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 세상에 불행해지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오늘보다 내일은 좀 더 웃을 수 있기를, 행복해지기를 바라죠. 그런데도 우리는 왜, 아직 행복해지지 못한 걸까요?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참 많이 노력합니다. 마치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을 충족하려는 듯, 더 좋은 집과 차와 능력을 갖기 위해 애를 씁니다. 더 많은 것을 갖게 되고,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되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신앙과도 같은 믿음이 우리를 지배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럴수록 행복은 요원하게만 느껴집니다. 

문득 행복에도 공식이 있다면, 그 공식을 알아내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갑니다. 그렇다면 이 행복 공식에서 가장 중요한 기호는 무엇일지도 말이죠. 세상 사람들이 앞다퉈 자신의 인생에 더 많은 행복의 요인을 덧칠하는 것처럼 행복도 플러스 공식을 따르는 걸까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소설 『완전한 행복』을 쓴 작가 정유정은 행복이란 무엇인지, 과연 완전한 행복이란 가능한 것인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인 유나가 행복을 추구하는 관점과 그 방식은 통념의 궤도를 이탈해도 너무 멀리 이탈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행복에 방해가 되거나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그 어떤 상황이나 존재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 사람이 자신의 가장 가까운 피붙이나 한때 사랑했던 사람일지라도 말이죠. 그녀는 완전한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나갑니다. 

주인공 유나가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한 공식은 덧셈이 아닌 뺄셈이었던 것이죠. 비단 특정한 상황이나 조건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를 제거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서늘한 공포감과 함께 인간성에 대한 회의감까지 밀려듭니다. 

주인공은 황폐하고 공허한 자신의 내면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철저히 유폐하려는 듯, 폐쇄된 문 앞에 깊디깊은 함정을 파 놓고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립니다. 얼마 뒤, 꼼짝없이 이 함정에 걸려든 희생양들은 ‘완전한 행복’을 염원하는 그녀의 제단에 제물로 바쳐지기에 이르죠.

정유정 작가는 이 책의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이 완전한 행복에 이르고자 불행의 요소를 제거하려고 ‘노력’한 어느 나르시시스트의 이야기라고 밝힙니다. 소설에서는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위험천만한 나르시시스트의 극악무도한 만행을 그리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는 이 정도로 흑화되지는 않았어도 자신만의 욕구와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정당한 욕구나 권리를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자칫 평범해 보이는 나르시시스트들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모두 얼마간의 자기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 자기애를 리비도libido의 힘이 자신의 내부로 향하는 것, 즉 자기 자신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일컫습니다. 프로이트S. Freud는 정상적인 발달단계에서도 얼마 동안은 자기애가 발현되며, 어느 정도의 자기애는 일생을 통해 지속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자기애적 성격이 유독 강한 사람이나 타인을 향했던 사랑이 크게 좌절되거나 혹은 상처가 깊을 경우, 자기 가치감을 조절할 능력을 상실하거나 대인관계에 지나치게 예민해집니다. 또 자기 안으로 한없이 침잠해 가면서 타인을 수단시하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이들은 자신의 안위나 행복을 위협하는 대상이 포착되면 언제든지 포악한 맹수로 돌변해 처단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르시시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들이 쳐 놓은 덫에 걸려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우리의 행복을 지키는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하는 조금은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덫은 한 번 빠지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법이니까요. 또,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과연 완전한 행복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의문만 증폭되는 듯합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 교수는 약 800명의 성인 남녀의 삶을 70년간 추적 조사했습니다. 그는 2년마다 실험자들을 방문하여 설문지를 작성하게 하고, 건강검진과 혈액검사, 필요한 경우에는 뇌영상 검사도 시행했습니다. 또 실험자 가족에게 인터뷰도 진행하면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무엇인가를 밝혀내고자 했습니다. 오랜 종단연구 결과, 베일런트 교수는 한마디로 이 연구의 결론을 정의했습니다.

“좋은 인간관계가 우리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든다.”

그는 또 인간의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로, 첫 번째는 따뜻하고 친밀한 인간관계, 두 번째는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성숙한 방어기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한 뭔가 대단한 비법을 기대했던 분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타고난 부나 재능, 명예나 학벌보다 내가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개선 가능성이 있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나 정신적 성숙이 행복에 있어 중요하다는 소식은 한편으로 희망적으로 다가옵니다.

 

『완전한 행복』의 주인공 유나는 행복에 이르는 공식으로 뺄셈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이 공식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잘못된 행복 공식이었죠. 오히려 베일런트 교수가 행복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친밀한 관계는 제거하는 쪽을, 성숙한 방어기제는커녕 미성숙한 방어기제와 붕괴된 자아를 향해 내달릴 뿐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깨달음과 함께, 내가 행복할 권리 못지않게 타인의 행복을 그르칠 권리란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았음을 절감합니다.

제가 생각해 본 행복의 공식은 이렇습니다. 스스로를 옭아매거나 해가 되는 것들은 타협 가능한 선에서 조금씩 줄여(-) 나가고, 나에게 소소한 행복과 기쁨을 주는 행위들은 더해(+) 가면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완전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괜찮은 행복의 공식이 아닐까 하는 것이죠.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행복 공식을 찾아서 함께,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전문의 홈 가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