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부산의료원, 윤경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낯선 상황을 접하면 어떤 사람은 호기심과 기대감에 부풀지만, 어떤 사람은 불안해지면서 거부감을 느낀다. 놀라움이나 경이로움과 같은 감정은 낯선 대상을 경험하도록 자극하지만 걱정과 두려움의 감정은 낯선 대상을 회피하도록 유도한다. 익숙지 않은 환경이 만들어내는 감정이 긍정적인가 혹은 부정적인가에 따라 사람의 유형을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과 회피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A와 B, 두 사람은 해외 출장 중이다. 환승 공항에서 연결편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인데 공항 사정으로 몇 시간 지연 출발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헤어져 시간을 보낸 후 비행기 출발시간에 만났다. 서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확인해 보니, A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해서 마신 후 의자에 앉아 신문을 구석구석 읽었다. 그래도 시간이 남자 바이어와 진행할 회의자료를 꺼내서 꼼꼼히 읽어보며 중요 사항을 점검했다.

반면 B는 공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선글라스를 하나 샀다. 그리고 생전 처음 마사지 숍에 들어가 시간을 보냈다. 또 멋진 스테인드 글라스를 발견하자 스마트폰으로 찍어 자신의 프로필 사진으로 교체했다. 서로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A는 위험회피 행동을 보인 반면 B는 새로움 추구 행동을 나타냈다.

 

이제 A와 B의 개인 생활을 살펴보자. 부부 동반으로 같이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B는 휴양지 바닷가에서 스킨 스쿠버 체험을 하며 혼자 신나게 놀다가 아내로부터 핀잔을 들어야 했다. 한편 A는 자신의 아내가 서핑을 배우자고 제안했지만 결국 파라솔 안에서 아내가 노는 모습만 지켜보았다.

저녁이 되자 숙소로 돌아와 각자 사를 직접 준비해서 먹게 되었다. A는 아내가 차려줄 때까지 TV만 보며 시간을 보냈지만, B는 여행지에 왔으니 자신이 요리해 보겠다고 나섰고 두 시간이 넘도록 아내는 배를 쫄쫄 곯아야 했다. 아내로부터 “세상에서 제일 맛없다”라는 요리평을 들어야 했지만 나름 여행의 새로운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여행은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이색적인 것을 좋아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낯선 것을 위험스러운 대상으로 여기기보다 즐거운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막상 날짜가 다가와 여행 계획을 잡으려면 핑계를 댄다. 사실 그 사람 마음 안에서는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사진_픽셀
사진_픽셀

 

여기서 ‘네오필리아’와 ‘네오포비아’란 용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네오필리아(neophilia)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욕구’이고 네오포비아(neophobia)는 ‘새로움을 회피하는 욕구’다.

네오포비아적인 사람도 여행을 갈 수 있지만 마음에는 갈등이 많다. 여행지에서의 즐거운 체험에 빠져들지 못하고 낯선 문화와 음식에 대한 불편함이 자꾸 의식되면서, 부재중인 자신의 집에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을까 신경을 쓴다. 그들은 익숙한 방식으로 생활하는 것을 선호한다.

각자의 사회적 자극, 유전적 차이, 뇌의 구조 등으로 인해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향은 다르게 나타난다. B가 새로움에 대하여 접근형이라면 A는 회피형이다. 접근형이냐 회피형이냐는 것은 타고난 기질적 편향성과 성장 과정에서의 환경 조건이 서로 영향을 미쳐서 만든 결과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점차 바깥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데, 미지의 세계가 자신에게 즐거움을 줄 때도 있고 고통과 충격을 줄 때도 있다. 아이의 경험이 전자 쪽으로 기울어진다면 네오필리아적 힘이 확대되고 후자 쪽으로 기울어진다면 네오포비아적 힘이 확대될 것이다.

 

네오필리아는 낯선 것에 대해서 유쾌한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으로, 뇌에서는 도파민 분비가 증가한다. 행동과학 전문 칼럼니스트 위니프레드 갤러거는 자신의 저서 「NEW」에서 호기심은 혁신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적었다. 도파민이야말로 혁신 애호가들의 묘약으로 목표 대상에 자극을 증가시키고 집중하게 만든다고 표현한 바 있다. 즉 낯선 것에 대한 혁신 애호적 감정을 탐구하고 새로운 것에서 보상을 창출하도록 촉구한다고 보았다.

전철을 타 보면, 과거에는 책이나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는 것을 본다. 각자 소지하고 있는 기종도 다양하다. 구입한 제품의 사용법을 미처 습득하기도 전에 새롭고 신선한 기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디지털 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 네오필리아적 충동이 극대화되는 세상이다.

 

새로 나온 것이면 다 좋은 것일까? 얼리 버드처럼 세상에 없던 물건이 나오면 무조건 먼저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디지털 가치관에 몰입하다 보면 삶의 가치 기준을 잃어버릴 수 있다. 손에서 전자기기를 놓고 벤치에 앉아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를 바라보거나, 졸고 있다면 사람들 눈에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멍 때리는 시간, 사색, 몽상 같은 일은 정신건강에 필수적이다.

멍한 상태에 있을 때 활발해지는 뇌의 영역이 있는데, 워싱턴 의대의 마커스 라이클 교수는 사람이 아무런 인지 활동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위들이 있음을 알아내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 명명했다. 내측 전전두엽피질, 후대상피질, 두정엽피질에 퍼져 있는 신경세포망이 이에 해당한다. 뇌가 각성 상태에서 집중해도 풀리지 않던 문제가 한숨 자고 일어나면 해결책이 보이는 것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작동하여 창의성과 통찰력을 높여준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신체가 쉬는 시간에 뇌는 내밀하고 정밀한 사고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초스피드의 시대는 네오필리아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살기 편한 세상일 수 있다. 하지만 새로움은 좋고 익숙함은 나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둘 사이에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느리게 살아라”, “자연으로 돌아가라”라고 외친다. 네오필리아에서 창의성과 모험을 얻고, 네오포비아에서 안정감과 인내심을 지켜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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