격이나 성향과 어쩜 이리 일치하느냐며 감탄하기 바쁩니다. 그러나 MBTI는 두 가지 성향 중 나는 어떤 선호도가 더 강한가를 보여 주는 것이지, 그에 대응되는 다른 성향이 없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외향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내향적인 면도 있고, 감각 추구 성향이 높지만 때로는 강한 직관력을 발휘하는 게 인간의 복잡한 내면인 것이죠. 인간은 상반되거나 대비되는 각각의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자신에 대해서도 좀 더 명확한 이미지를 갖거나 단순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인간의 성격만큼 복잡한 것이 없는데도 말이죠.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심리적 상태를 ‘인지 부조화’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지 부조화란, 부조화나 양립 불가능한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인간의 본능으로, 뭔가 일치하지 않을 때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 신념들 사이에서 모순된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챌 때 내적 갈등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불편해진 심기를 해소하기 위해 인지 부조화를 없애는 쪽으로 노력합니다. 예를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평소 나와 무척 친하고 많이 좋아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회사에서 일하다가 비리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무척이나 좋아했던 친구이기에 그에게 비도덕적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 친구에 대해 가졌던 ‘좋은 사람’이라는 신념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친구의 비리 행위를 ‘비도덕적 행위’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친구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며 합리화합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이러한 인지 부조화는 자신을 인식할 때도 발동해서 스스로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이해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평소 자신에 대해 내향적인 성향이라는 자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친분이 별로 없는 많은 이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소수의 친밀한 사람들과 교류하거나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선호합니다. 그런데 막상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자리나 함께 협력해 뭔가를 해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그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에 대해 ‘조용하고 얌전해 보이는데 의외’라는 평가를 내립니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스스로도 자신의 태도가 잘 납득되지 않거나 통합된 자기정체감을 형성하는 데 애를 먹기도 하죠. 

그런데 사실 이 사람은 내향성이기는 하지만, 적극적인 사람이었던 겁니다. 흔히 우리는 외향성과 적극성, 내향성과 소극성을 비슷한 성질로 묶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외향적이지만 소극적인 사람, 내향적이지만 적극적인 사람이라는 다소 모순되어 보이는 성질이 함께 공존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동안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살다 보면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스로도 당혹스럽고 부정하고 싶어집니다. 어쩌면 자기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과거 모습에 머물러 있던 자기에 대한 인식이 시야를 가려 변화된 현실의 나를 흐릿하게 비추는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도망치지 말고 자기모순과 대면해야 합니다. 그 모순적이고 양면적인 모습의 나를 마주할 수 있을 때 좀 더 객관적인 자기 이해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도 내면의 양면성을 마주치게 되면 마음의 불편감을 없애려고 섣불리 시도하기보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인수 원장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전체기사 보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