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나라의 많은 가정에서는 아이를 어느 대학에 입학시킬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드라마 SKY캐슬의 흥행에는 이러한 공감대가 밑바닥에 깔려있습니다.

같은 반, 혹은 학원에서 항상 보는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학교와 학원의 시간표에 맞춰 지식을 습득하고 ‘시험’을 잘 보고, 성적에 맞춰 갈 수 있는 대학을 선택하는 것만 잘 되면 대학생이 됩니다.

이 과정을 잘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대견한 일입니다. 학생들도 지긋지긋한 입시만 끝나면 행복한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마음으로 한껏 기대에 부풉니다. 고등학교와 다르게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고, 동아리 학생회 등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배낭여행이나 공모전 같은 새로운 경험을 쉽고 즐겁게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기대하던 대학생이 되고 난 후에는 하나하나가 모두 힘듭니다. 상상과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제는 알아서 잘 해낼 것이라는 부모님의 기대와는 다르게 좋은 성적을 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동료들과 비교하며 혼자 뒤처지는 것 같아 혼자 끙끙 앓기도 합니다. 성적이 좋은 친구는 학점이 부럽고, 집이 부자인 친구는 학점이 낮아도 마음이 편한 것이 부럽습니다.

졸업 후 어느 길로 갈 수 있을지도 잘 그려지지 않다 보니 지금 하는 전공이 내게 맞는 것인지도 끊임없이 고민이 됩니다. 재수를 시켜달라며 부모님과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요.

차라리 수능처럼 획일화된 시험 총점을 높이는 것이 이런 고민에 휩싸이는 것보다 더 편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부모세대도 자식세대도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는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사진_픽사베이

 

‘가고 싶은 길’과 같은 거대한 주제가 어렵다면, 마음 맞는 동료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것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내 소개를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정도는 귀여운 고민입니다. 조별과제를 하게 되면 역할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머리 아픈 리더의 역할을 피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장학금을 타기 위해 조별 점수가 어느 정도는 나와줘야 하는데, 팀원이 잠적해버리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연락도 안 되고, 차라리 시험공부 스트레스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선후배, 동기, 룸메이트 등 복잡한 관계들 사이에서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관계에 회의가 듭니다. 꿈꾸던 캠퍼스에서의 연애는 이미 인간관계에서 질려서 버킷리스트에서 지워집니다. 혹은 처음엔 기대에 부풀어 만났다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서 다음 연애에 대한 엄두가 안 나기도 합니다. 

 

가정을 꾸리거나, 자신의 위치를 만들어가는 인생의 선배들이 돌아보면 대부분 필요한 역경입니다. 국·영·수 점수만 잘 받는다고 해결이 되는 문제들이 아니죠.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을 잘 찾아야 하고, 그 과정이 전혀 쉽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친구를 사귀고, 동료와 잘 지내는 것은 물론이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지내는 방법을 아는 것도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부분들을 ‘점수화’하지 않았기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정작 함께 일할 직원을 뽑거나 배우자를 만날 때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이와 더불어 높아진 대학진학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국가경제는 대학생들이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방황하며 자기정체성과 대인관계 문제를 배워갈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IMF 이전의 대학생과 현재의 대학생은 상황이 다릅니다. 양극화된 사회에서 대부분의 여유롭지 않은 계층에 속할수록 더욱 가혹한 환경일 것입니다. 

 

OECD 자살 통계 얘기는 익숙합니다. 우리나라 10대~3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입니다. 교통사고나 암보다 위험한 것이죠.

자살은 대부분 우울과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2012년과 2018년 세대별 우울증 환자수 변화를 비교했습니다. 50대는 2.4%가 증가했는데 비해서 20대는 86.5%가 증가했습니다. 10대가 39.0%, 30대가 24.9%가 증가한 것과 비교해봐도 매우 큰 증가입니다.

이러한 변화로 각 대학의 상담실은 이용자가 폭증하여 대기가 길어집니다. 진로나 대인관계 고민 정도가 아니라 이와 관련된 우울, 자살, 자해, 중독, 도박 등으로 문제가 더 복잡해졌습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영국과 같은 대학교육 선진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으로 대학 내에서 정신과 약물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고, 충분한 상담사를 고용하여 적시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변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면 부모님들은 이제 고민이 끝났다고 생각하시기 쉽습니다. 태어날 때 아기 키우는 법을 공부했던 것처럼, 사춘기 자녀를 대하는 법을 고민했던 것처럼, 대학생 자녀를 대하는 법도 고민하셔야 합니다. 주민등록증이 나왔다고 성인이 되고, 알아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가 되면서 만 18세에서 25세 사이를 청소년과 성인 사이의 고유한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처음 가족과 분리되어 독립적인 생활방식으로 전환되는 시기입니다. 빨래, 청소, 용돈관리부터 진로와 대인관계에 대한 고민까지 진정한 성인이 되기 위해 이제 막 하나씩 시작해나가는 단계입니다.

스스로 잘 해낼 수 있을지 긴장하고, 원하는 대로 잘 풀리지 않아 좌절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많은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것을 인정해주시기 바랍니다. 대학생이 되었으니 학점 조금 신경 쓰면 연애도 하고 고등학교 때보다 편한 것 아니냐고 하시면 잘못 생각하셨습니다. 자녀들에게는 역경이 끊임없이 생기고, 그것이 인생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어려움을 같이 상의하고 서로 감정적으로 혹은 현실적으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점점 어른 대 어른의 관계가 되어갈 것입니다. 

 

어떤 부모님은 자녀가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고등학교 시절처럼 모든 것을 챙겨주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또 어떤 부모님은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현실적인 상황에 좌절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 것은 그 시점은 각자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성인은 언젠가는 삶의 방향성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을 내리는 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불안, 우울 등을 과도하게 겪고 힘들어한다면, 손을 내밀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주시는 것이 주변에서 해주어야 할 역할입니다.

그 변화를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일상의 삶에서 변화와 관련된 대화를 계속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하고, 전문가를 찾는 것이 어색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본 칼럼은 경상북도정신건강복지센터 상반기 뉴스레터 마음 톡(knock) 톡(talk) Vol. 8 6면에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알아두면 좋은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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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저서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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