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움병원, 김민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앗 콩 벌레다!’ 

아이와 함께 학교로 향하는 길의 아파트 화단에는 정말 다양한 벌레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목적지만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 다닐 때는 전혀 알 수 없던 풍경들이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때 비로소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신기해하는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뒤로 두고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한 저는 작은 나뭇가지로 콩 벌레를 살짝 건드려봅니다. 데구르르 말리며 정말 콩처럼 변합니다. 

‘ 엄마, 왜 벌레를 괴롭혀? ’

‘ 괴롭힌 게 아니라 콩처럼 변하는 거 보여주려고.....’

아이의 말에 저는 갑자기 머쓱해졌죠. 

무척추동물인 벌레들은 공격을 받으면 얼어붙는 반응을 보이는데요, 이 반응은 사람의 몸에도 숨어 있습니다. 스스로를 몰아붙이면서 열심히 일에 몰두하다보면 어느 순간 어깨 목 등이 뻐근하고 늘 피로에 젖어 잠들게 되는데요, 우리의 근육들이 스트레스 반응에 맞춰서 수축하고 팽팽해진 결과입니다. 회의 장소에서 힘과 권위를 가진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질책을 시작하면 일순간 정적이 감돌고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얼어붙게 됩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 화가 나서 이성을 잃었을 때 그 앞에서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내봐야 공격의 대상만 될 뿐이라는 씁쓸한 경험을 누구나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힘들 때 몸의 어디가 불편한가요? 당신의 몸은 뭐라고 말하고 있나요?’

제가 상담 시 내담자들에게 자주 묻는 질문입니다. 대부분 돌아오는 답변은 ‘글쎄 잘 모르겠어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입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만날 때 그로 인해 내 몸이 반응하고 내가 행동하게 되는 것은 정말 부지불식간에 일어나지만 몸의 반응을 평소에 생각해보기는 누구라도 쉽지 않습니다. 상담이 좀 진행이 되어 여유를 가지고 스스로의 몸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가장 많이 표현하는 것은 장의 불편함입니다. 

‘장이 꼬인 거 같다’ ‘배가 살살 아프다’ ‘명치가 꽉 막힌 거 같다’ 등을 많이 호소하시는데요, 저 역시도 장이 예민한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라, 의과대학 재학 시절 시험을 보기 직전에는 늘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는데요, 저 같은 사람이 너무 많았던 탓에 화장실은 늘 만원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나도 그런데...’하고 흠칫 놀라는 분들이 계시다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의 굉장히 흔한 반응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유명한 뇌 과학자인 조지프 르두 에 의하면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몸에서 분비되는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은 그 크기가 뇌혈관 장벽을 통과하기에는 너무 크기 때문에 뇌로 직접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즉 우리의 장과 근육 등 몸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영향을 직접 받게 되고 내장의 미주신경을 통해서 뇌로 전달이 된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고속도로를 과속을 달리다 보면 과속방지 카메라의 반짝이는 섬광을 통해 혹은 내비게이션의 경고를 통해 순간적으로 아 속도를 위반했구나!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속도를 내다보면 한참 지난 후에야 속도위반 범칙금을 우편으로 받아보게 되는 겁니다. 반짝이는 섬광이 우리의 내장의 반응이라면 뒤늦게 도착하는 범칙금이 뇌의 반응입니다. 

시시각각 변화는 환경에서 즉시 대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몸의 반응이 더 빠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너무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우리 몸의 반응을 살펴보기는커녕 몸에서 뇌로 보는 신호조차도 무시하는 경우가 너무나 흔합니다. 오히려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살펴보기 이전에 몸이 보내는 알람 반응을 무조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면서 해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배출하는 화나 분노는 거의 대부분 우리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직격탄이 됩니다. 우리가 몸의 반응을 가만히 살펴볼 때야 비로소 과속 경고 알람을 들을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이럴 땐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잔뜩 얼어붙은 몸을 이완해야 할 때입니다. 천천히 길게 호흡을 내쉬고 따뜻한 물에 몸을 누여 긴장된 몸을 ‘푹’ 녹이면서 말이죠.

 

브런치 @dr-rucoll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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