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제의 주식 칼럼 2

[정신의학신문 :  건대 하늘 정신과, 최명제 전문의] 

 

198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신경학자 로저 스페리(Roger W. Sperry)의 제자 마이클 가자니가(Michael Gazzaniga)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컴퓨터 화면에 어떤 글자가 나타날지 예측하는 게임을 한 것이다. 화면에 A라는 글자가 나타날 확률은 75%, B라는 글자가 나타날 확률은 25%다. 이때 참가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은 무엇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매번 A를 예측하는 것이다. 확실하게 75%의 적중률을 달성할 수 있다. B를 선택하는 건 어리석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A와 B를 75 대 25의 확률로 누르게 한다. 결과적으로 어떤 글자가 나타날지 맞힐 확률은 62.5%로 떨어진다. 심리가 논리를 이긴 것이다. 

  ‘확률이 75 대 25지만, 이번에는 B가 나올 거야. 두 번이나 A가 나왔잖아?’

  ‘확률이 그렇다고 해서 B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어. 이번에는 틀림없이 B일 거야.’ 

과학적인 확률보다 이런 심리적인 기대에 의지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다.
 

사진_pexel

 

가자니가는 다른 실험을 했다. 절제 시술을 받은 환자의 오른쪽 눈에 닭 발톱을 보여주고, 왼쪽 눈에는 눈이 쌓인 언덕을 보여준 후 이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보도록 했다. 환자는 왼손으로 삽을 그렸고, 오른손으로 닭을 그렸다. 각각 좌뇌와 우뇌에 입력된 정보대로 그린 것이다. 가자니가가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환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닭의 발톱을 보고 닭을 그렸고, 삽은 닭장을 치울 때 필요해서 그렸습니다.” 

 

스페리에 따르면 좌뇌는 이성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우뇌는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그림 그린 이유를 설명하는 일은 좌뇌가 담당하는데, 좌뇌는 오른손이 한 일은 알고 있으나 왼손이 한 일은 알지 못한다. 질문을 받았을 때 이 환자는 모른다고 대답하지 않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럴듯한 답을 지어낸 것이다. 좌뇌는 자신이 가진 한정된 정보만을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내러티브(Narrative), 즉 인과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좌뇌는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순간적으로 관찰된 정보 또는 언뜻 떠오른 자신의 생각을 그럴싸하게 꾸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짜 맞추려는 경향, 이것이 경제적 의사결정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오늘 왜 그 회사 주식을 그렇게 많이 매입하셨어요?” 

대단한 정보나 예리한 분석을 기대하고 이런 질문을 했을 때 뜻밖의 대답이 들려온다. 

  “어제저녁 우연히 그 회사 사람을 만났는데, 인상이 워낙 좋아서 호감이 갔어.”

  “오랜 징크스가 있었는데, 아침에 그 회사 음료를 마신 후 그 징크스가 없어졌지 뭐야.” 

인간은 모두 내러티브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 매번 객관적 사실, 유용한 정보, 확실한 지식에 바탕을 두고 판단과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가장 합리적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가장 그럴듯한 내러티브를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내러티브를 믿고 의사결정을 한다.

사실과 정보와 지식에 기초한 내러티브가 투자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지만, 대부분 매도 매수에는 이와 무관한 각각의 내러티브가 있다. 투자에 앞서 의사결정을 할 때 내가 가지고 있는 내러티브, 내가 확신하고 있는 내러티브가 과연 현명한지 다시 한번 따져봐야 한다.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며, 전 세계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제일 브랜드 가치가 높은 운동선수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지금까지 그는 개인전 통산 1242승 271패로 승률 82%를 기록 중이다. 커리어 타이틀 획득 103회, 복식 타이틀 획득 8회로 통산 획득한 상금만 약 1억 3천만 달러(한화 약 1542억 원)에 달한다. 4대 메이저 대회 우승은 20회로 승률이 86%다. 가히 테니스의 황제라고 불릴 만하다.

그런데 그가 나선 경기에서 내기를 걸어 돈을 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가 진다고 확신해 돈을 잃는 사람들도 있다. 그의 경기가 열리면 무조건 그가 이긴다는 데 돈을 거는 게 이익을 볼 확률이 가장 높다. 80%가 넘는 승률은 거저 얻어진 게 아니다. 하지만 굳이 그가 지는 쪽에 베팅하는 사람들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약 18%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이런 무모함은 어디서 올까?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패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검증되지 않은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 자기 확신, 즉 내러티브는 이성적이고 설득력 있게 보인다 해도 현실에 들어맞는다는 보장이 없다. 현명하다는 것, 즉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인간의 지능이란 좋은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좋은 내러티브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내러티브다. 현실의 인과관계를 명료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바로 지능이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것은 무시하고 어떤 것은 선택함으로써 이야기를 변형시킨다. 이것이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한 방어기제의 본질적 이유다. 인간은 오랜 역사를 거쳐 오는 동안 많은 경험과 학습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키워 왔지만, 이와 동시에 현실에 적응하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어기제 역시 발달시켜 왔다. 경험과 학습을 통해 일정한 패턴을 인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패턴을 내러티브로 만들어 자기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가져다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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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건대하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국가고시 인제의대 수석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수행평가 전국차석
5개대 7개병원 최우수 전공의상(고려대, 경희대, 이화여대, 인제대, 을지대, 서울의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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