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우울과 불안을 앓았던 사람입니다. 정신과를 일 년 반 동안 다녔었고, 현재는 임의로 단약한 지 4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일 년 반 동안 약을 꾸준히 먹었고, 취업을 하면서 불안은 거의 없어졌고, 눈에 띄는 우울 증세도 줄어들면서 정신과를 그만 다니게 되었어요. 

잠도 잘 자고, 직장에도 잘 다니면서 생활하게 되니까 2주에 한 번씩 정신과에 방문해서 선생님이 잘 지냈냐고 물어보시면 잘 지냈다고 답하고 약만 타 와서 먹고… 이런 게 반복되다 보니 나아지는 것도 없고, 이제 약을 그만 먹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끔 우울하기도, 하고 ‘나는 여전히 잘하는 게 없고 못났다.’ 이런 생각을 하긴 하지만, 정말 가끔이라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마이너스 감정들은 지워졌는데, 플러스인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어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하는 일만 성취감이 느껴져서 조금 재밌고, 그 외에는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취미를 가져 보려고 해도 오래가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재미없고 너무 피곤해요. 뭘 해 보고 싶지도 않아요. 만사가 귀찮아서 집에 오면 씻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봅니다. 그냥 생각 없이 지내는 것 같기도 해요. 뭘 볼 때 남들은 뭔가 느끼고 생각한다면, 저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일기를 써 보려고도 했는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무렇지 않게 하루가 지나가고, 내일이 기대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년에는 뭘 하고 싶은지 적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우울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도 행복이란 걸 느끼면서 살고 싶은데 정신적인 문제일까요? 아니면 그냥 제가 너무 게으르기 때문일까요? 제가 뭐부터 해 보면 좋을까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께서 올려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우울과 불안 증상으로 그동안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시면서 꾸준히 약을 복용해 오셨네요. 그리고 현재는 취업도 하고, 우울 증세도 상당히 호전된 상태이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런데 우울과 불안 증상으로 인해 약을 꾸준히 복용 중이셨다면, 임의로 단약하시는 것은 추천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담당 주치의와의 상의 없이 임의로 단약할 경우에는 우울증이 재발할 위험이 상당히 높아질 수 있으니 약 복용과 관련해서는 주치의 분과 면밀히 상담하신 후 결정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물론, 언제까지나 정신과 약을 복용할 수는 없겠지만, 그 시기는 환자가 임의로 정해서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 분과 충분히 논의 후 적절한 시기를 정해야 우울증 재발 확률이 낮아진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부정적인 사고나 우울, 불안 같은 ‘마이너스 감정’은 많이 옅어졌는데, 행복감이나 기쁨을 느끼는 생활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사실 행복이나 기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의 상태에서는 쉽게 느끼기 힘든 감정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감정이라는 것도 우리가 무언가를 보거나 체험하는 것처럼 새롭거나 좋아하는 활동 혹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교류와 같이 행동하고 자극을 받는 경험을 통해 뇌의 신경회로와 화학물질, 동하는 마음 등이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사연자님께서 지금처럼 만사가 귀찮아서 무언가를 시도해 보고 싶지도 않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피곤해서 자꾸만 피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진다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도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물론 지금은 아직 마음만큼 몸이 따라 주지 않는 상태이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장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이 사연자님의 욕구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동안 지쳤던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채우면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실 것을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충분히 충전의 시간을 가지신 후에는, 사연자님께서 행복해지기 위해 또는 기쁨을 느끼는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어디로 방향을 설정하고, 어떻게 움직일지 사연자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는 현재 ‘플러스 감정’, 즉 행복이나 즐거움,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끼면서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이는 비단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대부분 삶에서 바라는 상태와 감정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 의미로 행복이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말합니다. 즉,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상생활에 대한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고 또 기쁨을 느끼는 순간을 자주 경험할 것을 조건으로 합니다. 여기서 ‘일상생활에 대한 충분한 만족감’이나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사람마다 무척이나 다를 것입니다. 일상생활에 대한 만족의 기준은 물론이고, 사람마다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지점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죠. 어떤 사람에게는 스트레스 상황이 누군가에는 기쁨을 느끼는 포인트가 되고,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사연자님의 기쁨과 행복 단추도 누군가 찾아 줄 수 있는 영역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에 행복에 대한 정의, 만족감을 느낄 만한 일상생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에 대한 사연자님만의 기준과 정의를 구축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약 그 단추를 아직 찾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사연자님께서 찾아 나가시면 될 것입니다. 사연자님께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이 너무 추상적으로 다가오신다면, 우리의 뇌가 행복감을 느낄 때 뇌 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간략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우리가 행복감이나 기쁨을 느끼는 것은 사실, 우리 뇌에서 여러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면서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과 연계됩니다. 도파민은 보상 및 기쁨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입니다. 이 도파민은 우리가 예상했던 일보다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경험했을 때 더 많이 증가됩니다. 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보다는 때로 새로운 시도나 경험을 통해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게 되는 이유도 이러한 화학물질이 더 많이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엔도르핀도 기쁨을 일으킵니다. 엔도르핀이 분비되면, 경이롭고 강렬하고도 따뜻한 느낌이 우리를 휘감습니다. 이처럼 도파민과 엔도르핀은 즐거움이나 기쁨을 느끼는 감정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지만, 우리가 삶에서 좀 더 지속 가능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순간적인 기쁨이나 행복 그 이상의 것들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행복은 충만감, 만족, 사랑, 관계, 동기부여, 웰빙 등과 더 관련이 깊습니다. 이러한 것과 관련된 화학물질이 바로 옥시토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옥시토신은 바로 ‘사랑 호르몬’이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친밀한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행위가 바로 이 호르몬과 관계가 있는 것이죠. 인간은 혼자 있을 때보다 집단 속에 있을 때 웃을 확률이 30배나 더 크다고 합니다. 웃는다는 것은, 즐거움이나 기쁨과 관련된 행위입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쁨이나 행복감을 느낄 확률은 그만큼 낮아진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에 관한 질문을 주셨는데, 뇌 관련 화학물질에 대한 이야기로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한다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요지는, 인간이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이렇듯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과, 이러한 화학물질이 잘 분비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무언가 행복감이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활동과 사회적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시작하기가 힘드시다면 과거에 사연자님께 기쁨과 행복감을 주던 일들이 무엇인지 찬찬히 떠올려 보세요. 분명 잊고 지냈던, 사연자님만의 행복 버튼이 기억나실 겁니다. 또 직업적인 면 이외에 일상생활에서 만족감을 높여 줄 만한 활동과 취미 생활도 하나씩 시도해 보신다면 좋겠습니다. 취미 생활은 말 그대로 취미로 하는 것이기에, 사연자님께 즐거움을 주는 것이면 그만입니다. 한 가지 취미 생활을 꾸준히 해야 한다거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말이죠. 또 소중한 분들과 소소하지만 유쾌한 대화나 시시콜콜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눠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진부한 이야기로 들리시겠지만 그래도 꼭 해 드리고 싶은 말씀은,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연자님의 안에 숨어 있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으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인수 원장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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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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