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 목요일 점심 저는 말기 암환자인 누나의 임종이 다가온다는 회진 결과를 듣고 검은 정장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상담선생님이 다급한 목소리로 저를 찾습니다. 자살시도 중에 구조된 학생에 대한 도움을 부탁하십니다. 이 학생은 자살시도를 망설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던 중에도 그 불안한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던 학생들이 위험한 순간을 막아내고 도움을 청한 모양입니다. 낯선 타인을 공들여 관찰하고 사고를 막아낸 학생들은 생명을 구한 의인입니다.

 

학생은 경직된 모습이었습니다. 말도 잘 안 나올 정도로 몸이 얼어붙은 것 같습니다. 혹시 죽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냐고 물으니 끄덕입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사람들은 그런 판단을 내리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얘기를 해줍니다. 작년에 옆 건물에서 발생한 사건도 들려줍니다. 투신을 했지만 다행히 차 위로 떨어져 죽지 않았고, 잘 치료받아 몸과 마음을 회복했다는 얘기를 해줍니다. 많은 시도자들이 회복 후 “그때는 왜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알려줍니다.

알고 보니 이 학생은 다음 월요일 아침에 진료 예약이 되어 있었습니다. 학생도 저도 바쁘다 보니 약속이 늦게 잡혀 만나기도 전에 사고가 날 뻔했던 것이죠. 지도교수님은 최근까지 잘 지내며 좋은 성과를 냈던 학생이라 이런 어려움을 겪을 거라고 생각하시지 못했답니다. 아버지는 멀리서 바로 운전해서 병원으로 오겠다고 하십니다. 부모님께는 최근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나 봅니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이라 부모님도 긴장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안전을 위해 대학병원 정신과 교수님들께 입원을 부탁드리고 보호자로 상담선생님 두 분, 행정직원 한 분과 함께 응급실로 보냅니다. 그런데 대학병원 응급실은 환자들로 붐벼서 몇 시간이 지나도록 면담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연락이 옵니다. 급기야 응급실 교수님과도 직접 전화로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합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응급실 상황을 듣게 됩니다.

그래도 자살시도에서 구해낸 환자인데 소홀한 것이 아닌지 속이 상합니다. 이런 푸념을 들은 다른 대학 응급의사인 제 동서는 요즘 유명인 자살 등 힘든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하루에도 자살시도로 다쳐서 오는 사람이 여럿이라 다치지 않은 상태면 순위가 밀린다는 현실을 알려줍니다.

 

다음날인 금요일 새벽, 누나의 호흡이 더 거칠어졌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향합니다. 오전까지 상태는 그대로 유지되어 머리 희끗한 원장님은 오늘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하십니다. 조금 지나 조카들이 도착했습니다. 추석을 집에서 보낸 엄마를 이후에는 집에서 만날 수 없었습니다. 지난주에 처음 병문안을 왔는데, 그때와 달리 엄마는 숨 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중3 첫째는 묵묵히 엄마에게 작별 인사를 합니다. 초6 둘째는 계속 죄송하다며 이제는 엄마를 보내드려야 되겠다고, 엄마를 안 보내려는 것은 내 욕심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일곱 살 막내는 인사를 못 하겠다며 울먹입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의 손을 잡고 하늘나라에서 편하게 있으라고 어렵게 말을 꺼냅니다.

아이들을 돌려보낸 후 식사를 계속 못한 매형을 병원식당으로 보냈습니다. 조금 지나 안정적이던 숨소리가 거칠어집니다. 남편이 곧 온다는 얘기를 하니 다시 안정을 찾습니다. 돌아온 남편에게 방금 전 상황을 설명을 하는 사이 호흡이 멈춥니다. 맥은 더 이상 잡히지 않습니다. 의료진을 호출합니다. 원장님이 오셔서 선고를 하십니다. 아이들 올 때까지 기다렸던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사이 어렵게 입원한 학생이 병동이 불편하다며 부모님과 퇴원하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자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 그러자고 하셨을 것 같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그럴 수 있습니다.

월요일 아침, 어머니 연락처를 알아내어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고 학교로 바로 복귀하겠다는 조바심이 이 병의 증상일 수 있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을 드립니다. ‘자녀의 쫓기는 마음’을 따르지 말고 ‘자녀를 올바르게 보호하는 마음’을 부탁드리니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사진_픽셀

 

<후기 - 질병, 죽음에 대한 정신과의사의 여러 생각>


누나와 저는 연년생 남매입니다. 제 정신의학 박사학위는 암환자를 다루는 자문정신의학 분야입니다. 제가 대학병원을 떠나 과기원으로 온 2016년 누나에게서 위암이 발견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누나가 두 돌 막내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운전하던 중에 입에서 피를 토해 발견했습니다. 2기 혹은 3기를 예상했으나 수술에서 전이가 있는 말기로 확인되었습니다.

소화가 잘 안 된다는 느낌이 있어서 일주일 뒤 여름방학이 되면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해 누나의 나이는 만 39세였습니다. 국가암검진은 만 40세에 위암 검사를 합니다. 저는 그 전 겨울에 병원을 떠나며 위내시경을 받았습니다. 내가 아니라 누나가 받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문득 납니다.

 

수술 후 바로 정신과 자문진료를 받게 했습니다. 충격적인 일이니까요. 저의 가까운 선배인 자문의는 환자의 남편과 부모님까지 정신적으로 지지해주셨습니다. 누나는 불안에 압도되지 않고 4년 넘게 항암치료를 버텨냈습니다. 저는 가족이 의미 있는 시간을 충분히 보내길 기대하면 이 종류의 암은 1년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를 일찍 해주었습니다. 매형은 그 말이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미래를 대비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누나의 가장 큰 걱정은 당시 두 돌이었던 막내에게 엄마와 함께한 추억을 남겨주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날 때 호흡이 좋지 않아 신생아중환자실에 들어갔던 막내는 이제 튼튼하게 컸습니다. 몇 개월을 더 버텼으면 초등학교 입학식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그랬다면 세 아들이 고1, 중1, 초1이 되었겠죠. 최선을 다했지만 이루지 못하는 일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일곱 살 막내가 엄마에 대한 많은 기억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막내는 코로나-19로부터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며 강박적으로 손을 씻기도 했습니다. 엄마의 입원이 길어지면서 머리카락이 빠지기도 했답니다. 아직 응석을 부릴 나이인데 대견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는 엄마가 입원하면서부터 화와 짜증이 늘었답니다. 스스로 사춘기인 것 같다는 말을 했답니다. 누워있는 엄마를 만나서는 눈물을 많이 흘리고, 막연히 죄송하다는 말만 연달아합니다. 자신도 뭐가 미안한지 모르지만 그냥 그렇다고 합니다. 장례식장에 들른 담임 선생님께 이제는 마음이 조금 괜찮아졌다며 엄마를 잘 보내드렸다고 말합니다.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고, 가족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나이지만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이 사춘기 마음이니까요.

사실 첫째도 초등 6학년 겨울에 말이 없어지고 친구와 놀러 나가지도 않아서 누나가 걱정을 했습니다. 엄마가 아픈 가족의 첫째로서 마음이 복잡한 사춘기를 보냈을 것 같습니다. 동네에 명문대 출신 소아정신과가 있기에 거기라도 데리고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비싼 심리평가만 받고 끝났다고 하네요. 첫째가 엄마가 자기를 걱정해서 큰돈을 썼다며 다시 씩씩한 모습을 보여 계속 다닐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정부에서 정신과 상담에 대한 수가체계를 마련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직접 조카를 챙겨야 하겠지만 가족에게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항암 일정에 맞춰 해외여행도 다니고 제주도 한달살기도 여러 번 하면서 추억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어린 시절에 쌓은 따뜻하고 즐거운 기억들은 아이들이 앞으로 커나가는 데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사실 누나는 움직일 수 없고 말하기 어려워지면서 아이들을 대면으로 만나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매형이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그 합의를 깼습니다.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마지막 모습을 봤던 것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는 마지막 순간에 아이들을 부른 것이죠. 말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환자도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보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더 이상 쓸 항암제가 없는 시점은 올해 여름이었습니다. 기존 항암치료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겪지 않아서 임상시험에 한 번 참여했습니다. 그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암에도 반응이 없었고, 부작용도 심하게 겪었죠. 매형은 그때로 돌아가 다시 결정해도 임상시험을 선택했을 것 같다고 합니다. 한 번 정도는 시도해보고 싶었다는 거죠.

부모님뿐만 아니라 매형도 혹시 다른 특별한 치료가 있을지 조바심을 냈던 적이 있지만, 우리는 돌아봐도 후회 없는 결정을 해온 것 같습니다. 누나는 4년 동안 해보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해봤다고 했습니다. 굳이 생각해 내자면 대학생 때 신나게 놀아보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고 웃었습니다. 첫째가 성인이 되는 것을 보는 것은 너무 큰 목표였고, 막내가 초등학교에 가는 것을 보는 것은 아쉽게 이루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대 의학은 완벽하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한다면 그 치료가 최선일 것입니다. 우리는 바꿀 수 없는 결과를 알 경우,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필요도 있습니다.

며칠 전에 자살시도를 했던 사람에게는 안전한 환경과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것도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할 것입니다. 자살시도자가 입원과 약물치료를 거부하고 상담만 받겠다고 했다는데 쉽게 동의할 전문가는 없습니다. 그 학생은 자살 시도 이전에 학교 상담센터를 방문했을 때도 약물치료를 권유받았습니다. 몸의 치료도, 마음의 치료도 전문가가 권고하는 범위 내에서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저희 가족은 충분히 고민한 후 대학병원의 적극적 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 완화 치료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전환도 쉽지 않습니다.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연계 체계에 부족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코로나19는 결정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아이들이 어려 입원형 호스피스를 선택했지만, 보호자 교대가 가능하거나 가족이 방문할 수 있는 기관을 찾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삶의 질이나 의미 있는 생의 마감에 대해서는 부족한 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조차도 임종기 상담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니까요. 우울과 자살에 대한 사회적 제도가 부족한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 막상 닥치면 필요로 하지만 사회의 준비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아내를 일찍 암으로 보냈던 정신과 동기형이 자신의 경험을 제게 공유해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은 환자와 가족에게 큰 힘이 됩니다. 형은 장례 첫날 남해안에서 인천까지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자신이 돌보는 노인 환자들을 위해 감염을 조심해야 한다며 마스크를 벗지 않아 식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잠깐 얼굴만 보고 이야기를 나눈 후 바로 막차를 타러 내려갔습니다. 대학병원에서 마지막까지 바이탈사인만 교정하려다 준비도 없이 떠나보내는 것보다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 것이 훨씬 나았을 거라고 위로해줍니다. 남은 가족들을 챙기는 경험도 알려줍니다.

준비가 늦어지면 정작 필요한 순간에 의미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적극적 치료를 중단한 시점에 주치의 교수님은 2개월 정도 남은 것 같다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한 달이었습니다. 가족 방문이 가능한 호스피스로는 대기가 필요해서 다른 병원에 잠시 있어야 했습니다. 하필 그 병원 아래층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보호자 없이 지내야 했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가고자 했던 호스피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기운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은 좋았지만,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옆 병실에는 어제 들어온 40대 환자가 다음 날 돌아가셨다고 하네요. 많은 사람들이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사람들은 나쁜 소식을 싫어합니다. 언제나 치료가 가능하기를, 좋은 소식만 듣기를 원합니다. 짧은 진료시간의 한국 의료체계에서는 더욱 어려운 부분입니다. 대학병원에서 내시경도 해보고 여러 수치도 교정해봤는데 오심과 구토가 심해져 물도 마시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대학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중간에 들른 병원에서도 증상이 잘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병원을 가보겠냐고 묻습니다. 확실하지 않은데 방법이 없다는 나쁜 소식을 전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저는 답답한 마음에 소화기내과 후배와도 상의하여 다시 대학병원으로 옮겨볼까 고민하게 됩니다. 위암을 보는 종양내과 후배가 자료를 검토하고 얻은 결론은 암의 전이가 심해서 다른 방법이 없는 시점이 되었을 거라는 것입니다.

매형은 이 설명을 더 일찍 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합니다. 의료진이 이미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을 설명했는데 보호자가 받아들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설명 방법이나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있습니다. 공을 들여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이 종양내과 후배는 암환자 카페에서 자신이 나쁜 소리만 하는 못된 의사가 되어 있다는 한탄을 합니다. 무엇이 환자에게 필요한 것인지 아는 입장에서 듣기 좋은 소리만 할 수는 없으니 답답할 것 같습니다. 나쁜 소식을 받아들이기 힘든 암환자와 가족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마음이 힘들어서 온 환자나 그 가족도 비슷하거든요.

 

온전한 정신의 누나에게 들은 마지막 말은 사랑한다는 작별인사였지만, 정신을 잃어가며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는 제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비명처럼 물었습니다. 말도 잘 안 나오고 정신도 혼미해지면서 한 말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의사조력자살이 가능하다면 적절한 시점일지도 고민이 됩니다. 누나에게 호흡이 더 힘들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혼란스럽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방법이 없다고 말해줍니다. 대신 통증을 잘 조절하고 가족들이 옆에 있을 테니 아프지 않게 서서히 돌아오지 않는 깊은 잠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설명합니다.

어떠한 반응도 할 수 없이 호흡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을까요?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눈이 잘 보이지 않더라도 청각과 촉각은 어렴풋이 꿈을 꾸듯 느낄 수 있다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고 했습니다. 심장이 멎은 사람의 뇌도 잠시 활동이 남아 있다는 연구도 있는데 적어도 꿈꾸듯이 느껴지지 않겠냐고 말해줍니다.

직접 만나지 않겠다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릴 때 더 안타깝고 슬펐을지, 아니면 안심이 되어서 편안하게 떠났을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고통만 있고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의사조력자살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쉬운 결정은 아닐 것 같습니다.

 

모든 신체 기관이 망가지고 호흡이 멎어가는 환자의 죽음에 대한 결정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살시도자는 죽음 외에 다른 것은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잠시 동안 가집니다. 많은 경우 우울증에 의한 인지왜곡입니다.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자살로 가족을 잃게 되면 남은 사람들의 마음은 힘들어집니다. 질병으로 인한 사망보다 힘들 수 있습니다. 가족뿐 아니라 동료, 친구 등 많은 사람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지난주 사건처럼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수많은 목격자가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생명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4년 전부터 딸의 죽음을 마음으로 준비하신 저희 부모님도 상심이 큽니다. 만약 자살로 자녀를 잃는다면 그 마음은 어떨까요. 요즘 힘들다는 말을 듣고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며 후회할 것 같습니다. 

환자가 원한다고 퇴원을 시켰다가, 약물치료를 받기 싫다고 해서 미뤘다가, 뒤처지면 안 된다는 조바심에 힘들어하는 것이 안타까워 원하는 대로 급히 복귀했다가 갑자기 밀려오는 자살 생각을 막지 못하면 큰 후회가 남을 것입니다. 저는 부모님이 이해하실 수 있도록 시간을 들여 자살시도자의 마음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렸습니다.

 

환자의 흔들리는 마음 때문에 간혹 가족들이 안타까운 결정을 내리기도 하지만, 반대로 보호자로 인해 환자가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몸과 마음에 대한 의학적 판단이 가능한 저도 가족의 치료에 대한 결정에 흔들리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의료 전문가가 아닌 보호자에겐 더 힘들 것입니다.

얼마 전 정신적 위기로 학교에서 갑자기 사라졌던 학생이 응급 질병휴학을 하겠다며 학교에 왔습니다. 그냥 쉬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합니다. 마음도 힘들고 치료를 받는 것도 두려운데 어머니가 치료를 반대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행정 처리를 위해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서만 받고 정작 필요한 치료는 받지 못했습니다.

형제가 비슷한 어려움을 먼저 겪고 약물치료를 받고 있어 비상약을 나눠주었다고 하네요. 자신도 어머니에게 비밀로 하고 있다며 몰래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답니다. 부모는 당연히 자녀가 건강하길 바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녀를 위하는 방법일까요.

 

누나를 잃은 제 마음도 당분간 힘들 것 같습니다. 누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라 반 아이들의 소아기 정신질환에 대해 상의하기도 하고, 약간의 자폐와 ADHD를 가진 저희 아이의 학교 적응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기도 했습니다. 만 3세 즈음 치료를 시작한 저희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인 지금 또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원래 약간 발달이 늦었을 뿐인지 적극적인 치료 덕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발인 날 아이가 사촌동생을 안아주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로하며 함께 슬퍼하는 것을 보면 대견해 보입니다. 추석도 함께 보냈던, 너를 귀여워해 준 고모를 다시 못 보는 거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아직 죽음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지 않은 나이입니다. 그림일기에 고모가 하늘나라에 갔다고 써서 무슨 뜻인지 물었더니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동생하고 형아를 안아주고 위로하고 왔다고 했답니다. 슬픔을 함께 나누는 법을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 글이 너무 무거워졌네요. 사춘기 둘째가 딸을 잃은 외할아버지에게 한 말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할아버지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그래도 엄마랑 4년이나 같이 있을 수 있어서, 함께 많은 추억을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저도 아버지께 30년 전 버스 추락사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초등학생이던 저는 TV에서 중학생 누나가 떠난 수학여행의 버스 사망사고 뉴스를 봤습니다. 다행히 사고차를 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가족들이 마음을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께 우리가 30년을 더 같이 보내 다행이라고 말씀드립니다.

 

<본 칼럼은 일부는 2020년 11월 19일 경상일보 ‘[정두영의 마음건강(10)]삶과 죽음의 24시간 - 자살, 병사 그리고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저서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 출간
전체기사 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