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사당 숲 정신과, 최강록 전문의] 

 

사연)

굉장히 비관적이고 나약한 중 2 여자인데, 정말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저를 화나게 하면 분노가 조절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평소에 분노에 차 있거나 짜증을 내는 성격도 아닙니다. 제 성격은 자주 불안하고 우울한 편이며, 평소에는 오히려 무감정 상태에 가까운데, 화가 나면 이성을 잃게 됩니다. 음악 시간에 책을 던져서(그때 전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혼난 적이 있었고, 물건을 던지거나 욕을 자주 하게 됩니다. 반사회적인 생각도 자주 들고, 잠도 잘 안 옵니다. 요즘 욕도 늘었고, 제가 위험하고 반사회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지만 고칠 수가 없습니다. 이걸 부모님께 얘기했더니 "분노조절장애는 사실 자기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는 조절이 잘 된다"라는 거짓 통념으로 막아 버리시더라고요. 언젠가 정신과에 가 봐도 되겠냐고 했더니 제 성질이 괴팍하고 성격적 발달이 느린 거라고 확신해 버리시던데, 문제는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런다는 겁니다. 게다가 제 지능적 발달은 정상이고 이제 다른 것들은 적당히 구분이 되는데 대체 왜 분노조절만 안 된다는 거죠?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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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써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일관되게 ‘분노’에 대한 이야기를 사연에 적어주셨습니다. 자신이 분노조절장애인지, 왜 분노가 조절이 안 되는지 많이 궁금하신 것을 보면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도 크신 것 같습니다. 사연자님의 글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분노행동이 나오기 전에 사연자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분노를 터뜨리게 된 사건이 구체적으로 글에 나와있지 않아서,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자신의 분노행동이 타당한 수준인지, 조절이 안 될 정도로 과하게 드러난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분노를 본 타인의 반응도 중요하지만요.

구체적으로 화를 표출했을 때 사연자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때 어떤 생각이 스쳤고, 어떤 감정들이 느껴졌는지 먼저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당시의 사건과 생각, 감정들은 아주 순식간에 지나갔을 텐데, 만일 마지막에 느낀 감정이 혼란스럽거나 스스로 처리하기 매우 버겁게 되면 ‘분노행동’으로 분출될 수도 있습니다.

 

짜증이 차올라 분노행동이 되기도 하고 슬픔이 폭발하여 분노행동이 되기도 합니다. 즉, 우리는 단순히 화가 나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무척이나 좌절스러워서, 상대방에게 너무나 서운해서, 내 마음이 전달이 안 되는 것이 답답해서 등등 다양한 감정이 원인이 되어 액팅아웃(Acting Out), 즉,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분노행동이라는 결과만 초점을 두고, 스스로 반사회적인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지 마시고요. 분노 이전에 일어나는 자신의 마음을 차분하고 친절하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사연자님은 본인에 대해 자주 불안하고 우울하고 평소에는 무감정에 가깝다고 하셨는데요.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끼지만, 이에 대해서 표현하거나 해결할 기회가 드물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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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분노조절장애나 정신과 상담에 대해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부모님은 사연자님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공감하시거나 이해하려는 반응은 아니셨습니다. 부모님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사연자님이 더 큰 상처를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연자님이 가장 답답하고, 스스로에 대해 많이 혼란스럽고 불안하셨을 텐데요. 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만한 답을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고, 공감받지 못하는 상황들이 반복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나 부모님하고 소통할 때는 분노행동을 해야만 조금이나마 수용되는 지점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사연자님이 분노보다 약한 감정 표현을 했을 때 전혀 전달이 안 되거나, 무시되나, 왜곡되거나, 오해하거나 등 부적절한 반응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어떨까요?

점점 언어로 감정을 전달하기보다는 강력하게 눈에 띄는 분노행동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효과적이 되는 상황이 올 수 있겠지요. 그렇게 분노행동이 강화되어갔을지도 모릅니다. 보통 감정이해와 표현의 영역은 부모가 자녀에게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사연자님의 부모님은 감정에 대한 이해도가 낮습니다. 그리고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나 잘못된 정보를 믿고 있으시고요.

 

현재 사연자님이 중학교 2학년이고, 보통 이 시기에 자신에 대해 혼란스러운 상태에 놓인 경우 많습니다. 새로운 경험은 쌓이고 감정은 많아지고, 자아도 형성되는 시기인데요. 이때 생각의 흐름이나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설명하는 경험을 충분히 못하면. 표현을 포기하고 내부로 침잠하거나, 극단적인 표현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정 표현의 적절한 지점을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사연자님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채널을 만들어야 합니다. 주변으로부터 꼭 도움을 받으셨으면 하는데요. 당장 부모님은 소통이 어려운 분들이기 때문에, 혼자서 설득하시기 어려우셨을 겁니다. 이제는 혼자 부딪히지 마시고요. 전문가를 통해서 부모에게 개입하는 것이 제일 효과적입니다. 전문가가 전달해야 그나마 부모에게 현재 자녀의 어려움이나 심각도가 전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다니는 학교에 상담실이 있을 테니 용기 내어 심리상담을 꾸준히 받아보면 좋겠습니다. 전문가 선생님을 먼저 만나보고, 만일 정신과적 진료도 필요하다면 연계도 하시고, 사연자님의 치료를 위해 부모님도 설득해주실 겁니다. 동시에 사연자님이 내가 일상에서 어떤 마음으로 지내는지 차근차근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꾸준하게 일기 쓰기도 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이렇게 마음우체국에 마음을 표현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사연글을 보면 어린 나이에도 자기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다루실 역량이 있습니다. 앞으로 사연자님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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