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김인수 전문의] 

 

벌레를 보면 어떤 느낌이 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징그럽다, 더럽다, 역겹다, 무섭다 등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곤충도 있지만,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 곤충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좋지 않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기들을 보면 벌레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기도 한다. 실제로 사람은 4세경이 되어야 불, 천둥번개와 같은 자연현상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곤충, 뱀에 대한 공포를 보이기 시작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벌레에 대한 혐오는 자라면서 생기는 걸까?

인간은 왜 벌레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1. 진화심리학적 이유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리를 진화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인간은 수만 년에 걸친 진화를 거쳐 지금의 외형적 형태뿐만 아니라, 특정한 심리를 가지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벌레에 대한 혐오 역시 진화적 관점에서 설명해볼 수 있다. 즉, 애초에 벌레에 대한 경계심, 혐오감, 불안을 갖고 있었던 조상들만이 살아남아 후손을 남길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곤충 중에는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는 것들도 있고, 바퀴벌레의 경우는 인분을 먹고 살기 때문에 균을 전염시키거나, 피부염,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벌레에 대한 혐오가 있었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생존할 확률이 더 높았고, 시간이 갈수록 그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만 지구 상에 남아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는 곤충들에 대해서도 징그럽다고 느낀다. 이렇게 벌레 전반에 대해 우리가 혐오감을 느끼는 것은, 차라리 벌레에 대해 과장된 불안, 혐오가 있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곤충학자 Jeffrey Lockwood 박사는 설명한다. “인간은 왜 곤충을 두려워하고, 혐오하고 사랑하는가”(The infested mind: Why humans fear, loathe, and love insects)라는 제목의 책을 쓴 Lockwood 박사는 인간이 해로운 벌레를 해롭지 않은 벌레로 착각하고 안심하는 것보다, 해롭지 않은 벌레를 해로운 벌레로 착각하고 그것을 피하는 것이 더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후자의 경향성을 띠게 된 것이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벌레에 대해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곤충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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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학습된 혐오의 관점

인간이 성장하면서 하는 경험들이 벌레에 대한 혐오감을 형성하게끔 했다는 입장이다. 혐오감은 세 가지 종류의 경험을 통해 학습이 되는데, 첫 번째로는 직접 경험(Direct experience: 벌레가 바지 안으로 기어들어와 놀란 경험), 두 번째로는 모델링(Modeling: 엄마가 벌레를 보고 소리 지르는 것을 봄), 세 번째로는 설명(Instruction: 아빠가 벌레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를 함)이 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각각의 경험들을 통해 혐오감을 학습하게 되고, 벌레가 실제로 우리에게 끼칠 수 있는 해악과 상관없이 혐오감은 지속적으로 우리 안에 남아있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특히 미디어의 역할도 상당히 큰데 “Fear Factor(하기 첫 번째 이미지)”와 같이 곤충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자극적인 티비 프로그램이나, 세스코 같은 방역회사들이 하는 광고들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벌레에 대한 혐오감을 학습하기도 한다. 

진화심리학적 이유에 더하여 후천적으로 우리는 학습을 통해 벌레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3. 단순한 벌레 혐오와 공포는 다르다

정신의학에는 특정 공포증(specific phobia)이라는 진단이 있는데, 이는 말 그대로 특수한 상황 또는 대상에 대해 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이러한 상황이나 대상을 피하게 되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특수한 대상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1) 동물형: 동물이나 곤충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대개 아동기에 시작한다.

2) 자연환경형: 높은 곳, 물, 폭풍 등 의 자연환경을 두려워한다.

3) 혈액-주사-손상형: 피를 보거나 주사를 맞거나 기타 의학적 검사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4) 상황형: 대중교통수단(지하철, 버스 등), 터널, 다리, 엘리베이터, 비행기, 운전 등과 같은 특정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

이중 동물형에 속하는 대상으로는 뱀, 거미, 지네, 개 등 동물이나 곤충의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실제로 특정 공포증의 하위 진단 중에 곤충공포증(Entomophobia)이라는 질환도 존재한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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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공포증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대상이나 상황을 회피하거나 아주 극심한 공포, 불안을 지닌 채 참아내는 모습,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나 실제 위험보다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보이는 등의 모습 때문에 현저한 고통이나 장애가 있어야 한다.

때문에 곤충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순한 벌레 혐오를 뛰어넘어, 어떤 장소에 가든 늘 벌레가 있나 확인하고, 벌레가 보이면 크게 놀라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벌레를 회피하려는 특징들을 보인다. 이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벌레와 관련된 안 좋은 기억, 학습된 것이 있는 경우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곤충공포증은 벌레에 대한 단순한 혐오가 아니라 벌레에 대한 극도의 공포, 불안, 그리고 이로 인한 일상생활의 제약이 특징적이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벌레에 대해 가지는 혐오감과는 구별하여 봐야 한다.

 

벌레에 대한 혐오는 진화, 학습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여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우리가 벌레를 싫어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그리고 벌레를 혐오하게끔 사회문화적으로 학습했기 때문에 벌레를 혐오하게 된 것이다.

진화적인 부분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으로 바꿀 수가 없겠지만, 후천적으로 학습된 인식에 대해서는 교정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벅스라이프”처럼 곤충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할 만한 영상을 찾아본다든지, 아니면 곤충공포증의 치료방식처럼 점진적으로 곤충과 친숙해지는 방법도 써볼 수 있겠다.

하지만 벌레에 대한 혐오는 꼭 교정해야 할 대상은 아니며, 우리가 왜 혐오를 느끼게 되는지 이해를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삶에는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이슈들이 많기 때문이다.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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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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