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부산의료원, 윤경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많은 사람이 봉사활동을 하며 지낸다. 타인을 돕는 행위를 통해서 삶의 활력소를 얻고 또 기쁨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시간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때로는 경비까지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데 봉사활동이 즐거운지 의문을 가진다. 선한 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자기만족감을 얻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는데, 이런 논리는 홉스의 심리학적 이기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럼 평생 가난한 이를 위해서 헌신했던 마더 테레사는 자기만족을 취한 이기주의자였단 말인가? 모두가 그녀를 성녀로 추대하지 이기주의자로 바라보지 않는다. 봉사활동을 심리학적 이기주의로 바라보는 것은 철학적 궤변에 가깝다.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실제 그 행위를 통해서 즐거운 감정을 체험한다. 뇌 과학의 발달로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졌다. 뇌는 어떤 행위를 통해서 즐거움을 얻으면 그 행위를 계속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보상회로와 상관이 있다. 보상회로는 전전두엽과 변연계의 연결고리로 복측피개에서 내측 전전두엽과 측중격핵으로 연결되는 신경회로망이다. 섹스나 도박, 약물중독에서 쾌락을 느끼는 것은 이 회로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필로폰을 투여하면 복측피각에서 측중격핵에 이르는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여 흥분감과 쾌감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봉사활동이나 구호단체에 기부하는 행위도 보상회로를 자극한다는 사실이다. 한 실험에서 여학생들에게 백 달러를 나누어 준 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식량 은행에 기부할 것인지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요청한 후에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으로 뇌 상태를 확인했다. 그 결과 기부를 선택한 여학생들의 보상중추는 기부를 선택하지 않은 여학생들에 비해 의미 있게 활성화되었다. 이는 진정으로 남을 돕게 되면 뇌가 쾌감을 유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뇌는 신경회로망으로 연결되고 신경전달물질들이 수용체와 결합하여 생각, 감정, 행동을 조절한다. 신경전달물질의 전달 과정에 이상이 생기면 정신장애가 발생하는데, 가령 세로토닌 결핍은 조급함, 스트레스, 우울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한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과 양전자 단층촬영 등을 통해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정신 현상이 뇌 활동의 결과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사람들은 에너지 재충전을 위해서 휴가를 다녀오지만, 여행 후에 오히려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는 보상회로에 자극이 고갈되는 하향조절기전 탓이다. 즉 시냅틱(synaptic) 간극에서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이 같은 강도의 자극을 계속 가하게 되면 신경세포 표면에 있는 수용체 수가 감소하는 현상이다. 이렇게 근원이 드러나니 인간의 정신활동을 두고 뇌 과학자들은 전기자극이 만들어낸 화학반응이라고 일컫는다. 

 

사진_픽사베이

 

장례식장에 가면 자기 자신과 밀접한 관련이 없는 사람이 죽어도 슬픈 감정이 든다. 또 겸손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은연중에 자신도 겸손해진다. 반면 거만한 행동과 저속한 말투를 쓰는 사람 옆에 가면 자신도 모르게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하게 된다. 이런 심리적 전염은 미러 뉴런과 연관이 있다. 이탈리아의 리촐라티 교수팀은 원숭이에게 다양한 동작을 시켜보는 실험에서 한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들이 하는 행동을 보기만 했는데도 자신이 움직일 때와 같은 반응을 관찰하고서 거기에 관여하는 일련의 신경세포군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러 뉴런인데 전두엽 아래쪽과 두정엽 아래쪽 등에 주로 분포되어있다. 미러 뉴런은 소통과 감정교류를 통해 적절히 공감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들끼리 코드가 맞고 잘 통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마음이 통해서라기보다 미러 뉴런의 공명효과가 쉽게 활성화되기 때문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종종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친구들이 그건 절대 아니라고 조언해 주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사랑에 빠지면 눈에 콩깍지가 씌어 오직 사랑하는 대상만 크게 보일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현상 역시 뇌의 특정 부위에 생화학적 변화를 일으킨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 존스홉킨스대학 연구팀은 사랑에 빠지면 보상회로의 복측피개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어 측중격핵, 전전두피질, 배측선조체, 편도체 등으로 분비가 증가하고, 동시에 이성적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도파민 활성도는 떨어지게 된다고 발표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 중에는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L씨 부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한순간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지만, 신혼 분위기가 끝나자 부부는 수시로 말다툼을 벌였고 나중에는 타인보다 못한 사이가 돼 버렸다. 우울, 짜증, 분노가 누적되자 이를 견디지 못한 아내 L씨가 진료실을 찾았다. “제가 무슨 콩깍지가 씌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탄식했다. “우리 부부는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 달라요.” 결혼한 지 이십 년이 넘었지만 서로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행동해 왔다. 

L씨 부부는 서로 자신은 옳은데 상대방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관계를 맺을 줄 아는 능력은 아주 중요하다.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면서 배우자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살아오면서 학습했던 정보들이 자신의 뇌에만 들어 있지 배우자의 뇌에는 전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잔소리하고 바가지를 긁어봐야 상대는 변하지 않는다. 살아온 환경과 가정문화가 다르면 다를수록 틈은 더 커진다. 따라서 L씨 부부가 얽힌 실타래를 풀려면 뇌는 입력된 정보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뇌는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마약이나 성적 행위에서 오는 쾌감과 봉사활동이나 기부행위를 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 동일한 기전을 통해서 일어난다는 것은 일견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아직 뇌의 신비는 정확한 실체를 모른다. 조금씩 베일이 벗겨지고 있지만 현 단계에서 단정 지을 수 없는 뇌의 영역들이 아주 많다. 앞으로 연구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주장이 나오면서 현재 알고 있는 주장들이 뒤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연구의 종점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다양한 행위는 신경 네트워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해서 만들어내는 고차원적 현상이라는 점은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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