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움병원, 김민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막연한 불안감으로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 불안하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니까, 불안하다는 것은 소망이 있다는 것이고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그런데 문제는 항상 ‘과도함’에 있습니다.

“ 선생님 제 영원한 짝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러다가 영원히 혼자 살게 되는 건 아닌지... 너무 외로워질까 봐 걱정이에요”

충분히 할 수 있는 고민이죠. 내 인생의 반려자를 찾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런데 이 사람이 영원히 나만을 사랑해줄지, 나는 또 이 사람에게 싫증이 나지 않을지 걱정이 될 수 있습니다. 긴 상담 끝에 이 내담자는 결국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로 말이죠. 그런데 다시 또 다른 걱정이 꼬리를 뭅니다.    

“ 제 배우자가 갑자기 큰 병에 걸리면 어쩌지요? 그럼 저는 또 혼자 남게 될 텐데... 제가 갑자기 아프게 될 것도 걱정이에요.”

머나먼 미래의 걱정거리를 가지고 와서 하염없이 불안해하는 사람을 간신히 현실로 데려와 착지를 시키면 또 다른 걱정거리가 스물스물 나오기 시작합니다. 알라딘이 램프에서 ‘지니’를 부르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증상을 ‘램프 증후군’이라고 부르고 좀 어려운 의학용어로는 ‘범 불안 장애라’라고도 합니다. 습관적으로 램프에서 ‘지니’를 불러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안이 가라앉고 지금의 상태에 겨우 안정이 될라치면 지금이 램프를 꺼낼 시간이야 하고 지니를 부르는 주문을 외웁니다. 지니는 끊임없이 새로운 걱정거리를 하나씩 가지고 나타나는 것이죠.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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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시험에 통과할 수 있을까요?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도저히 집중이 안 돼요!’ 힘들게 시험에 통과해서 원하는 직장에 겨우 출근을 했는데 또 다른 걱정이 엄습합니다 ‘ 여기서 잘 버틸 수 있을까요? 제 실력이 모자란 것을 주위에서 알고 도태되면 어쩌죠?’           

‘어머니가 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버지도 갑자기 제 곁을 떠날까봐 너무 걱정이 돼요. 저도 불치병 선고를 받게 되는 건 아닐까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어 다 감염되는 거 아닐까요? 이러다 아이들 공부도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너무 걱정이 돼요’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심리에는 내가 그 주제에 대해 많이 생각할수록 더 잘 대비할 수 있고 대처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미래를 잘 대비하기 위해서는 계속 계속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심리학자인 어니 젤린스키는 우리가 걱정하는 일 중 실제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은 4%이고 그 외는 사소하거나 혹은 어차피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것을 다 준비한다고 해도 우리의 예상대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필자가 대학병원 전공의 4년 차였을 때입니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면 어딘가 취직을 해야 할 텐데, 선배들의 경우를 보니 새로운 병원에서 입을 가운이 바로 확보되지 않아 전공의 때 사용하던 가운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보였습니다.  새로운 직장에서 깨끗한 가운을 미리 준비해야겠어라고 마음먹은 후 저는 해마다 제공되는 새 가운 하나를 사용하지 않고 휴게실 한켠에 잘 보관해두었습니다. 준비를 완벽히 했다는 생각에 내심 흐뭇했었죠. 그런데 전문의 시험공부를 하느라 몇 주간 자리를 비우다 병원에 복귀를 해서 보니, 보관해두었던 제 새 가운을 임시로 채용된 연구직 선생님을 위해 비서분이 제 이름표를 떼어 내고 친절하게 건네주었던 참이었습니다. 임시직이라 가운이 제공되지 않았던 선생님을 배려하기 위한 비서의 적절하고 융통성 있던 대처였고, 나와 친했던 비서 분은 아마도 내가 쓰지 않는 새 가운을 귀퉁이에 던져두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저는 세상일은 예측한 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라는 작은 깨달음과 함께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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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미래를 걱정하고 일어나지 않을 일에 미리 불안해하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현재 순간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미래를 계획할 수 있나요?’ 이런 질문에 팃낫한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미래를 위한 최고의 계획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현재 순간을 등질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현재 순간으로 가져올 때 이루어진다’

즉, 알 수 없는 막연한 미래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현재를 살아가되 미래를 초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현재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노력한다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미래를 현실로 초대했을 때야 비로소 우리가 현재에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정말 미미하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 <현대인의 심리유희> 바이북스, 김민경 지음 202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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