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남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COVID-19로 사람들의 일상이 바뀐 지 3년째. 진료실에서도 COVID-19로 인한 어려움에 대한 상담이 많습니다. 특히 아동, 청소년 상담에서는 스마트폰 중독, 게임 중독을 주 증상으로 오는 아이들이 많아졌는데요, 온라인 수업으로 태블릿이나 노트북을 제한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부모님이 게임을 제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조절 능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ADHD 아동의 경우 손만 뻗으면 재미있는 게임을 더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게임을 적절하게 한다는 것은 더 어려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게임 중독에 대하여 진료를 할 때는 부모님 의견, 아이의 의견을 모두 들어 보는데요, 우선 과연 ‘어느 정도로 게임을 하면 문제가 되는 것인가?’가 양쪽의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시간이 기준이 될 수도 있고 둘째, 할 일을 다 하지 않고 게임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으며 셋째, 게임 때문에 현실에 과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용돈을 모두 게임에만 쓴다거나, 게임에서 지면 화를 주체하지 못한다거나)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아이도 스스로 게임을 너무 과하게 한다고 생각하고 조절을 하기 위해서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상담이 잘 진행됩니다. 그러나 아이의 입장에서는 현재 게임으로 인해 문제가 되는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면, 부모님에게 이끌려 ‘게임 중독’이라고 매도당하고 진료실까지 끌려온 상황이 몹시 억울할 것입니다. 아이가‘나는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생각하는데 집중력 개선과 충동 조절을 위한 약물치료를 하거나, 게임 시간을 차츰 줄이기 위한 행동치료를 하자고 하는 것은 당연히 효과가 없겠지요. 치료는 목표가 분명하고, 대상자가 그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의도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우선 부모와 자녀 간의 ‘공동 목표’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게임을 줄이자’는 아이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지만 ‘게임 때문에 가족끼리 싸우고 싶지 않다.’는 것은 온 가족이 함께 노력해야 할 공동의 목표가 되지요. 기왕이면 ‘싸우지 말자.’보다는 ‘가족끼리 사이좋게 지내기’와 같은 긍정적인 변화를 암시하는 목표가 좋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가족 모두가 변화할 수 있는 숙제를 정합니다. 자신이 변해야 할 것,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을 같이 이야기하면 좋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OO이 가족이 행복해지기 위한 가족 계획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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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족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 점 |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점 |
엄마 |
- OO(이)가 말을 할 때 화내지 않고 끝까지 들어 준다. |
- OO(이)가 10시에 잘 수 있도록 9시 30분에는 게임을 끄고 씻었으면 좋겠다. - 아빠가 주말에 OO이와 시간을 보내 주면 좋겠다. |
아빠 |
- OO(이)가 평일에 숙제를 다 하고 게임을 하면 주말에 약속한 놀이를 함께해 준다. |
- OO(이)가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 엄마는 OO(이)가 숙제를 안 했을 때 화내지 않고 한 번 더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 |
OO |
- 저녁 먹기 전에는 반드시 게임을 끄고 다 같이 밥을 먹고, 엄마와 함께 나가서 운동한다. |
- 엄마: 내가 숙제 다 하면 용돈으로 기프트 카드를 사게 허락해 주면 좋겠다. - 아빠: 혼낼 때 큰소리 치지 말고 차분하게 이야기하면 좋겠다. |
‘게임을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고, 아이에게 ‘게임을 금지당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신뢰와 애정을 받는 멋진 사람이 되는 것’으로 목표를 잡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게임’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하기 위해서 다 같이 약속을 정하고 지키기’를 해야 아이도 자신이 문제가 있어서 비난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 협동 과제를 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가족끼리 미션을 수행하다 보면 아이는 약속을 다 지켰는데 부모님이 만족하지 못하셔서 제대로 칭찬해 주지 않았거나, 부모님의 사정상 아이와 약속한 보상을 해 주지 못한 경우도 생깁니다. 부모님께서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반성하고, 아이가 게임 조절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과, 부분적으로 노력한 부분도 인정하고 칭찬해 주실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거지요.
이렇게 가족 간에 잘 지내기 위한 목표를 매번 설정하고, 서로 약속을 잘 지켰는지 의논하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아이의 조절 능력을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부모님이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아이에게 모델링이 될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전임의,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주임과장
수도권 게임과몰입힐링센터 센터장, 서울시교육청 Wee센터 자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