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찾아가는 여행 (7)
대담은 대한정신건강재단 정정엽 마음소통센터장과 한국적 정신치료의 2세대로 불교정신치료의 체계를 확립해 나가고 있는 전현수 박사 사이에 진행되었습니다.
정정엽: 마음을 들여다보고 알아가는 과정에 관해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이를 위해 미얀마에서 어떤 수련을 했었나요?
전현수: 제가 2003년 처음 미얀마에 갔을 때는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했어요. 순간순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계속 관찰하는 거죠. 2013년에 다시 미얀마에 갔을 때는 삼매를 닦는 수행을 했어요. 처음에 한 건 요즘 소위 말하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 수행이에요. 이것만으로도 어지간한 걸 알게 되고 괴로움도 거의 없어졌어요. 저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를 할 수 있습니다. 팔리어로 되어 있는 ‘니까야(팔리어 대장경)’를 꼼꼼하게 보고, 붓다가 뭘 말했는지를 철저히 수행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를 경험했어요. 선정(禪定, 불교의 근본 수행 방법 가운데 하나로 생각을 쉬는 공부)에 드는 건 경험하지 못했지만요.
불교에서 가장 핵심은 인과의 법칙이에요. 인과의 법칙으로 볼 때 우리는 몸과 마음을 갖고 있음에도 어떻게 다루지는 못해요. 몸과 마음에 관련된 일은 인과의 법칙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자의적 힘으로는 눈곱만큼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예요. 게다가 인과는 고정되지 않고 연속됩니다. 무한이죠. 그래서 죽으면 윤회하는 겁니다. 법칙에 따라서요. 제가 어지간한 건 많이 경험해보았으나, 선정은 경험하지 못했고 윤회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지는 못했어요. 삼매를 닦고 과거 생활을 봤죠. 미래는 변화할 수 있지만, 미래의 생을 보기도 하고요. 다 본 후에야 현재의 괴로움이 있을 때 그 괴로움이 왜 오는가를 알 수 있어요. 현재에 일어나는 일을 잘 살펴보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존재했던 원인에 의한 것도 있고, 태어나기 이전의 원인으로 오는 것도 있어요. 이런 것들을 다 보게 되면서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 거죠.
정정엽: 선생님 혹시 선정에 들게 된다면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느낌이 있나요?
전현수: 당연하죠. 선정이란 마음이 대상에서 떨어지고, 하나의 경지에 정지하여 흐트러짐이 없는 상태를 말하니까요. 하지만 혼자서 하게 되면 이상한 길로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지도를 받아서 합니다. 예를 들어 에베레스트산을 오를 때 개인이 혼자 아무리 책을 본 후 간다고 해도 다른 길로 새기 쉽잖아요. 그래서 히말라야 고산 등반에서 안내인 역할을 하는 티베트계 고산족 ‘셰르파(Sherpa)’하고 함께 가는 거지요. 선정은 고도의 수행이기 때문에 먼저 해본 사람의 지도를 받아서 해야 됩니다. 안 그러면 등반과 마찬가지로 길을 잃기 쉬워요. 그래서 선정으로 들어가는 과정의 처음에는 아나빠나사띠 들숨 날숨에 집중해요. 하다가 생각이 나면 멈춰요. 그리고 다시 돌아가요. 어딘가 가렵다고 해도 돌아가요. 소리가 들려와도 멈추고요.
이 과정에 집중하다 보면 호흡의 네 단계 중에서도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하나도 놓치지 않는 미세한 호흡이 돼요. 숨을 쉬는데 호흡 중인지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태가 됩니다. 그때 거기에 집중하게 되면 숨이 빛으로 바뀌어요. 숨이 있을 땐 숨을 보고 숨이 없을 땐 빛을 봐요. 그렇게 계속 보다 보면 나중에는 거기서 당사자 개인을 당기는 상태가 돼요. 예를 들어 우리가 산 이름을 계속 외우면 어느새 떠올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기억하게 되잖아요? 그렇듯 그 상태, 즉 여기를 계속 집중하게 되면 저절로 집중되는 상태가 오는 거예요. 앉으면 딱 집중되는 상태요. 그 상태가 되고 나면 그 개인을 지도한 사람이 이러한 상태라는 걸 알려줘요. 선정에도 요소의 단계가 있어요. 초선에는 2요소, 이선에는 3요소가 있어요. 단계마다 요소가 있어서 그걸 체크하라고 해요. 선정은 초선, 이선, 삼선, 사선이거든요. 체크를 하면서 그다음에 초선을 내 것으로 만드는 훈련을 계속해요. ‘오자재(五自在)’ 훈련이라고 내가 앉아서 내가 정한 시간 내로 선정에 들어가겠다는 훈련입니다. 선정에 들어가서 한 시간 동안 있다가 오겠다는 훈련을 해요. 나와서는 선정 5요소를 체크하는 훈련을 하면 초선이 확실해져요. 그럴 때 정말 훈련이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이선으로 넘어가는 거지요.
초선에는 우리를 옭아매는 다섯 가지 덮개인 ‘오장애’가 있습니다. 그 다섯 가지 장애를 없애고 초선에 들어가는 거예요. 초선은 들어가는 초입이기 때문에 오계와 가까워요. 그래서 초선 중에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은 질이 떨어지는 거예요. 생각과 같이 속적인 고찰을 없애고 더 고요한 마음이 드는 순간 이선이 됩니다. 마음대로 쉽게 되지 않는 것은 마음을 방해하는 번뇌가 많기 때문이에요.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결심이 잘 안 되는 건 담배를 끊지 못하게 하는 적들, 즉 번뇌가 많은 거예요. 선정에서는 적이 하나도 없어요. 이선에 들어간 후에는 이선을 자신의 것으로 계속 만들어요. 그다음에는 삼선, 사선으로요. 사선은 마음이 오로지 대상만 인식하는 충만한 상태입니다. 저는 이 과정이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수행한 경험을 엮은 책이 미국에서도 출간되었어요. 저는 불교를 믿는 신자라서 하는 게 아니라 과학적으로 접근했습니다. 누구든지 마음을 집중하잖아요. 마음에서 만든 물질이 있는 것과 같이요. 빛도 마음에서 만든 물질이에요. 우리가 집중하게 되면 빛이 생겨요. 저는 과학적인 측면에서 수행했어요. 따라서 환자들을 대할 때는 불경을 하나도 쓰지 않고 명상 용어도 쓰지 않아요. 원리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보편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겁니다. 사람들은 불교 정신치료라는 이름에서 오해하는 게 많아요. ‘지혜 치료(Wisdom Therapy)’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뿌리가 불교에 있다는 데서 불교 정신치료라는 이름을 안 붙일 수가 없어요.
정정엽: 구체적인 방법과 단계를 알려주셨는데, ‘여기’에 집중을 한다고 했을 때 ‘여기’는 자가 호흡인가요 아니면 어떠한 공간의 점인가요?
전현수: 우리가 들숨 날숨에 집중할 때는 숨이에요. 하지만 숨을 쉴 때 숨에 따라 들어가면 안 돼요. 그러면 나중에 피곤해져요. 그렇다고 숨에서 멀어져서도 안 되지요. 코에서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하세요. 잘하거나 못 하는 걸 신경 쓰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요. 집중력이라는 건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거예요. 의식을 ‘여기’에 두는 게 집중력이 강해지는 겁니다. 힘들여 집중한다고 해서 집중력이 강해지는 게 아니라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