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로 풀어보는 정신건강 (3)

대담은 대한정신건강재단 정정엽 마음소통센터장과 대한명상의학회 이사 ·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 교수 사이에 진행되었습니다.

 

Q: 갑자기 우울증에 걸린 아이와 원래 의욕이 없는 아이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A: 부모님 중에 가끔 그런 문의를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아이가 너무 의욕이 없다는 것이죠. 경쟁적이거나 치열하지 않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특히 형제 관계에서 형이 외향적인 성향이면 동생은 의욕이 없어 보이는 아이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아이는 정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집착하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지 자기가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모든 걸 자기 수준에서 해내는 아이들인 거죠.

그러면 부모님들은 이 아이가 좀 더 욕심을 내고 경쟁을 하게 되면 더 좋은 성적을 내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격적으로 그런 걸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고, 자기 수준에 맞춰 경쟁하는 아이들도 있으며,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 적응해서 자기 역량을 다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무조건 더 치열해져라, 더 경쟁해라, 하면서 몰아붙이는 건 좋지 않습니다. 병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품성인 것이죠.

 

Q: 자기가 무기력증인지 우울증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구별하는 가장 큰 특징은 뭘까요?

A: ‘내가 잘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가?’, ‘내가 나를 얼마나 돌보고 있는가?’ 이런 것을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우울증이라는 건 분명한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겁니다. 내인성 우울증은 특별한 이유가 없이 신체적인 증상을 동반해서 찾아오기도 합니다. 다른 자극으로 회복되지 않는 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하지만 무기력증은 내가 너무 간절히 욕구하는 마음으로 인해 오는 겁니다. 외부에서의 충격 때문에 오는 것이냐, 내부적으로 간절히 원해서 나를 과도하게 몰아붙임으로써 오는 것이냐, 하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기력증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은 모든 것의 기준이 높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과도하게 잘하려고 애쓰고, 기준에 맞지 않으면 마음에 들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관계나 일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비유를 들면, 이런 분들은 여행을 가서도 계획과 실제 일정이 맞아야 하고, 내가 원하고 기대했던 대로 착착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행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실 여행은 내가 특별히 시간에 구애받지 않은 채 자유로우면서도 예측되지 않는 상태를 즐기러 가는 거 아닙니까? 일상보다 예상치 못하는 일이 더 많이 생기는 게 여행이죠.그래서 무기력증을 앓는 분들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바람 쐬고 즐겨야 하는데, 시간과 돈을 쓰는 것에 관해 효율을 생각하다 보니 즐겁지 않은 겁니다. 오히려 피곤하기만 하죠.

이 같은 사례를 보면 이런 분들은 뭐 하나 할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기에 대단히 힘듭니다. 이런 부분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진_픽사베이

 

Q: 자기를 비하하거나 자신을 향해 악담하는 사람들 역시 타고난 건가요? 아니면 교육 환경으로 인한 건가요? 너무 이분법적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어느 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나요?

A: 글쎄요. 두 가지 다 영향이 있을 거예요.

대개 이런 분들은 성취도가 높아서 남들보다 항상 잘하고 앞서 나갑니다. 그러다 보니 긍정적인 피드백이 몸에 배어서 모든 것들을 자기 계획대로 해나가야 합니다.그런데 살다 보면 그렇지 못한 순간이 오잖아요? 이런 분들은 이럴 때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학업도 안 되는 경우가 있고, 인간관계도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워킹맘들 사이에서 이런 경향이 많이 나타납니다. 워킹맘들은 자기 인생에서 여러 가지를 계획한 대로 해오던 분들이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옵니다. 가장 흔한 경우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게 쉽지 않죠. 자기 뜻대로 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게 됩니다. 아이가 엄마 손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가 회사에서도 제일 중요한 시기입니다.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들어가야 하는 엄마의 노력 자체가 무제한적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시기를 즈음해 건강하던 분들이 상담하러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너무 벅차서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이런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철저하게 통제되던 내 생활이 거기서 한 번 흔들리는 거죠. 이때까지 애써왔던 만큼 결과가 이루어졌는데, 이제는 감당이 안 되는 시기가 된 겁니다. 

사실 중요한 건 일도 육아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건 너무 비현실적인 생각이에요. 그런데도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꼭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무기력증의 원인이 되는 거죠. 이 시기를 잘 넘어가게 되면 여성들은 이런 사고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내 생활이 전부 내 통제 안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성취욕은 넘치는데 일이 마음대로 잘되지 않을 때, 자신을 비하하거나 스스로 악담을 퍼붓는 건 바람직스럽지 않습니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걸 내가 통제하려고 했던 게 문제입니다. 이걸 내려놓고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이런 걸 겪는 시기가 있습니다. ‘내 생활이 다 내 통제 안에 있어야 한다.’ 이 생각을 버리게 되면,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시각이 한 단계 더 앞서 나가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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