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움병원, 김민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이가 학교에서 심은 토마토 화분을 가져왔습니다. 볼품없이 초라한 작은 화분에 가냘픈 작은 잎사귀 하나만 얼굴을 삐죽 내밀고 있습니다. ‘저기서 토마토가 자랄까?’ 하는 생각에 저는 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가다 보니 아이는 작은 시럽 통을 전용 물통 삼아 정말 부지런히도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며 보살피고 있는 겁니다.

 

사진_freepik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토마토 화분을 보니 키가 훌쩍 자라서 작은 토마토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해 봄에는 여러 개의 토마토를 수확해서 시식까지 맛보는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내담자들에게 선물 받은 화분 중 난이도가 높은 난이나 꽃은 말할 것도 없고 눈앞에 늘 놓아둔 선인장까지 비쩍 말라 죽여 본 전력이 있는 저로서는 이제는 사람이든 식물이든 부지런한 정성을 쏟아야하고 사랑을 쏟은 만큼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일종의 피그말리온 효과인데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여인상을 조각해서 사람처럼 사랑하게 됩니다. 그 마음에 감동한 아프로디테가 여인상에 생명을 불어넣어줬다는 내용입니다. 어떤 일을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하버드대 교수 로버트 로젠탈 은 이와 비슷한 실험을 실제로 진행했습니다. 한 초등학교에서 무작위로 20%의 학생들을 뽑아 그 명단을 선생님에게 주면서 IQ가 높은 학생들이라고 말한 거죠. 선생님은 명단에 있던 학생들이 더 좋은 성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했을 텐데요, 놀랍게도 8개월 후 명단에 오른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평균 점수가 높았다고 합니다.

선생님들의 기대가 무의식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되어 아이들 역시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절히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은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데요, 권위를 가지고 있거나 든든한 지지자인 부모나 선생님이 주는 무언의 메시지는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기대하고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믿어준다는 느낌은 그야말로 무언의 ‘느낌’으로 전달받게 됩니다. 그 순간에 사람은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면서 변화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를 가지게 되는 거죠.

 

사진_freepik

 

누군가의 마음이 전달되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정신과의사 대니얼 스턴 은 감정조율이라고 했는데요,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화음을 맞춰서 연주하듯이 우리 감정도 서로 연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두 사람의 뇌파도 비슷하게 일치가 된다고 하네요! 부모님 혹은 선생님, 나를 아껴주는 누군가로부터의 신뢰나 기대는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으로 연결이 되는 겁니다. 반대로 ‘네가 그러면 그렇지, 정말 할 수 있겠어?’ ‘ 이럴 줄 알았지 ’ 등의 무시하는 말이나 기대하지 않는 표정이나 태도는 사람을 위축되게 만들고 자신감을 잃게 합니다.

종종 중요한 사람으로부터 받은 무시와 비난은 우리 뇌에 강한 자국을 남기게 되는데요, 깊은 뿌리를 내린 낮은 자존감은 ‘나는 무능해, 항상 부족하지’라는 자기 비난과 ‘세상은 냉혹해, 내가 감당하기 힘들어’라는 부정적 세계관을 만들어냅니다. 종종 대인관계의 어려움이나 마음의 상처가 있는 분들과 면담을 하다 그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매우 오래 전의 부정적 기억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것을 다른 기억들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억이라고 해서 트라우마 치료로 유명한 프랜신 샤피로는 ‘시금석 기억’이라고 부리기도 했습니다.

 

토마토 잎사귀가 물이 모자랐을 때는 어제보다 기운이 없고 고개가 꺾인 것을, 잎사귀 위로 사람의 시선을 피해 정지했다 곧이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점보다도 작은 진딧물을, 정성이나 관심이라는 렌즈가 없다면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알아차린 후에는 어떻게 할까요? 그날에 꼭 필요한 만큼의 물을 충분히 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제대로 성장하게 충분히 도울 수 있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을 ‘간절한 바람’ 혹은 ‘기대’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피그말리온 효과를 설명하다 보면 이렇게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우리 아이에게 얼마나 ‘기대’가 큰 줄 아세요? 어릴 때는 명문대에 갈 거라고 기대하고 그렇게 똑똑했건만.... 지금은 정신과치료를 한다니 친척들에게도 말을 못하고 있어요. 지금도 툭툭 털고 일어서서 빨리 좋아지기를 기대하고 있어요!”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피그말리온 효과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도와주고 희망을 준다는 것이지, 당장 무리한 것을 기대하며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를 오해해서 그 사람의 욕구와 속도를 무시하고 과도한 기대를 강요하는 일은 없어야겠죠. 토마토 나무에게 열매를 간절히 바란다고 커다란 수박이 열리지 않는 것처럼요!

 

출처 : <현대인의 심리유희> 바이북스, 김민경 지음 202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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