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부산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윤경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음압병동에 입원했던 A씨. 경증 환자라 10여일 만에 퇴원했다. 신체적으로는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불안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힘들어했다. A씨는 직장 동료와의 통화에서 완전 주눅이 들고 말았다. “당분간 직장에 나오지 말고 푹 쉬라고 했어요.” 이 말의 뜻은 A씨가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지 모르니 혼자 뚝 떨어져서 지내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불안장애로 통원치료를 해 오던 여성 B씨. 그녀는 A씨와는 정반대 상황이다. 이웃 사람이 확진자로 나오면서 극도로 불안에 빠졌다. 복용하던 약이 다 떨어져 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데 겁이 나서 집 밖을 나서지 못했다. 이웃의 확진자가 자신을 고통 속에 빠뜨렸다며 불만을 터뜨리며 “안됐지만 그 사람은 당분간 동네 마트 이용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병으로부터 회복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낙인에 대한 부담을 호소한다. 한 직장인은 완치 판정을 받은 후 격리해제기간이 다 지났지만 자의로 일정기간 더 격리생활을 했다. 그런 후 직장에 복귀했더니 직원들은 계속 거리두기를 하더란다. 불륜을 저지른 대가로 가슴에 ‘A'자를 새긴 『주홍글씨』의 헤스터 프린처럼 죄인 취급당하는 기분이 들었단다. 서운함과 배신감이 가득했지만 어디에 하소연도 못하고 그는 속으로만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야”라고 외쳐야 했다. 
 

사진_픽사베이


코로나19에 걸린 것도 서러운데... 낙인으로 인해 온전한 회복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낙인은 왜 생기는 걸까? 신종 감염병 사태가 언제 끝날지 기약 없는 상황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고 지치게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면서 사회활동과 일상생활이 차단되어 스트레스 지수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거기에 불법집회나 마스크 미착용 등 방역 기준을 잘 따르지 않는 시민들에 대한 분노, 경기침체로 인한 생계의 막막함, 실직자 급증, 취준생들의 상실감 등이 복합적으로 쌓여 우리 사회는 부정적 에너지가 강하게 팽창되어 있다. 이런 에너지가 분출되는 과정에서 낙인찍기는 쉽게 나타나게 된다. 누적된 불안과 분노, 우울감정은 분출할 탈출구를 찾다가 취약한 계층을 향해 비난과 혐오의 화살이 날아가는 것이다. 

낙인은 혐오와 분노가 ‘투사’라는 방어기제를 통해 외부로 발산되는 현상이다. 사회는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다 보니 갈등이 상존한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이 닥치면 상충되는 갈등은 봉합이 잘 되지 못한다. 불안정한 다수집단은 사회적으로 배제된 이들을 향해 비난과 혐오감을 자극하여 낙인이라는 희생양을 만들어 냄으로서 심리적 위안을 취하려고 한다. 

 

낙인의 표적은 감염병에 노출되었다가 회복된 사람이 우선 대상자이지만 불철주야로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도 그 대상이 되기 쉽다. 의료진들은 내심 험한 일을 하는 보상으로 이웃으로부터 따뜻한 박수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지만 뜻밖에 오염원처럼 취급하는 상황에 심신은 더 지친다. 의료진이 표적이 되는 이유는 바이러스 검사를 하다가 질병을 전파시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자극하여 선한 희생양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 2월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되면서 정신과병동에 근무하던 간호사들은 모두 음압병동에 투입되었다. 당시 간호사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 이유는 미지의 신종 감염병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니라 주변의 시선 때문이었다. 한 고년차 간호사는 과거 메르스 사태 때 자신의 경험이 연상되었다. 공공의료기관의 의료진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D레벨의 보호 장구를 갖추고 힘들게 일을 했건만, 사태가 진정되고 정작 돌아온 것은 수고했다는 대신에 차가운 외면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꺼려했다. 순간 울컥하는 느낌이 치밀어 올랐단다. 또 다른 간호사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 해도 다른 엄마들이 싫어한다며 어린이집 관계자로부터 당분간 집에서 쉬는 것이 좋겠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가슴에 멍이 드는 기분이었단다. 이번 코로나 사태도 그럴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지금 의료진들은 이중의 부담감을 안고 감염병과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낙인 사례는 외국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블룸버그 통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영병과 싸우는 인도의 의료진에게 주민 100여명이 집단적으로 공격하는 사례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주민들은 긴급조사를 하러 다니는 의료진들과 마주치자 돌을 던지는 행동을 하여 의료진들이 급히 현장을 탈출해야 했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의사들이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면서 두들겨 맞기도 했다. 이런 현상의 저변에는 의료진이 주위에 있으면 자신도 바이러스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질 거라는 막연한 불안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 

 

감염병에 걸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회복된 이들에게 바이러스 전파자라는 식으로 색안경을 끼지 말았으면 한다. 감염증의 확산을 막고 사회적 혐오를 배격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낙인을 찍어 희생양을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의 나약함만 드러내는 열등한 행위일 뿐이다. 고통은 서로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하지 않았나.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작은 실수도 수용하지 못하고 날카롭게 비판하기가 쉽다. 따라서 이 시기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격려’와 ‘지지’이다. 

격려와 지지는 서로에게 친밀감을 자극한다. 서로를 품어주는 친밀감은 낙인찍기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치유의 마음이다. 또 친밀감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몸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주는 항체와 같은 기능을 한다. 우리 모두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격려와 지지라는 버팀목으로 연대의 끈을 이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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