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환의 <시(詩)와 함께하는 마음공부> (5)

[정신의학신문 : 여의도 힐 정신과, 황인환 전문의] 

 

화와 분노 -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화가 불쑥불쑥 치밀어 오릅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싶다가도 마음 깊은 어딘가로부터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점잖지 못하게 욕지거리를 할 수는 없으니 속으로 새겨 보려 애씁니다.

“기후 변화가 극심해 지구촌 곳곳에 기상 이변이 끊이질 않으니 어쩌면 좋으냐?”
“허구한 날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고 싸우니 이 나라 장래가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좀 굵직하고 그럴싸한 큰 문제로 화가 나고 분노가 치민다면 명분이 있겠죠. 그런데 누가 보더라도 옹색하고 자잘하기 이를 데 없는 문제로 그런다면 어떨까요?

“마트에서 200원짜리 물건을 250원이라고 계산하기에 눈물 쏙 빠지게 혼을 내줬어.”
“전철에서 빈자리 내가 먼저 봤는데, 다른 사람이 앉길래 내 자리라고 싸웠지 뭐야.”
 

화와 분노에 크기가 있을까요? 거대한 화와 분노, 사소한 화와 분노, 이렇게 말이죠. 긍정적이고 정당한 화와 분노, 부정적이고 부당한 화와 분노, 이런 식으로 나눌 수도 있을까요?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김수영 시인이 1965년에 쓴 시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전반부입니다. 어느 날 시인이 고궁엘 갔습니다. 경복궁인지 덕수궁인지 그건 모릅니다. 고궁은 왕이 살던 곳이죠. 권력의 중심부입니다. 거대한 고궁, 왕이 살던 곳, 권력의 중심부에서 시인은 권력의 냄새를 맡습니다. 썩은 냄새입니다. 부패한 냄새입니다. 화가 나야 합니다. 분노가 치밀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고궁의 거대함과 웅장함에 압도당합니다. 화를 내거나 분노를 표출할 수가 없습니다. 힘없는 백성, 나약한 소시민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죠. 시인은 자신의 그런 초라한 모습에 화가 납니다. 왜 나는 거대하지만 부조리하기 이를 데 없는 권력에는 항거하지 못하고, 맨날 사소한 일에만 아귀다툼하면서 사는 걸까, 하고 말이죠.

내가 고작 화를 내고 다투는 일이라는 게 이런 겁니다. 갈빗집에서 갈비를 시켰는데, 고깃덩어리보다 기름 덩어리가 더 많은 겁니다. 화를 냈습니다.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했습니다. 그런 자신이 너무 옹졸하다는 걸 압니다. 한심하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더 화가 치솟습니다.

1965년이면 한일협정으로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던 해입니다. 게다가 베트남전쟁에 국군 파병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4·19와 5·16 그리고 군사정권의 등장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던 시기죠. 많은 기자와 문인과 지식인들이 체포되어 활동할 수 없었습니다.

그 같은 시절에 시인은 고작 갈비 덩어리에 분개하며,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하고 싸움질이나 한 겁니다. 하룻밤 사이에도 서너 번씩 찾아오는 귀찮은 야경꾼들과 다툼을 벌인 겁니다. 다 같이 먹고살기 힘든 소시민들끼리 말이죠.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분개하거나,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거나,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는 이행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사진_픽셀

 

‘화’의 사전적 정의는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입니다. 순우리말 같지만, 한자로 ‘불화(火)’ 자를 씁니다. 화를 내는 건 자신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행위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 마음에 불을 지르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화병(火病)이라는 병이 다 생겼겠습니까?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화를 삭이지 못해 생긴 몸과 마음의 질병입니다. 한국에서 특히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미국정신의학회에서 출판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인 DSM-Ⅳ에 ‘Hwa-Byung(화병)’이라는 한국식 표기로 공식 등재된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분노’ 역시 화와 같은 뜻을 가진 말입니다. 분개하여 몹시 성을 내는 것이죠. 슬픔이나 기쁨처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신의 분노를 여과 없이 표출하지는 않습니다.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것입니다. 교육과 경험을 통해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참고 양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건강한 사람이고, 이런 사람들이 다수를 이룬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분노를 조절하는 게 어려워 과도한 방식으로 표출함으로써 정신적, 신체적, 물리적 피해를 경험하는 것을 분노조절장애라고 합니다. 정신의학 분야에서 정식으로 사용되는 진단명은 아니지만, 부당함, 좌절감, 무력감과 같이 부적응적인 형태가 계속될 경우 격분이나 울분 등으로 이어져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조절과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죠.

호르몬 분비 이상, 뇌 기능 이상, 어린 시절의 학대, 외상에 대한 지속적 노출 등 다양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치료를 위해서는 개인적 성찰이나 긴장 해소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 상담한 후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 등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김수영은 힘든 시기에 태어나 굴곡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선린상업학교 재학 시절 시인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줄줄 외울 만큼 영어 실력이 유창했다고 합니다.

일본 도쿄상과대학에 입학했지만,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한 뒤 가족들과 함께 만주 지린성으로 이주했다가 광복 후 다시 귀국해서 본격적으로 시 창작을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 연희전문학교 영문과 4학년에 편입해 잠시 수학하기도 했죠. 

6·25전쟁 때는 인민군에게 강제로 차출되었다가 겨우 탈출해 집으로 갔더니 이번에는 인민군이라고 붙잡혀서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포로들은 좌우익으로 나뉘어 살벌하게 대립했습니다.

2년여에 걸친 이곳 생활을 통해 김수영은 좌우익 대립에 진저리를 치게 되었습니다. 그가 추구한 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속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진정한 자유였습니다. 번역과 집필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는 1968년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과속버스에 치여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라는 시를 쓴 지 3년 후였습니다.

분노가 많았던 그는 매일 술 마시고 싸우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는 무엇에 그토록 분노했던 걸까요?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시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그는 자신이 정작 분노해야 할 대상, 즉 권력과 탐욕과 죄악과 부조리에는 분노하지 못하면서, 아니 너무 힘이 미약해 분노할 엄두를 내지 못하면서, 분노하지 않아야 할 대상, 즉 가족과 이웃과 사소한 일상에는 툭하면 분노하는 자기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습니다. 모래보다 바람보다 먼지보다 풀보다 더 형편없이 작아 보였습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화가 나십니까? 어떤 일 때문에 분노가 자꾸만 치밀어 오르십니까? 조절과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당신을 분개하게 만드는 대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하는 건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화가 날 수 있는 상황에서 화가 나는 건 자연스럽고,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화를 내는 건 나의 적극적인 선택입니다. 그냥 나오는 말과 행동은 없고, 내가 화를 내자고 선택했기 때문에 나왔겠죠. 그래서 화를 어떻게 낼지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화는 누구에게, 언제, 얼마나 낼 거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시인이 느끼는 자책감이 들 수 있습니다. 또 주변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사람이 돼 버릴 수 있습니다. 엉뚱한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한참 지난 일을 갑자기 화를 내거나, 작은 일에 너무 크게 화를 내면 안 되고, 적당한 사람에게, 적당한 때에, 적당한 정도의 화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화를 내는 선택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좀 더 수월할 수 있습니다. 

마구 화만 낸다면 화를 내는 목적, 즉 내용은 없어지고, 서로 공격한다는 결과, 즉 감정만 남게 되겠죠. 내가 화가 난 감정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생각한다면, 이에 맞게 참고 넘어갈 수도 있고, 부드럽게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화의 감정을 표출해야 할 때도 있고요.

우리는 자기 통제감을 잃었을 때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욱해서 화를 내버리고는 곧바로 후회하는 이유죠. 내 마음을 내가 잘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화가 나는 순간, 즉시 화를 내버리기 전에, 화가 났다는 걸 알아차리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나에게 좋을까를 생각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낸다면, 화의 적당한 표현에 대해서 선택할 수 있게 되고, 후회할만한 화를 내지는 않을 겁니다.

 

베트남 출신의 승려이자 시인인 틱낫한 스님은 그의 책 『화』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밭이다. 그 안에는 기쁨, 사랑, 즐거움, 희망과 같은 긍정의 씨앗이 있는가 하면 미움, 절망, 좌절, 시기, 두려움 등과 같은 부정의 씨앗이 있다. 어떤 씨앗에 물을 주어 꽃을 피울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내 마음 밭에 사랑과 희망의 꽃을 피울지, 화와 분노의 꽃을 피울지는 내가 결정합니다.

신약성경 에베소서를 통해 사도 바울 역시 초기 크리스천들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죄를 짓지 마십시오. 해 질 때까지 화를 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화가 나는 건 죄가 아닙니다. 화를 낸다고 해서 화병에 걸리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가능하다면, 가족과 이웃과 사소한 일상에는 화를 내거나 분노하지 않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정작 우리가 화를 내고 분노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으니까요. 권력과 탐욕과 죄악과 부조리 등 나와 우리 사회를 부패시키는 것들입니다.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더 건강해지고, 나도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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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의도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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