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코로나19 이후 ‘거리두기’라는 말이 익숙해졌습니다. 감염 전파를 막기 위해 접촉을 줄여야 되니 외롭고 쓸쓸해지기도 합니다. 만남을 줄이지만 목소리나 화상통화로 마음의 거리를 가깝게 두자는 캠페인도 있었습니다. 만나지 못해 마음이 멀어지는 것도 힘들지만 가깝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닐 것입니다. 장기간 재택근무를 하던 직장인에게 온라인 부서 회식비가 지원이 되어 화상회의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카메라로 집안을 자세히 보여주게 될 때 난처한 느낌이 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에 반가운 마음이 들다가도 ‘친구인데 어때?’라며 경계를 침범하는 이야기를 계속하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과 비슷한 현상입니다. 관계에 따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관계의 기본은 친구인지 적인지를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마주치면 신경이 쓰입니다. 이 사람이 호의적일지 아닐지 파악해야 합니다. 이런 뇌의 기능에서 동물들의 집단생활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무리를 이루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보호하고, 사냥도 했겠죠. 이 낯선 사람에 대한 센서는 사람마다 예민도가 다를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이 센서가 너무 예민하면 부모 외에 어른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힘들 수 있고, 너무 둔감하면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릴 때는 내게 호의적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것으로 간단했다면 초등학교와 같은 좀 더 복잡한 사회에서 관계는 더 복잡해집니다. 집이 같은 방향인지, 같은 학원에 다니는지에 따라 자연스럽게 친한 무리가 나뉘기도 합니다. 전학을 간다거나, 새 학원에 가서 친구를 사귀는 것은 조금 더 어렵습니다. 친절하게 맞아주는 친구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오랜 친구들끼리만 놀고 싶은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릴 때는 친구 사귀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지나간 어려움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단계마다 느꼈던 어려움의 크기가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교는 같은 반에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는데 대학생이 되어서는 동아리나 모임 등에서 적극적이지 않으면 친구가 생기지 않아 어려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대학생 때는 놀다 보니 친해졌는데, 졸업 후에는 친구와 놀러 갈 시간도 없고 업무 위주로 인간관계가 생기니 적응이 어렵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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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원래 어렵습니다. 성장하면서 맺게 되는 관계의 성격도 계속 달라지니까요. 처음 다른 문화와 언어의 외국인을 만날 때 어색하고 어려운 것처럼 말이죠. 성인기에 처음 이성과 연애관계가 될 때 어색하고 어려운 것과도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면,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고도 그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관계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정상입니다. 

가까워지는 것도 어렵지만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가야 하는 것을 서운하게 느끼는 부모님도 있습니다.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없고 부모만 찾거나, 일을 갖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자녀로 만드는 것보다는 사춘기의 독립을 응원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거리두기로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질 것입니다. 

비슷하게 적절한 거리두기가 가정 바깥의 인간관계에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함께 놀며 어울렸던 선배를 직장상사로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체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다른 신입사원과 똑같이 대하는 선배를 보면 서운한 느낌이 들기까지 합니다. 회사 밖에서 따로 만나서는 반가워하며 말투가 바뀝니다. 선배는 서로를 위해서 상황에 맞는 거리두기를 한 것입니다. 

 

처음 경험하는 인간관계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릴 때 익혔던 것을 조금 응용하고, 몇 가지 원칙을 적용하면 도움이 됩니다. 상대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따뜻하게 배려하면서 혹시 내가 의도치 않게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서로 웃기는 별명으로 부르던 친구를 거래처에서 우연히 마주쳤다고 상상해봅시다. 반가운 얼굴로 나를 기억하는지 물어보겠지만, 그때처럼 별명을 큰 목소리를 부르면 안 되겠지요. 

김연아가 시각장애인인 스티비 원더가 마이크 스위치를 찾지 못할 때 도와주었던 일화가 떠오릅니다. 먼저 도와줘도 될지 물어본 것이죠. 보이지 않는데 갑자기 스위치가 켜지면 당황할 수도 있으니까요. 인간관계의 거리도 이런 방식으로 노력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배려하는 마음으로 상대가 불편하지 않은 거리를 물어보고 서로 편안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잘 모르면 물어봐도 괜찮습니다. 

 

<본 칼럼은 부산은행 사외보 2021년 1월호에 ‘마음과 마음 사이 적정한 거리두기’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헬스케어센터장)
필자는 과기원을 졸업한 정신과 의사로서 학생들의 정신적 어려움을 공감하고, 진료와 더불어 인간을 직접 돕는 새로운 기술들을 정신의학에 적용하는 연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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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저서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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