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찾아가는 여행 (10)

대담은 대한정신건강재단 정정엽 마음소통센터장과 한국적 정신치료의 2세대로 불교정신치료의 체계를 확립해 나가고 있는 전현수 박사 사이에 진행되었습니다. 

 

정정엽: 마음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거잖아요, 그런데 자책하는 걸 없앨 수 있는 건가요?

전현수: ‘후회’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볼게요. 제가 마지막으로 한 후회가 두 가지 있어요. 첫 번째는 동기회 때 일이에요. 고등학교 동기회가 게임식으로 진행됐는데, 사회자가 저를 불러서 앞에 나가 질문에 대답해야 했어요. 대답하고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후회가 되더라고요. 명색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데 좀 더 멋있게 대답할 걸 너무 평범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번째는 KBS에서 명상에 관한 인터뷰 요청이 온 적이 있어요. 세 가지 질문에 대답을 준비해 갔는데, 막상 가니까 준비한 것이 아닌 다른 질문을 하더라고요. 저와 전화 통화를 한 사람은 작가이고, 인터뷰어는 피디였던 거죠. 알고 있는 거니까 대답을 하긴 했는데 끝나고 나서 후회가 됐어요. 조금 다르게 대답했으면 좋았을 거라고요.

그런데 후회한 순간 깨달음이 왔어요. 저도 그렇고 사람들이 후회할 때 꼭 하는 게 있더라고요. 이미 하고 난 뒤에 이게 아니라 다른 걸 해야 했는데 같은 생각이요. 이 말은 즉, 선택의 기로에서 본인이 한 선택이 아니라 다른 것도 할 수 있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어요. 이게 후회의 본질이에요. 모든 사람이 똑같아요.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을 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순간이 있었던 거예요. 정신은 굉장히 빨리 움직이거든요. 그래서 잘 생각해보면, 본인이 용기 있게 선택해서 했기 때문에 그 선택에 따른 가능성을 알게 된 거죠. 그 선택에 따른 생각을 잘 만들고 다듬으면 다음에는 후회하지 않을 수 있어요. 생각의 흐름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대충 만들면 안 돼요. 저는 이걸 알고 난 뒤에 후회를 그쳤어요.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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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엽: 그러게요. 후회의 본질에 대해 생각은 못 해보았는데요. 선생님 그러면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요?

전현수: 후회라는 건 다른 측면에서 보면 후회하는 일이 일어나는 시점이 아니에요. 현재거나 조금 뒤의 시점이죠.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하잖아요. 하지만 왜 그랬는지 그때를 잘 생각해보면 필연적인 흐름으로 간 거예요. 모든 일이 다 그래요. 우리가 정확하게 못 보기 때문에 후회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후회를 멈출 수가 있었어요. 후회만 없어도 살아가는 게 되게 편해요. 그러니까 정확히 봐야 한다는 거예요. 제가 환자들과 하는 게 바로 이런 작업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정확하게 본다고 해도 해결이 쉽지는 않아요. 잘못짚으면 큰일 나잖아요. 그저 이론으로 보면 곤란해요. 정확하지 않은 것은 그저 정확하지 않다고 보는 게 제일 중요해요. 어떤 현상이 일어날 때는 그 현상이 일어날 만한 필연적인 이유가 있어요. 그걸 정확하게 보고 거기서 작업을 해야 한다는 거죠.

 

정정엽: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명상을 하고 훈련을 해야 한다는 건가요?

전현수: 네. 명상으로 훈련하고, 내 생각과 실제가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해요. 저는 85년부터 정확하게 보려고 계속 노력했어요.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하다 보면 분명 가까워져요.

 

정정엽: 선생님 말씀에 ‘관찰’이 많이 나오는데, 그 관찰이 정확하게 보기 위한 수단인 건가요?

전현수: 그렇죠.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야 해요. 우리가 술을 적당히 먹었을 때는 돌아다닐 때 어려움이 없잖아요. 그런데 술을 먹고 150km 속도로 고속도로를 타면 영향을 주겠죠. 생각도 같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건 지금까지 해온 대로 살기 때문에 별문제 없는 것 같아도 정말 정확하게 보려고 하면 생각이라는 게 엄청난 장애라는 걸 알게 돼요. 생각과 실제는 차이가 있어요.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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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엽: 그렇다면 관찰을 ‘거시적 관찰’과 ‘미시적 관찰’로 나누었을 때, ‘거시적 관찰’에서의 좌선(두 다리를 포개 가부좌를 하고, 사려분별을 끊어 정신을 집중하여 무념무상의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방법), 보행 명상이나 일상생활을 간단하게 설명해줄 수 있나요?

전현수: ‘거시적 관찰’이라는 건 우리의 통상적인 눈, 귀, 코, 혀 등 몸에 의식을 갖고 관찰하는 거예요. 그걸 명상이라고 하죠. 명상은 형식을 갖춰서 하는 것과 형식을 갖추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하는 게 있어요. 형식을 갖춘 경우는 앉아서 하는 좌선이고, 보행 명상은 천천히 걸으면서 걸을 때 일어나는 형상을 정확하게 보는 걸 말해요. 일상생활에서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게 일상생활 명상이고요. 이 세 가지를 잘하면 제일 이상적인 거예요. 세 가지 모두 각각의 장점이 있어요. 좌선은 고요한 상태에서 눈을 감고 호흡을 관찰해요. 코끝에서 숨이 들고 나는 것, 배가 들어오고 나오는 것을요. 관찰하게 되면 굉장히 고요하고 집중력이 강해집니다. 그래서 정신 현상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상태가 돼요. 좌선을 하다가 생각의 속성을 알게 된 거예요. 좌선은 고요한 마음을 만드는 것, 정신 현상처럼 미세한 현상을 관찰하는 데 큰 장점입니다. 그에 비해 보행 명상은 몸과 마음의 관계를 잘 알 수 있어요.

발은 의도가 있어야 들려요. 그게 좀 더 확대되면 의도가 원인이고 걷는 건 결과예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알 수 있지요. 일상생활 명상은 온종일 할 수 있어요. 좌선할 때만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앉아서 하는 명상은 한계가 있잖아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보면 좌선에서 일어난 것, 보행 명상에서 일어난 것 모두 사실 일어난 거예요. 우리가 안 좋은 마음이 들 때 일상생활에서 알아차리고 빨리 놓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욕망을 잘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거죠. 욕망도 정신작용은 다 똑같아요. 생각이든 의지든 모두 조건에 따라 한다는 점에서요. 욕망도 처음에 올라올 때는 약해요. 담배 피우고 싶은 욕망, 먹고 싶은 욕망, 성관계하고 싶은 욕망. 처음에 올라올 땐 약하니까 이걸 멈추면 힘들지 않게 해결할 수 있어요. 하지만 못 알아차리면 힘이 세져요. 그러니까 일상생활 명상은 우리를 잘 보호하는 방법이에요. 생활 속에서 지혜가 굳건히 자리 잡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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