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구로 연세 봄 정신과, 박종석 전문의] 

 

정신의학적으로 공황장애란 심한 불안 발작과 이에 동반되는 신체 증상들이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작스레 나타나고,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어느 날 문득 아무 이유 없이 호흡이 빨라지고 식은땀이 나거나, 혹시 내가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극심한 공포에 휩싸인다.

어떤 사람은 공황장애가 소심하고 멘탈이 약한 이들에게 생긴다는 착각을 하는데, 한국에서 주식투자를 몇 개월만 하다 보면 누구든지 공황장애 풀코스를 겪어볼 수 있게 된다. 아무 이유 없이 주가가 떨어지고, 식은땀이 나고, 이러다 상장 폐지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극심한 공포를 마음껏 경험해볼 수 있다. 예기불안, 초조감. 불면증은 보너스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다. 우리가 흔히 ‘쟤 멘탈 나갔네, 패닉이네’라고 할 때의 상태가 딱 공황에 빠진 것이라 보면 된다. 공황에 빠지면 우선 우리 뇌에서 가장 똑똑하고 이성적인 부분인 전전두엽이 마비된다. 침착하고 현명한 판단은 고사하고, 여기가 어디지? 내가 뭘 하고 있지? 라는 것까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똑똑한 리더가 정신줄을 놓게 되면 그 밑에 부하들, 뇌의 다른 부분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게 된다.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사춘기 소년 같은 변연계는 욕을 마음껏 표출하고 평소엔 하지 않을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마구 벌이게 된다. 이를 지켜보는 편도체와 소뇌는 겁에 질린 나머지 손을 덜덜 떨고,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린다. 과호흡으로 숨을 미친 듯이 몰아쉬기도 한다.

 

어느 날 아침, 아무 생각 없이 네이버 1면을 들어갔는데 내가 가진 주식이 검색어 1위에 올라왔을 때, 전조 증상이 시작된다. 가슴이 미칠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아... 이건 분명 폭락 아니면 폭등인데...’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체가 친절하게 속삭인다.

‘바보야, 네 주식이 폭등한 기억이 한 번이라도 있었니? 이번에도 뻔해 폭락일 거야.’

기억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10년 전에 길에서 500원을 주운 사소한 이벤트와, 몇 년 전 주식으로 1억을 넘게 날린 기억이 똑같은 가치를 갖지 않는다. 당연히 더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기억에 가중치가 부여되는데, 특히 부정적 정서와 감정이 실린 기억이 더 오래간다. 이것은 부정적 정서를 수용하는 편도체가 기억 저장은행이 해마체 바로 옆자리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나 행복했던 일보다 불행과 트라우마가 훨씬 오래 남는다. 나쁜 기억, 공포스럽고 불안했던 기억은 언제나 내 해마체 순위에 가장 높은 곳, 바탕화면에 저장된다.

 

사진_픽사베이
사진_픽사베이

 

클릭하기도 내 본능은 이미 결과를 예상하고 있다. 파란색, 그럴 줄 알았다. - 17%.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뛴다. 불안 호르몬인 노르에피네프린과 아드레날린이 넘쳐흐르는 탓이다.

스마트폰으로 주식 어플을 켠다, ‘빨리 팔아야 한다, 하한가 각이야, 지금 당장 팔아야 해.’ 손이 떨려서 로그인조차 쉽지가 않다, 비밀번호를 자꾸 틀린다. 3번 틀리면 영업점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 심호흡을 하고 3번째 만에 로그인에 성공한다. -19% 그사이에 더 떨어졌다. 눈앞이 뿌예지고 머리가 어질어질 돈다. 손떨림이 너무 심해서 매도주문을 낼 수조차 없다, 13만 원 팔려고 하면 12만5천, 다시 12만 5천에 걸려고 하면 11만 9천, 자이로드롭처럼 떨어진다, 매도주문이 수백만 건이 쌓인다. 이제는 손이 아니라 턱이 덜덜 떨린다. 이빨 부딪히는 소리가 딱딱, 귀를 할퀸다. 내가 왜 이러지, 정신 차리자, 짜증과 자책, 불안, 온갖 감정의 폭풍, 엉엉 소리 내어 울고만 싶다.

어느새 주식은 하한가에 거의 다 왔다. – 27 % 이때라도 이성을 잡아야 한다. 심호흡하고 물을 한잔 들이켜고, 뇌에 포도당과 탄수화물을 보충하여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

공황에 빠진 투자자가 생각하는 건 오직 공포뿐이다. 하한가에 가면 아예 못 팔 수도 있다. 내일도 폭락하면 어쩌나, 지금이라도 팔아야 한다는 생각. 얼핏 보면 근거가 있는 판단 같지만, 그저 겁에 질린 나머지 불안으로부터 도망치는 회피성 전략일 뿐이다. 폭락할 만한 재료나 악재, 매도물량, 외국인 동향 등 팩트체크를 해보아야 한다.

 

문제는 공황에 빠진 지금에서가 아니라, 미리 사전에 해뒀어야 한다는 점이다. 평소에 면밀한 준비를 해둔 사람이라면 폭락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미리 세워둔다. 몇 % 빠질 때마다 얼마씩 분할매도를 할 건지 미리 수십 개의 알림을 설정하고 계획을 세워둔다. 하한가를 맞는 날은 1분에도 주식이 20% 이상 요동친다. 그때 상황에 맞추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시간이 없다. 어버버 하다 때를 놓칠 것이고, 오로지 ‘내가 개잡주를 샀구나, 망할, 빨리 탈출하자’란 생각만 들 것이다.

공황에 빠진 투자자는 -27%에 일괄 매도를 완료한다. 그리고 3분 뒤 주가가 다시 저점매수세에 힘입어 -15%까지 반등한다. 어라? 이거 다시 오르잖아? 괜히 팔았네, 다시 사자! 그때 산 주식은 다시 -30%까지 돌아선다. 전형적인 설거지를 당한 것이다.

하루에 하한가를 두 번 맞는 경우가 이렇게 발생한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겁에 질린 채 돈을 갖다 버린 것뿐이다. 이 생생한 경험담은 당연히 내가 겪은 일이다. 공황장애의 가장 큰 두려움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에 있다. 뇌가 불안에 지배당한 상태에서 경험한 일은 인사이트도 없고, 교훈도 없다, 그저 유령에 홀린 것처럼 멍할 뿐이다. 따라서 재발의 위험이 너무나도 크다.

 

공황에 빠져 큰 손실을 경험한 직후, 주식 어플을 지우고 계좌를 삭제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내가 했던 비이성적인 실패를 두고두고 곱씹으며 반성해야 한다. 나는 큰 실수를 한 직후엔 한 달 동안 어떤 매도나 매수도 하지 않고 그저 하한가를 맞았던 주식들, 결정적인 매도 실수를 했던 종목들의 이름들을 핸드폰과 PC 바탕화면에 띄워두었다. 물론 그러고도 또 바보짓은 계속되었다. 에이모션, 휴메딕스, STX 등등 메모앱에 적힌 이름은 늘어만 갔다.

너무너무 꼴 보기 싫고 부끄러운 내 모습과 매일 직면하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 매일 아침을 우울해하면서, 울상을 지으며 출근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쓰디쓴 고통을 피하지 않았다. 당장의 편안함을 얻고자 지금 도망치면 다시 또 어리석은 투자를 자행하고, 공황에 빠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수백 번 인지하며 내 해마체와 편도체에 새로운 습관을 새기는 것만이 다음번 패닉투자를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돈을 잃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너무 부끄럽고 어리석은 나를 또 마주하는 것. 그것이 나 자신에게 더 큰 수치심과 공포를 준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비로소 공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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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신촌세브란스병원 전공의
전) 서울대병원 본원 임상강사, 삼성전자 부속의원 정신과 전문의
현) 신촌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외래교수,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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