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로 풀어보는 정신건강 (4)

대담은 대한정신건강재단 정정엽 마음소통센터장과 대한명상의학회 이사 ·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 교수 사이에 진행되었습니다.

 

Q: 무기력증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면 다른 사람에게 계속해서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자신이 점점 무기력 상태로 빠져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실제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잘해준다고 했을 때 그 기준이 뭘까요?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하는 게 좋을지 정해진 부분이 있을까요?

A: 내가 나를 소모하게 되면 내 마음 어딘가에서 항상 본전 생각이 나요. 내가 이만큼 했다는 생각이 어떻게든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거죠.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너무 잘해주면 친구가 별것 아닌 걸로 내게 상처를 줘도 엄청 크게 상처를 받고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만큼 잘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러면 안 돼요. 친구가 사소하게 내뱉은 말이나 보편적으로 할 수 있는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 내가 별로 불편한 게 없어야 해요. 내가 기준이 너무 높아서 그만큼 해주다 보면 상대방도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렇게 되는 거죠.

이걸 구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그것 때문에 주변 사람하고 싸우느냐 안 싸우느냐를 보면 돼요. 내 기준이 높고 계속 만족시키려 애쓰다 보면 나 자신에게 피로감이 생기고, 그 피로감이 어떻게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계속 누적돼요. 그러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다툼이 일어납니다. “너 왜 이거밖에 안 해?”, “너 왜 이렇게 밖에 안 되는 거야?” 이런 식으로 짜증이 나거든요.

그러니까 아이들한테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부모로서 해줄 건 해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기대를 많이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기준을 높여 열심히 하면 피로감이 쌓이는 겁니다. 아이가 내 기대에 못 미치든가, 내가 잘하고 싶은데 도와주지 않고, 심지어 방해한다고까지 생각하면 자꾸 싸울 수밖에 없어요.

상대방을 뜯어고치려 하죠. 그건 아니에요. 생각해보면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은 잘 안 돼도 상관없거든요. 왜냐하면 그걸 하면서 즐거웠으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고 다른 것을 바라면서 하게 되면, 잘 안 됐을 때 내가 한 것에 대한 보상이 자꾸 생각나는 거예요.

 

Q: 무기력증이 자기 압박에서 온다고 했는데, 자기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A: 있죠. 일단은 생각이 너무 많거나 그게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서 치료받고 약을 먹는 게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내가 나를 계속 압박하는 자기 긴장 상태는 사실 내가 제일 불편해요. 내가 한번 편안한 상태가 되고 그 편안한 상태를 내 몸이 기억하게 되면 나를 다시 불편하게 몰아붙이는 상태가 오진 않아요. 그런데 내가 나를 습관적으로 몰아붙이다 보니까 계속 긴장하게 되고, 마치 예민한 상태가 그냥 정상인 것처럼 보이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흔히 생각할 때 주말에 쉬거나 휴가 가서 쉬고 오면 긴장 상태가 풀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내 몸이 긴장 상태를 정상으로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한다고 하면 약물치료든 다른 치료든 긴장 상태를 풀어서 정상 상태로 내려오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내려온 정상 상태를 몸이 기억하게 되면 이제 이것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다시 올라가서 긴장 상태가 되지는 않는 거죠. 이게 첫 번째입니다.

그밖에 할 수 있는 건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건 내가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계속 나를 몰아붙이면서 쫓기는 상태로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마음이라는 게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무엇이 바뀌지는 않아요. 그냥 ‘내가 쓸데없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그 순간 그냥 없어져요.

대개 내가 제삼자가 되어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알게 되죠.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서는 알 수 없어요. 성당이나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기도하는 동안 혹은 절에 다니는 분들이 수행하거나 명상하는 동안 가만히 나를 고요한 상태에 두고 내 마음에서 어떤 것들이 떠오르는지 들여다보면 곧 해결이 되곤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평안한 상태에 두었을 때, 뭔가 잘하려 하고 열심히 하려 하고 애쓰려 하던 마음들이 막 올라오거든요. 그게 보이고 또 보이고 계속 보이면, 부정할 수가 없어요. ‘아, 내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잘하고 애쓰려는 마음이 나를 흔들고 있구나.’ 이게 보이는 거죠. ‘바로 이것이 나를 힘들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긴장하게 만드는 원인이구나.’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되면 어느새 그 같은 마음이 다 없어지는 겁니다.

 

사진_픽셀

 

Q: 방금 ‘알아차림’을 하면 저절로 좋아진다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알아차리기만 하면 좋아지는 건가요?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을 통해서 또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좋아지는 건지 궁금한데요?

A: 약간 다른 예를 들면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겠죠. 우리가 운동할 때 긴장했다 풀어졌다 반복하게 되면 긴장한 상태일 때는 몸이 어떻고, 긴장하지 않은 상태일 때는 몸이 어떤지 알게 되죠. 운동함으로써 긴장이 줄어들고 몸이 편안해지면서 피로감이 줄어든다고 알려져 있잖아요? ‘알아차림’, ‘마음 챙김’도 그렇다고 봅니다. 내가 평상시에는 나를 계속 몰아붙이면서 불안과 긴장이 높은 상태로 있다가 이것들이 없어진 상태를 경험하는 거거든요. 

내가 운동하다가 쉬게 되었을 때 보통 사람들은 긴장이 확 풀어지면서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긴장하거나 혹은 편안하거나 이 두 개의 느낌을 대비해서 느끼다 보면 우리 몸은 자연스럽게 리듬을 갖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 긴장해 있는 사람은 편안한 상태를 잊어버리는 거예요.

‘마음 챙김’이란 계속해서 나를 들여다보는 겁니다. 내가 긴장한 상태에 있다, 애쓰는 마음 상태에 있다, 내 마음 안에서 조금만 틈이 있으면 ‘열심히 해야 돼.’, ‘잘해야 돼.’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이걸 보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계속 거기에 파묻혀 있을 때는 모르지만, 내가 편안한 상태에서 그런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오면 그게 보이는 거죠.

마치 나에게 없던 게 생기는 것처럼 보여요. 나는 전혀 그런 것들이 없었는데, 나를 불안하게 하는 걱정이나 여러 가지 애쓰는 마음이 올라오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하지만 사실은 하루 종일 그러고 있다가 그 순간에만 잠깐 내려놓아진 것이죠.

 

Q: 정말 보게 되는 겁니까?

A: 그럼요. 마음이라는 건 계속 나를 힘들게 하고 긴장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생각들인데, 이게 계속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되고, 호흡으로 돌아오면서 그 생각들을 내려놓게 되면 점점 내 마음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돼요. 그러면서 생각이 줄어들게 되고, 내 긴장이나 불안도 줄어들게 되면서 나를 몰아붙이는 마음도 줄어들게 되는 거죠.

우리가 괴로워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을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게 많아요. 그게 지금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붙잡고 있는 것도 있고, 옛날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중요하지 않은 것도 있어요.

내가 뭔가 열심히 하는 건 필요하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필요하고, 시험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세히 보면 내일 일을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우리는 내일 걱정 더하기 다음 주 걱정 더하기 다음 달 걱정 더하기 내년 걱정까지 해요. 그러니까 아직 수능도 안 본 사람이 대학 졸업해서 어디 취직할지까지 걱정을 다하는 거죠.

그런 것들은 정말 의미 없는 걱정이잖아요? 그런데 마음에서는 계속 올라오거든요. 나도 머릿속으로는 알죠. 그게 필요 없는 걱정이라는 건 알지만, 내가 그렇게 열심히 걱정하고 나면 뭔가 대비하거나 준비하거나 내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어떤 위로감이 생겨요. 

그래서 내가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쓸데없는 걱정만 줄이더라도 훨씬 여유가 생기죠. 내가 진짜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알아차림’으로 내려놓을 수 있거든요. 그걸 다 내려놓으면 정말 내가 가진 어떤 심적인 여유나 의욕이 거기에 얼마나 많이 소모되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  *  *
 

정신의학신문 마인드허브에서 마음건강검사를 받아보세요.
(20만원 상당의 검사와 결과지 제공)
▶ 자세히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