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택장애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늘 양자택일의 순간에서 고민하고 불안해한다. 사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큰 계약에서부터, 저녁식사 메뉴를 고르는 사소한 선택의 순간까지, 결정해야만 하는 순간의 부담에 괴로워한다. 물론 망설임이라는 과정이야 모두가 어느 정도 거쳐 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몇몇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너무나도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메모지 한 장을 고르는 데에도 끙끙대는 모습을 볼 때면, 그들을 괴롭히는 것의 정체란 사실은 그들이 정말로 선택해야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선택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정 장애의 핵심 감정은 불안이다. 어떤 것을 선택해야할지,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지 망설이는 순간의 마음속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불안이란 다가오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내가 내릴 결정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지, 발을 동동 굴러가며 두려워한다.

 

사진 Hamlet wikimedia

 

[기회가 왔구나! 지금이다.]

(칼을 빼어든다)

[아니다. 기도드릴 때 죽으면 천당엘 가게 된다.]

[그러면 그게 무슨 복수람 온갖 죄악이 불꽃처럼 피어오를 때 그때 해버려야 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3막 3장.

작은아버지 ‘클로디어스’의 죄를 확인하고 결정적인 복수의 기회를 잡은 절호의 순간, 햄릿은 우유부단의 대명사답게, 여지없이 마지막 일격의 순간을 망설인다. 기도하는 클로디어스를 내리칠 경우 복수가 완전해지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 주춤한다.

햄릿은 늘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마치 그의 모든 선택과 행동을 누군가가 매번 평가하고 지시하여 처벌이라도 하는 양, 마음속으로 셈을 한다.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꼼꼼히 돌이켜보고 두려워한다. 불완전함이 드러나게 될 행동에 대해 불안해한다.

 

결정장애, 햄릿 증후군의 내면은 사실 강박증의 그것으로 여겨도 될 법한 불안을 보인다. 앞서 이야기하였듯, 결정에 대한 두려움은 결과에 대한 책임의 두려움이다. 결과가 잘못 되거나 완전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후회하게 될 결정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즉, 매사에 완벽한 결정을 해야만 한다는 두려움이 완벽주의로 인해 점점 불완전의 늪으로 빠져드는 강박증의 그것과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택하기를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완벽한 결정을 하기 위해 망설이기만 하다가, 결국 시기를 놓쳐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진 Freud 픽사베이

 

프로이드는 강박증이란 발달적으로 항문기적 갈등에 고착된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항문기의 갈등은 대소변 가리기를 배우는 아이의 갈등으로 비유된다. 아이는 원초적인 배변의 욕구를 이해할 수 없지만 부모의 훈육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조절해야만 한다. 원초적인 욕구를 권위자의 요구나 사회적 요구에 따라 통제해야만 하는 내적 갈등이 항문기의 주제인 것이다. 이러한 주제의 갈등이 잘 해결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통제하는 가혹한 초자아를 갖게 된다. 욕망을 억누르고 자아를 조절하는 것이 초자아의 역할이지만, 강박적인 사람들의 경우엔 그 초자아가 너무나 가혹하여 완벽주의의 감옥에 갇혀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떤 가구를 골라야 할지, 어떤 메뉴를 주문해야 할지, 어떤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할지조차 망설이고 몸달아하는 결정장애의 딜레마 역시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가혹한 초자아가 결정에 대한 결과를 상상할 때마다 조금의 후회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채찍질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햄릿이 선왕(先王) 망령의 ‘억울한 죽음을 복수해야만 한다’ ‘마음을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라는 모순된 종용에서 벗어날 수 없어 괴로워하듯 말이다. 그러나 무의식 속에서 서슬 퍼렇게 눈을 부릅뜨고 있는 초자아 통제에 질려버린 자아는 결국 결과의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게 된다. 결정하지 않고 미뤄버리게 된다.

 

그러나 완벽주의의 강박증에 시달려하던 환자들은 종종 중요한 치료적 깨달음의 순간에서, 그들이 완벽하게 결정하고 행동하려 망설였던 문제들이 실은 얼마나 사소한 문제였는지를 깨닫고 허탈해하곤 한다. 조금의 후회도 남기고 싶지 않아 했던 괴로운 선택의 순간들이, 사실 후회가 조금 남더라도 크게 상관이 없는 일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비록 과도한 망설임으로 이미 때를 놓친 뒤의 후회일 때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조금 더 곰곰이 스스로를 돌아볼 때면, 사실 ‘결정의 순간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는 완벽함이란 있을 수 없다’라는 아주 단순하고도 자명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어떤 선택을 하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면, 망설임과 괴로움은 선택해야하는 그 대상이 아니라, 선택해야하는 사실 그 자체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게 힘들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인데 말이다.

 

사진 wikimedia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물론 꼼꼼히 살피고 여러번 되짚어 보아야 실수를 예방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가 끙끙대는 결정장애의 순간들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디자인의 옷을 사거나, 아쉬운 품질의 물건을 주문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거나. 별것 아닌 사소한 결정에 이 시대의 수많은 햄릿들은 죽느냐 사느냐의 고민으로 빠져든다.

넘쳐나는 정보의 과포화 시대 속에서 결정장애로 망설이고 있다면, 혹시 내가 완벽주의의 강박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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