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느끼기의 중요성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생각을 바꾸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 :

생각은 우리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너무나 빨리 머릿속을 지나쳐 버린다.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아는 것부터가 어렵다.

 

2.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알아야 한다.

감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바꾸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 :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알아낸다고 해서 이 감정이 왜 생겼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감정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더 급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바꾸기 어려운 세 번째 이유 :

우리가 감정을 거슬러 올라가 찾아낸 생각은 단순히 겉으로만 보이는 표면일 뿐이다.

표면의 아래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할 거대한 뿌리가 있다.

 

3. 위의 과정을 무수히 반복한다.

자기 마음의 ‘패턴’을 찾아내고 자신한테 이런 패턴이 있음을 ‘스스로 느낀다’.

그리고 이해한다.

 

3번 과정 자체가 생각을 바꾸기 어려운 네 번째 이유이다.

수많은 반복을 통해 스스로 느끼는 것!

 

지금까지 우리가 한 내용을 정리해봤다.

 

이번 시간에는 중심 내용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이지만, ‘스스로 느끼는 것’의 중요성을 잠시 이야기하겠다. 3번 과정을 지속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수많은 반복과 노력으로 자기 마음의 ‘패턴’을 찾고, 자신이 어떤 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느낀다’는 것은, 또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정조 역시 우리가 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던 모양이다

 

성철 스님이 하신 말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을 기억하는가?

 

성철스님은 효봉선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효봉선사께서는 성철스님에게

‘30년 전에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더니

20년 전에는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더라.

10년 전 부터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더라‘

라고 말씀하셨다.

성철스님 역시 처음부터 이 가르침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성철스님은 무던한 수행을 통해 이 가르침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불교에 입문하기 전에는 보이는 것 그대로가 참 세상인줄 알았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더니’(1)

 

어느덧 부처님 말씀을 듣고 수행을 하다 보니, 세상사가 참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더라는 것을 알았다.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더라’

 

그러다 깨우침을 얻고 실상을 볼 수 있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더라’(2)

 

사진 성철 스님 SBS

 

스스로 느낀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스스로 느낀다는 것은 깨달음을 향한 길목이다. 이것은 교육과 학습을 넘어선 영역이다. 이것은 언어를 뛰어넘는 영역이다. 부처님조차도 중생이 깨달음을 향해 가는 길을 설명 하실 순 있지만, 중생을 직접 그 깨달음의 세계로 끌고 가지는 못하신다. 깨달음을 얻고 실상을 볼 때의 좋은 점을 설명할 순 있지만, 그런 상태를 직접 느낄 수 있게끔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깨달음의 상태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1)의 산과 (2)의 산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없다. 마치 산 아래에서 산을 보는 것(1)과 산 정상에서 산을 보는 것(2)이 다르지만, 정상을 올라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봐도 그 느낌을 알 수 없듯이 말이다. 깨달음은 스스로 느끼는 것이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처음으로 치통을 경험했다. 어찌할 바를 모를 고통에, 어디를 부여잡아야 하는지도 모른 체 그냥 대굴대굴 굴렀다. 십년 가까이 의사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통증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책에서 표현하는 통증의 강도나, 환자가 호소하는 통증의 정도로 막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아픔은 실제로 알고 있던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어렴풋하게 아는 척을 했던 것이다. 새벽에 치통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찾아오던 환자들에게 짜증과 의아함이 묻어 나왔던 인턴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부끄러움만이 치통을 잠깐씩 멈출 수 있었다.

 

치통을 느끼기 전의 나와 치통을 느낀 후의 나는 같지만 같은 사람이 아니다. 치통을 느끼기 전의 나와 치통을 느낀 후의 나에게, 치통으로 응급실을 찾아오는 환자는 같은 환자지만 같은 환자가 아니다. 이런 통증을 실제로 느껴보지 못했다면 나는 치통이 어느 정도인지 어렴풋하게만 알았을 것이다. 이런 통증을 실제로 느껴보지 못했다면 나는 평생 응급실을 찾아오는 치통 환자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통증을 실제로 느껴보지 못했다면 나는 치통 환자를 응급실에서 볼 때마다 ‘응급실은 더 아픈 환자, 더 응급한 환자가 오는 곳이야’라는 생각을 바꾸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통증을 실제로 느껴보지 못했다면 나는 치통 환자를 응급실에서 볼 때마다 마음이 짜증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실제로 느껴보지 못했다면 나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내 마음은 다루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사랑의 아픔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로미오와 쥴리엣’을 수천 번 읽는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결혼 생활을 직접 경험하고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결혼 생활이 얼마나 좋은지(?) 말로만 들어서는 알지 못한다. 자식을 키워보지 않고서는 자식 키우는 어려움을 알 수 없다. 자식이 아플 때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어머니의 말은 아픈 자식을 기른 경험을 한 어머니가 아니고서는 알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산의 정상에선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또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사진 픽사베이

 

사람이 앎을 터득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배우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다. 일만 곱하기 일만은 일억이라는 것은 직접 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것들은 직접 경험하고 느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마음이란 것은 스스로 느끼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치우쳐져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역시 스스로 느끼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자기 마음의 패턴을 스스로 느낀 사람은 그러기 전의 사람과 같지만 같은 사람이 아니다. 자기 마음의 패턴을 스스로 느낀 사람에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같은 세상이 아니다. 자기 마음의 패턴을 스스로 느낀 사람은 그러기 전의 사람보다 자신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공감할 수 있다. 자기 마음의 패턴을 스스로 느끼고 이해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훨씬 더 잘 다룰 것이다. 아니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스로 반복하고 느끼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더니’
 

마음다루기를 통해 자기 마음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한 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더라’ 

 

우리가 지금까지 수많은 반복과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더라’

로 깨우침을 얻는 과정은 앞으로의 마음다루기를 통해 알아보자.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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