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로 풀어보는 정신건강 (2)

대담은 대한정신건강재단 정정엽 마음소통센터장과 대한명상의학회 이사 ·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 교수 사이에 진행되었습니다.

 

Q: 요즘 10대 청소년들이 갖는 압박감이나 불안감은 주로 어디서 오는 겁니까?

A: 부모님들은 대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아이한테 공부하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요?”, “저희는 아무런 압박감을 주지 않았는데, 얘가 도대체 왜 이러죠?” 부모님들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압박감이라는 건 자기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거예요. 부모님들이 설사 압박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아이들은 대부분 학원에서 친구들과 경쟁하잖아요? 학원 가면 듣는 말이 “벌써 늦었다.”, “너는 한참 늦었고 다른 아이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입니다. 학원 선생님이 압박감을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학원 열심히 다녀야 한다.” 이거죠. 이런 이야기들이 학원에서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첫 번째로 대면하는 보편적인 방식입니다.

 

사진_픽셀

 

Q: 일부러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건가요?

A: 그렇죠. 어쨌거나 학원에 다녀야 성적이 오르니까요. 학원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다니는 학원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아이들이 얼마나 불안하고 마음이 쫓기겠어요. 너무 각성이 된 상태에서는 집중력보다 불안감이 커집니다. 조절도 안 되죠. 

그런 것도 계속 내재가 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 ‘정신 차려야 해.’, ‘이미 늦었어.’, ‘가만히 있으면 안 돼.’, ‘다른 아이들보다 뒤떨어지면 큰일 나.’ 이런 생각을 자꾸 되뇌게 됩니다. 이런 게 습관처럼 몸에 배는 거죠. 왜냐면 내가 주변 아이들을 볼 때 다 나같이 보이거든요. 나만 이러는 게 아니고 다 그런 거구나 이러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은 각자 알아서 쉴 거 쉬고 놀 거 노는데 말이에요. 불안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보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전혀 쉬지도 놀지도 않는 사람들처럼 보여요. 그러면 당연히 압박감을 받게 됩니다.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도 주변에서 무엇을 해주기보다는 본인이 알아차리고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극복해서 이겨나가는 것이지 남들이 해주는 게 아니에요. 내가 자꾸 내 능력 밖으로 몰아붙이는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은 배워진 틀로 보게 되거든요. 그중 가장 흔한 것이 인과론입니다. 내가 고생하게 되면 고생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고, 놀거나 안일하게 쉬면 나쁜 결과가 나온다는 거죠. 학교 다니면서 교육받고 훈련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나를 사랑해 주지는 않죠. 내가 어떤 걸 원한다고 해서 열심히만 하면 내 것이 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어요.

 

Q: 열심히 하는 것과 행복을 느끼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는 말씀이죠?

A: 그렇습니다. 행복이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거잖아요? 이런 증상이 있을 때 충분히 쉬면서 여유를 갖고 내려놓아야 행복해지지만, 그렇게 하는 게 오히려 안일하고 부도덕하며 불행해지는 행위라고 판단하는 겁니다. 효율로 보면 다시 돌아온 의욕으로 공부에 매진하는 게 나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나를 몰아붙이는 거예요.

공부가 제일 잘되는 날은 내가 공부를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금방 가버린 날이에요. 집중도 안 되는데 끙끙거리면서 8시간 동안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면 머릿속에 들어온 게 별로 없는 날이죠. 그러나 전자보다 후자가 더 마음이 뿌듯해요. 왜냐면 어려운 것을 견뎌냈다는 보람 때문이에요.

굉장히 균형 있고 실질적인 것을 맞춰서 행동해야 하는데, 학생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괴로움을 겪으면 그만큼 값을 치렀으니까 좋은 게 올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꾸 나 자신을 어렵고 힘들게 만들면서 기대와 보람을 찾으려 하지 말고, 내가 가장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고 지혜로운 겁니다.

 

Q: 부모님들은 사실 아이들이 게으름을 피우는 건지, 무기력한 건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의 관점에서 자녀들의 게으름과 무기력함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A: 아이들한테 물어보면 잘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목표를 세우고 있어요. 그런데 집중이 안 돼요. 흔히 도서관이나 카페에 앉아서 같이 공부하다 보면, 아이들이 집중을 못 해서 산만하고 힘들어합니다. 금방 지쳐요. 이때 쉬라고 하면 쉬지를 못합니다. 불안해서 못 쉬는 거예요. 부모님은 아이들은 계속 자극을 주고 위기감을 줘야 공부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기력이 온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자극이나 위기감이 필요 없습니다. 

도리어 아이들을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주면, 만족스럽게 지내겠죠. 그러면 영원히 만족스럽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성취 성격이 높은 아이들이기에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남들보다 앞서 나가고 싶어 합니다. 근본적으로 원하는 겁니다. 모든 것이 편안해져서 만족스럽게 되면 그다음을 원하는 거죠. ‘내가 좀 더 즐겁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친구들한테 인정받고 싶고, 선생님들께 인정받고 싶고,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게 됩니다. ‘그러면 공부해야겠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생각이 흘러갑니다.

제 생각에는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부모님들은 초조하겠지만, 무기력한 상태에서 아이들을 마구 밀어붙여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역으로 아이들에게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저절로 좋아집니다. 부모님이 내버려 둔다고 해서 아이들이 ‘공부 안 해서 좋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마냥 노는 게 절대로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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