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TV에서 아침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에는 건강 비법들이 종종 소개된다. 연예인들의 자기 관리 방법, 동안 비결, 당뇨와 고혈압을 낫게 하는 식사들. 적당한 운동과 건강한 식사처럼 도움이 되는 내용도 있지만, ‘적당히 좋아 보이는’ 검증되지 않은 내용도 못지않게 많다. 그중 채소 달인 물, 버섯 달인 물은 단골 소재다.

그런데 이처럼 검증되지 않은 건강 관리 비결은 효과가 없을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내과, 특히 만성 콩팥 질환을 보는 신장내과 동기들이 모임에서 푸념을 하곤 했었다. 콩팥 질환 환자들 가운데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건강 비결이나 민간요법을 믿고 녹색 채소 달인 물이나 버섯 달인 물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손상된 콩팥은 여기에 들어 있는 전해질을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건강 상태에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항암치료를 받던 중에 검증되지 않은 건강 보조 식품을 먹고 간 부전이 발생한 환자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그런데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행동으로 인해 건강과 치료 과정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내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과에 ‘버섯 달인 물’이 있다면, 정신과에는  ‘굿’과 ‘기도원’이 있다.

C씨는 29세의 여성으로, 조현병 환자였다. 3년 전 처음으로 환청, 망상 등의 증상이 발현했다. 피해망상으로 인하여 국정원에서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신고 전화를 경찰에 수십 통을 했고, 감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상 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고, 그 뒤로는 약물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지내고 있었다. 선배가 진료하던 환자였고 잘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내가 당직일 때 응급실에 내원한 것이었다.

선배가 남긴 가장 최근의 외래 기록은 5개월 전의 것이었다. 영어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등의 평범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C씨는 두 달 뒤의 외래 진료일에 내원하지 않았다. 예정된 진료일로부터 3개월이 더 지나서 응급실에 내원한 C씨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자신이 감시를 당한다, 바깥에 요원들이 있다며 횡설수설했다. 어느 모로 생각해도 가장 최근의 외래 기록에 적힌 상태와는 많이 달랐다. 나는 안정제 투여를 지시하고, 함께 내원한 어머니에게 병력을 청취했다.

 

C 씨는 지난 외래 이후 약을 먹지 않았고, 어머니와 함께 기도원에 들어갔다고 했다. 증상이 안정되었으니 이제 조현병을 ‘완치’ 하기 위한 어머니의 처방이었다. 중간중간 짬을 내어 조현병을 몸에서 몰아내기 위한 굿도 했다(기도원과 굿이 상호 보완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증상이 재발하면서 환자가 불안해하기 시작했지만, 어머니는 이것은 의지의 문제이고 정신과 약을 계속 먹을 수는 없다며 신앙과 주술의 힘에 의지했다. 밤샘 기도를 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수면 사이클이 망가졌다. 피해망상과 이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 심해졌고 기도원에 있는 사람들이 감시 요원이라는 생각으로 번지게 되었다. 기물을 부수고,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던져 기도원에 더 있기 어려워졌을 때가 되어서야 C씨의 어머니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다시 입원치료를 받고 C씨의 증상은 호전되었지만, 입원 기간은 이전보다 훨씬 길었고, 증상 조절은 더 어려웠다. C씨는 재발 이전과 비교해 뚜렷하게 무기력해졌다.

 

많은 수의 정신과 질환은 재발할 때마다 치료가 더 어려워진다. 어찌저찌 치료를 통해 증상을 조절하더라도 기능 수준이 재발 전과 비교해 저하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증상이 모두 사라졌는데도 재발 방지 목적으로 최소한의 약물치료를 지속할 것을 권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약물을 계속해서 복용하는 것은 당연히 불편한 일이고 완치 판정을 받고 싶어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심리적 압박이기도 하다. 진료실에서 정신과 의사는 약을 끊고 싶다는 이야기를 매일같이 듣는다.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 또는 그 보호자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기도원에 가 보아야겠다거나, 굿을 하면 병이 낫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더해지면 눈앞이 깜깜하다. 대개는 이미 마음속에 결심이 선 상태이기 때문에 의학적 설명이나 만류에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기도도 굿도 좋은 생각이지만, 약물치료와 함께 진행할 때 더 효과적이라는 타협안이 받아들여지면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다.

증상이 심한 상태에서 내원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다. 모두가 치료에 대한 이견이 없고, 증상 감소라는 가시적인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항상, 급성의 증상이 조절되고 난 뒤부터 시작된다.

 

 

김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으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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