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장승용 정신과 전문의]

 

진료실에서 환자분들을 만나다 보면 느끼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자주 느끼는 것은 본인의 걱정/고민이 해결되거나 꿈이 이루어진다면 정신적인 어려움들이 저절로 해소될 것이라고 다소 오해를 하는 경우가 꽤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소울 영상 캡처
영화 소울 영상 캡처

2021년 개봉한 디즈니 픽사의 ‘소울’은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재즈를 가르치고 있는 조 가드너 의 이야기다. 조는 유명 재즈클럽에서 멋드러지게 연주하는 피아노 연주자가 되는게 꿈이지만, 번듯한 아들의 직업을 원하는 어머니와 돈을 벌어야하는 현실 앞에 적응하며 지내고 있었다. 마침내 조에게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 ‘도로시아 윌리엄스’ 와 멋진 재즈클럽에서  연주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만 불의의 사고로 일종의 영혼세계인 ‘죽은 후에 영혼이 가는 세계(The Great Beyond)’ 로 떨어지게 된다. 가까스로 사후세계를 탈출하는 듯 했지만 조는 ‘태어나기 전 영혼이 준비하는 세계(The Great Before)’로 떨어져서 지구로 태어나기 싫어하는 골칫거리 영혼 22를 만나게 된다.

 

영화 소울 영상 캡처
영화 소울 영상 캡처

조는 영혼 22와 이후에 갖가지 일을 겪으면서 결국 이승으로 돌아와 본인이 간절하게 원하던 유명 재즈클럽에서의 연주기회를 얻었고 만족스러운 연주를 해내고야 말았다. 뜨거운 박수 갈채 이후에 재즈클럽에서 나왔을 때 조는 알 수 없는 공허감을 느낀다.

 

영화에서 말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꿈을 이루는 것 만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십여년 전에는 서점의 베스트셀러 섹션에서 성취를 강하게 채찍질하는 책들이 즐비하였다. 이에 필자도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똑똑해지기 위해 나를 더 채찍질하고 정진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꽤나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비단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젊은이들과 중년, 노년의 사람들이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이에 실패하면 자책을 하기까지도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말하듯이 꿈을 이루고 성취를 해내는 것만이 행복의 필요충분 조건은 아니다. 영화 속의 조처럼 꿈을 이루고나서 찾아오는 허무감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오히려 더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성취감이라는 것은 실제로 매우 뿌듯한 감정이고, 인류는 꾸준히 성취를 이루어나가며 발전했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목표에만 매몰된 채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다면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기는 힘든 일일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지구에서의 삶을 맛보는 영혼 22는 피자 한조각의 맛, 따뜻하게 불어오는 미풍, 헬리콥터 날개처럼 돌아가며 떨어지는 열매의 씨앗을 느끼게 된다. 이는 무엇을 이룰 때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구에서 지내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작은 경험들이었다. 오히려 The great before 에서 유명한 위인들의 세미나는 영혼 22의 마음을 동하지 못했고 페퍼로니 한조각의 풍미가 그의 마음을 동하게 했던 것이다. 

 

연주를 마치고 나온 조에게 도로시아는 이런 이야기를 건넨다.
어느 날 젊은 물고기가 나이 많은 물고기에게 물었지. ‘바다라는 곳을 찾는데요, 바다는 어떤 곳인가요?’ 그러자 나이 많은 물고기가 대답했지. ‘뭐? 네가 있는 곳이 바로 바다란다.’ 어린 물고기는 말했어. ‘뭐라구요? 여긴 그냥 물 속일뿐이잖아요.’ 
어쩌면 목표를 성취하지 못해도 이미 우리는 바다 속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느끼고 즐길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조금 더 풍성한 향기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